미국 409개 극장 동시 개봉에 프라임타임 TV 광고 집중…고장 난 기계상어는 공포 연출을 바꾸고, 흥행 성공은 할리우드의 여름 배급 전략을 다시 짰다
[KtN 최유식기자]1975년 6월 20일,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Jaws’가 미국 409개 극장에서 동시에 개봉했다. 캐나다까지 합치면 북미 464개 스크린이었다. 개봉 직전에는 전국 프라임타임 TV에 30초짜리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 몇몇 대도시에서 영화를 먼저 공개하고 입소문을 기다린 뒤 상영관을 늘리는 당시의 일반적인 배급 방식과 달랐다. 영화 한 편을 같은 날 수백 개 극장에 걸고 전국적인 광고를 붙여 관객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전략이었다.
‘Jaws’가 최초의 대규모 동시 개봉 영화였던 것은 아니다. 개봉관을 한꺼번에 확보하는 이른바 새추레이션 릴리스(saturation release)는 앞선 영화들에서도 사용됐다. 1974년 ‘The Trial of Billy Jack’은 개봉 첫 주 1000개가 넘는 극장에서 상영됐고, ‘Jaws’ 한 달 전 개봉한 찰스 브론슨 주연 ‘Breakout’도 프라임타임 TV 광고를 활용했다. ‘Jaws’가 남긴 변화는 특정 배급 기법을 처음 발명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대규모 개봉과 전국 TV 광고, 대중적인 소재, 여름이라는 시기를 하나의 흥행 공식으로 결합해 압도적인 상업적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었다.
개봉 13일 만에 미국 내 흥행 수입은 2570만 달러에 도달했다. 당시 유니버설은 같은 기간 영화가 거둔 수입으로는 최고 기록이라고 밝혔다. 이후 ‘Jaws’는 미국 흥행 1억 달러를 넘어선 첫 영화가 됐고, ‘The Godfather’가 갖고 있던 흥행 기록도 넘어섰다. 여름은 흥행 대작을 피하는 시기라는 할리우드의 오래된 인식도 흔들렸다.
출발부터 블록버스터를 목표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었다.
프로듀서 리처드 D. 재넉(Richard D. Zanuck)과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 유니버설은 피터 벤츨리(Peter Benchley)의 첫 소설 ‘Jaws’가 출간되기 전인 1973년 영화화 권리를 확보했다. 계약 규모는 25만 달러와 수익의 10%였다. 당시 20대 후반이던 스필버그에게 연출이 맡겨졌다. 스필버그는 재넉과 브라운이 제작한 ‘The Sugarland Express’에 이어 두 번째로 두 프로듀서와 장편영화를 작업했다.
제작은 처음부터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촬영지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마서스비니어드(Martha’s Vineyard) 앞바다였다. 스튜디오 수조나 프로세스 촬영에 크게 의존하는 대신 실제 바다에서 촬영하는 방식이 선택됐다. 바람과 파도, 조류가 계속 변했고 촬영용 배와 카메라 위치도 흔들렸다. 바다는 제작진이 통제할 수 있는 세트가 아니었다.
가장 큰 변수는 상어였다.
제작진은 길이 약 25피트의 기계상어 세 대를 만들었다. 스필버그의 변호사 이름을 따 ‘브루스(Bruce)’라는 별명이 붙은 모형들이었다. 각각 정면과 좌우 방향 촬영을 담당하도록 제작됐지만 바닷물에 투입된 뒤 고장이 이어졌다. 염분과 파도에 기계장치가 제대로 견디지 못했고 외피도 계속 손상됐다. 당초 300만~400만 달러로 예상됐던 제작비는 결국 800만 달러 수준까지 늘어났다.
제작 차질은 역설적으로 ‘Jaws’의 공포 연출을 바꿨다.
상어를 계획대로 보여줄 수 없게 되면서 스필버그는 상어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관객에게 존재를 느끼게 하는 방법을 늘렸다. 물 아래에서 수영객을 바라보는 카메라, 바다 위를 이동하는 부표와 통, 인물들의 표정, 수면 아래 무엇인가가 있다는 암시가 실제 상어의 모습을 대신했다. 블로그 자료에서도 기계상어의 잦은 고장이 스필버그에게 상어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 공포를 만드는 방향을 찾게 한 계기로 설명된다.
첫 희생자인 크리시가 밤바다로 들어가는 도입부부터 방식은 명확하다. 관객은 공격하는 상어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카메라는 수면 아래에서 크리시에게 접근하고, 잠시 뒤 몸이 갑자기 물속에서 끌려다닌다. 공격의 원인은 가려져 있지만 결과는 선명하다. 바다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조건 자체가 공포가 된다.
상어를 보여주지 않는 공백을 채운 또 하나의 장치는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음악이었다. 두 음을 반복하는 짧은 모티프가 속도와 강도를 바꾸며 상어의 접근을 알린다. 상어가 나타나기 전에 음악이 먼저 위험을 전달하면서 관객은 수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격을 예상하게 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두 음은 상어와 접근하는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청각적 기호로 남았다. 윌리엄스는 이 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편집 역시 상어보다 사람에게 오래 머문다.
로이 샤이더(Roy Scheider)가 맡은 경찰서장 마틴 브로디는 물을 두려워하면서도 해변을 지켜야 한다. 리처드 드라이퍼스(Richard Dreyfuss)의 해양생물학자 매트 후퍼는 과학적 판단을 맡고, 로버트 쇼(Robert Shaw)의 상어 사냥꾼 퀸트는 경험과 집착을 앞세운다. 세 인물은 영화 후반 오르카호에 함께 올라타지만 상어 사냥만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식탁과 선실에서 술을 마시고 흉터를 비교하고, 서로를 견제하며 성격을 드러내는 시간이 길게 배치된다.
공포와 인물극이 번갈아 움직이는 리듬을 다듬은 인물이 편집자 버나 필즈(Verna Fields)였다. 기계상어의 노출 시간을 줄이고 인물의 반응과 공격 직전의 긴장을 조절한 편집은 결과적으로 영화가 제한된 특수효과에 의존하지 않도록 했다. 필즈는 ‘Jaws’로 아카데미 편집상을 받았다. 작품은 편집상과 음악상, 음향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고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다.
영화 안의 구조와 영화 밖의 판매 방식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관객에게 상어를 가능한 한 늦게 보여준 영화는 개봉 전에는 상어의 존재를 가능한 한 크게 알렸다.
광고의 중심에는 거대한 상어가 수면 위 여성에게 접근하는 이미지가 있었다. 소설 페이퍼백과 영화 광고가 같은 시각적 이미지를 공유했고, 개봉 직전에는 전국 TV 광고가 이를 반복 노출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부터 관객은 제목 ‘Jaws’와 상어의 입, 수면 위의 인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하도록 설계됐다.
TV 광고 규모도 당시로서는 이례적이었다. 개봉을 앞둔 1975년 6월 18일부터 20일까지 프라임타임에 하루 약 25개의 30초 광고가 집중적으로 편성됐다. 할리우드가 영화 홍보에 전국 네트워크 TV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관행이 아직 자리 잡기 전이었다. PBS가 당시 산업 관계자들의 증언을 정리한 기록에서도 ‘Jaws’의 광범위한 개봉과 프라임타임 광고 결합을 영화 마케팅과 배급 방식의 변화를 촉진한 계기로 다룬다.
대규모 광고는 대규모 개봉과 함께 작동했다. 과거의 플랫폼 개봉은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주요 도시에서 먼저 상영하고 평단 평가와 입소문을 축적하면서 지역을 넓혀가는 방식이었다. ‘Jaws’는 전국 광고로 관심을 끌어올린 직후 수백 개 극장에서 동시에 관객을 받았다. 흥행 열기를 장기간 만들어가는 대신 개봉 초기부터 거대한 수요를 만드는 모델이었다.
개봉 이후 상영 규모는 더 커졌다. ‘Jaws’는 7월 말 약 700개 극장, 8월 중순에는 950개가 넘는 극장으로 확대됐다. 첫 13일 동안 기록한 2570만 달러의 흥행은 대규모 광고비와 필름 프린트 비용을 감수하고 초반 관객을 집중시키는 전략이 상업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여름이라는 개봉 시기도 달라졌다.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 영화업계에서 여름은 오늘날처럼 가장 큰 작품을 집중적으로 내놓는 계절로 굳어 있지 않았다. ‘Jaws’의 흥행 뒤 스튜디오들은 여름철에도 액션·스릴러와 대규모 오락영화를 전면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2년 뒤인 1977년 ‘Star Wars’의 성공은 대규모 이벤트 영화와 여름 시즌을 결합하는 흐름을 더욱 강화했다. BFI는 ‘Jaws’를 현대적인 여름 블록버스터의 틀을 만든 작품으로 평가한다.
‘Jaws’ 이후 블록버스터라는 말의 의미도 달라졌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번 영화를 넘어, 개봉 전에 전국적인 인지도를 만들고 넓은 스크린에서 동시에 출발하며 광고와 관객 관심을 짧은 기간에 집중시키는 영화산업의 운영 방식과 결합됐다. 제작비가 크고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였다. 영화 자체와 개봉 전략을 하나의 상품 설계로 묶는 방식이었다.
‘Jaws가 블록버스터를 발명했다’는 문장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규모 개봉도, TV 광고도 앞선 영화에서 이미 사용됐다. ‘The Trial of Billy Jack’과 ‘Breakout’ 같은 선행작이 존재한다. ‘Jaws’가 결정적으로 달랐던 부분은 기존에 존재하던 방법들을 결합해 기록적인 흥행으로 연결했고, 이후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반복할 만한 상업 모델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도 비슷한 역설이 있었다. 촬영 현장을 가장 힘들게 했던 기계상어의 고장은 상어를 감추는 연출로 이어졌고, 직접적인 노출이 줄어들면서 존 윌리엄스의 음악과 버나 필즈의 편집, 배우들의 반응이 공포를 대신했다. 제작상의 약점이 영화의 스타일로 전환된 셈이다.
‘Jaws’는 2001년 미국 의회도서관 국가영화등기부(National Film Registry)에 등재됐다. 1975년 작품이 미국 영화문화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영화로 공식 선정된 것이다.
1975년 6월 20일 이후 할리우드의 여름은 이전과 같은 비수기로 남지 않았다. 전국 TV에서 한 영화를 반복해 알리고, 개봉 첫날부터 수백 개 극장에 관객을 모으고, 첫 주 흥행을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만드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됐다. ‘Jaws’가 남긴 것은 상어의 등지느러미와 두 음의 음악만이 아니었다. 오늘날 대형 영화가 개봉 몇 주 전부터 광고를 쏟아내고 같은 주말 수천 개 스크린에서 동시에 관객을 만나는 구조의 중요한 전환점도 1975년 여름에 놓여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