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오슨 웰스의 영화 데뷔작…그레그 톨런드와 깊은 초점·천장 세트·비선형 서사 결합, 1941년 할리우드의 촬영 문법을 극단까지 확장

[KtN 최유식기자]눈밭에서 어린 찰스 포스터 케인이 썰매를 타고 논다. 집 안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 은행가 월터 대처가 소년의 미래를 결정하는 서류를 논의한다. 카메라 가까이 앉은 어머니부터 방 안의 인물들, 창문 너머 눈밭의 케인까지 서로 다른 거리에 놓인 대상이 한 구도 안에서 또렷하게 유지된다. 편집으로 가까운 얼굴과 먼 소년을 번갈아 보여주는 대신, 한 번에 모두 보게 만든다.

1941년 ‘Citizen Kane’에서 촬영감독 그레그 톨런드(Gregg Toland)와 감독 오슨 웰스(Orson Welles)가 사용한 딥포커스(deep focus)의 대표적인 대목이다. 촬영에는 나흘이 걸렸다. 케인의 어머니가 아들의 양육권을 대처에게 넘기는 동안 창밖에서는 정작 자기 삶이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소년이 계속 뛰어논다. 관객은 누구를 볼지 스스로 선택하면서도 세 사람의 결정과 소년의 고립을 동시에 받아들이게 된다.

‘Citizen Kane’의 영화사적 위치를 설명할 때 딥포커스를 웰스와 톨런드가 처음 발명했다고 쓰는 경우가 있지만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깊은 초점을 이용한 촬영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미국촬영감독협회(ASC)는 제임스 웡 하우(James Wong Howe)가 촬영한 1931년 ‘Trans-Atlantic’ 등을 앞선 작업으로 짚는다. 톨런드는 기존 원리를 더 발전된 렌즈와 필름, 강한 조명과 결합해 훨씬 과감하게 사용했다.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차이는 한 가지 기술의 최초 여부보다 사용 범위에 있었다.

‘Citizen Kane’은 딥포커스만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극단적인 로앵글, 긴 이동 촬영, 강한 명암, 실루엣, 여러 사람이 겹쳐 말하는 대사, 시간을 건너뛰는 편집, 미니어처와 광학효과가 한 작품 안에서 반복적으로 결합됐다. 여러 기법은 이미 영화에서 사용되고 있었지만 웰스와 톨런드는 각각을 제한적인 효과로 남겨두지 않았다. 영화의 공간과 시간, 인물을 바라보는 방법 전체에 적용했다. BFI도 딥포커스와 추상적인 카메라 각도, 비연대기적 서사, 중첩 대사를 작품의 대표적인 형식적 특징으로 꼽는다.

카메라의 높이부터 달라졌다.

당시 스튜디오 세트는 촬영과 조명을 위해 천장을 만들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카메라를 아래에서 위로 향하면 세트의 열린 윗부분과 조명 장비가 드러날 수 있었다. ‘Citizen Kane’은 상당수 실내 세트에 천장을 만들고 카메라를 바닥 가까이까지 내렸다. 일부 천장은 음향을 통과시키는 얇은 모슬린으로 제작해 마이크를 위쪽에 둘 수 있도록 했다.

케인이 선거에서 패배한 뒤 친구 제디다이아 릴런드와 마주하는 부분에서는 카메라를 극단적으로 낮추기 위해 바닥까지 파냈다. 웰스가 연기한 케인은 아래에서 올려다본 거대한 인물로 잡히지만, 동시에 천장까지 구도 안에 들어온다. 인물을 크게 만들면서 공간의 끝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이다. BFI는 해당 촬영을 작품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카메라를 놓은 대목으로 소개한다.

권력이 커질수록 케인이 차지하는 공간도 커진다. 신문사를 인수한 젊은 케인의 공간에서 시작해 정치 집회장, 오페라극장, 거대한 저택 재너두(Xanadu)로 이동한다. 그러나 넓어진 공간이 친밀감을 뜻하지는 않는다. 케인의 주변에서 사람이 줄어들수록 건축물과 빈 공간의 비중은 커진다.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딥포커스는 이런 관계를 한 구도 안에 겹쳐놓는 데 쓰였다.

앞쪽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면 뒤편을 흐리게 만들고, 뒤쪽을 또렷하게 잡으면 앞쪽이 흐려지는 방식 대신 가까운 곳과 먼 곳을 함께 선명하게 유지했다. 관객의 시선이 편집자가 선택한 한 인물에게만 묶이지 않는다. 앞쪽의 대화와 뒤쪽에서 벌어지는 행동 사이의 관계를 동시에 읽을 수 있게 된다.

기술적인 조건은 만만하지 않았다. 깊은 초점을 얻으려면 조리개를 조여 피사계 심도를 넓혀야 했고, 그만큼 훨씬 많은 빛이 필요했다. 톨런드는 감도가 높은 필름과 광량이 강한 조명, 광각 계열 렌즈 등을 조합했다. AFI 기록에는 당시 할리우드 영화가 주로 f/2.3에서 f/3.2 정도의 조리개를 사용하던 시기에 24㎜ 렌즈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업도 언급돼 있다.

깊은 초점으로 보이는 모든 부분이 한 번의 촬영으로 완성된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경우 서로 다른 촬영을 광학적으로 결합해 앞뒤 공간을 모두 선명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기법을 숨기는 데 있었다. 특수효과를 과시하기보다 관객이 넓어진 공간 안에서 여러 정보를 동시에 받아들이도록 했다. Jay’s Classic Movie Blog 역시 렌즈와 필름, 조명, 강제원근법과 복합 촬영이 딥포커스 효과에 함께 사용됐다는 점을 짚는다.

공간만 바뀐 것은 아니다. ‘Citizen Kane’은 시간도 직선으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영화는 케인이 죽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남긴 단어 ‘Rosebud’를 추적하는 기자 제리 톰프슨이 케인을 알았던 사람들을 찾아가고, 각각의 기억이 플래시백으로 이어진다. 케인의 어린 시절에서 성공, 결혼, 정치적 몰락, 노년으로 곧장 이동하지 않는다. 다른 인물들의 기억이 서로 다른 시기의 케인을 불러낸다.

한 사람의 삶을 한 명의 해설자가 정리하는 방식도 피했다. 대처가 기억하는 케인과 릴런드가 기억하는 케인, 두 번째 부인 수전 알렉산더가 기억하는 케인은 같지 않다. 정보가 쌓일수록 케인의 생애는 자세해지지만 인물 전체를 하나의 설명으로 정리하기는 오히려 어려워진다.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비선형 서사 역시 ‘Citizen Kane’이 처음 만든 형식은 아니다. AFI는 1933년 ‘The Power and the Glory’가 시간을 앞뒤로 이동하며 이야기를 나눈 선행 작품으로 당시에도 언급됐다고 기록한다. ‘Citizen Kane’의 변화는 비선형 구조를 발명했다는 데 있기보다, 여러 화자의 기억과 뉴스릴, 기자의 조사, 플래시백을 결합해 한 인물의 생애 전체를 재구성한 규모에 있었다.

시간을 압축하는 방법도 과감했다.

케인과 첫 번째 아내 에밀리의 결혼생활은 아침 식탁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짧은 몽타주로 변한다. 처음에는 서로 가까이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옷차림과 말투가 바뀌고 거리는 멀어진다.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기보다 각자의 신문을 읽는다. 긴 결혼생활의 균열을 별도의 사건으로 하나씩 설명하지 않고 같은 공간의 변화로 압축한다. 블로그 자료에서도 의상과 음악, 편집, 카메라 움직임을 이용해 결혼생활의 변화를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한 대표적인 대목으로 다룬다.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웰스가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RKO가 허용한 이례적인 제작 조건이 있었다.

연극과 라디오에서 이름을 알린 웰스는 할리우드 장편영화를 한 편도 연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RKO와 계약했다. BFI는 RKO가 웰스에게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수준의 창작 재량을 부여했다고 설명한다. 이야기와 예산 등에 스튜디오의 승인 조건은 남아 있었지만 캐스팅과 제작진 구성, 작품 완성 과정에서 일반적인 신인 감독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권한을 확보했다.

웰스는 영화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주변에는 영화 제작의 각 분야를 잘 아는 사람들을 배치했다. 촬영은 이미 할리우드 정상급 촬영감독이었던 톨런드가 맡았고, 편집에는 훗날 ‘West Side Story’와 ‘The Sound of Music’을 연출하는 로버트 와이즈(Robert Wise)가 참여했다. 음악은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이 맡았다. 머큐리 시어터에서 함께 활동했던 배우들도 대거 영화에 처음 출연했다. AFI의 작품 기록은 웰스뿐 아니라 톨런드와 와이즈, 미술·음향·음악 부문의 제작진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제작비는 당초 예상보다 늘었다. RKO의 비용 문서에 기록된 최종 제작비는 83만9727달러였다. 사전 예상액 72만3800달러를 웃돌았다. 촬영은 1940년 6월 말부터 10월까지 진행됐고 이후 추가 촬영과 삽입 촬영이 이어졌다. 최종 상영시간은 119분으로 정리됐다.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밖에서는 더 큰 충돌이 기다리고 있었다.

찰스 포스터 케인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신문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허스트 계열 언론은 영화 광고와 관련 보도를 막았고, 작품 공개를 둘러싼 압력이 이어졌다. RKO 내부에서도 개봉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AFI 기록에는 웰스가 개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계약 위반 소송에 나서겠다고 RKO를 압박한 과정까지 남아 있다.

당초 예정했던 1941년 2월 공개 일정은 미뤄졌다. ‘Citizen Kane’은 결국 1941년 5월 1일 뉴욕 팰리스 극장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됐고, 5월 8일 로스앤젤레스 엘 캐피탄 극장에서 할리우드 프리미어가 열렸다.

제1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등을 포함해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수상은 허먼 J. 맹키위츠(Herman J. Mankiewicz)와 웰스가 받은 각본상 한 부문이었다.

개봉 당시의 논쟁과 흥행 성적만으로 작품의 이후 위치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Citizen Kane’은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 제작자와 비평가들이 반복해 참조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BFI ‘Sight and Sound’ 비평가 투표에서는 1962년부터 2002년까지 1위를 차지했고, 2022년 조사에서는 비평가 3위, 감독 2위에 올랐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국가영화등기부가 출범한 1989년 첫 선정작 가운데 하나로 ‘Citizen Kane’을 포함했다.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영화 인사이트③] ‘Citizen Kane’, 딥포커스와 로앵글이 바꾼 영화의 시선. 사진=Jay's Classic Movie

‘Citizen Kane’을 특별하게 만든 요소를 딥포커스 하나로 좁히기는 어렵다. 깊은 초점도, 비선형 서사도, 로앵글도 이전 영화에 존재했다. 웰스와 톨런드는 이미 축적돼 있던 영화기술을 한 작품 안에서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인물의 권력과 고립을 공간과 시간의 변화로 연결했다.

눈밭에서 노는 어린 케인과 실내에서 소년의 삶을 결정하는 어른들을 동시에 또렷하게 보여준 초반부부터 거대한 재너두에 홀로 남은 노년의 케인까지, 카메라는 인물을 가까이 잡는 것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인물과 건축물의 크기, 앞과 뒤의 관계까지 서사의 일부로 사용한다.

1941년 이후 영화가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Citizen Kane’은 촬영과 미술, 편집과 음향, 서사를 각각 분리된 기술로 다루지 않고 하나의 목적 아래 결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느냐만큼 어디에서 바라보고, 어느 거리에 초점을 맞추며, 어떤 순서로 시간을 배열하는가가 이야기 자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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