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27 2월 6일 스위스 엔가딘 계곡 공개…2월 5~7일 산악 일정으로 확장
1952년 산악복에서 2010년 Grenoble까지…사업 넓힐수록 겨울·산의 정체성 재확인
상반기 Moncler 매출 10억8960만유로·DTC 85.6%…실제 장소와 경험도 브랜드 자산으로
[KtN 임우경기자]몽클레르 그레노블(Moncler Grenoble)이 2027년 2월 6일 스위스 엔가딘 계곡(Engadin Valley)에서 FW27 컬렉션을 공개한다. 정확한 개최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첨부 이미지에는 2월 5일부터 7일까지 일정이 표시돼 있고, 컬렉션 발표는 산악 풍경과 문화, 생활방식을 묶은 프로그램 안에 놓인다. 의상의 소재와 실루엣, 세부 기술은 아직 공개 전이다.
눈 덮인 능선 위에는 두 사람이 작게 서 있다. 의상이나 모델보다 산이 이미지 대부분을 차지하고, 상단에는 ‘The tradition of what is next.’라는 문장이 놓였다. 새 컬렉션을 알리는 이미지인데도 전면에 나온 것은 신제품이 아니라 설산과 전통이다.
몽클레르는 1952년 프랑스 그르노블 인근 산악마을 모네스티에드클레르몽(Monestier-de-Clermont)에서 출발했다. 1954년 K2 이탈리아 원정대에 다운 제품을 공급했고,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에서는 프랑스 알파인 스키 대표팀과 연결됐다. 2003년 레모 루피니(Remo Ruffini)가 브랜드를 인수한 뒤 럭셔리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Moncler Grenoble 컬렉션은 2010년 뉴욕에서 처음 공개됐다.
현재 몽클레르는 Collection, Grenoble, Genius라는 세 축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Grenoble은 산악 스포츠와 기능성에 가장 가까운 영역으로, FW 제품군도 High Performance, Performance & Style, Après-Ski로 나뉜다. SS에는 야외활동을 겨냥한 제품까지 범위를 넓혔다. 전문 산악복과 일상복, 산에서 보내는 생활방식을 하나의 제품군 안에 묶는 구조다.
최근 컬렉션 발표 장소도 산악 지역에 집중됐다. 2024년 스위스 생모리츠, 2025년 프랑스 쿠르슈벨, 2026년 미국 아스펜에 이어 2027년 다시 스위스 엔가딘으로 향한다. 밀라노나 파리의 패션위크 무대보다 실제 겨울 휴양지와 설원을 반복해서 선택하고 있다.
사업의 외연은 반대로 도시와 여름까지 넓어지고 있다. 몽클레르는 연중 판매되는 브랜드로 영역을 확장하면서도 겨울과 산, 추위에서 출발한 정체성을 유지하겠다는 방향을 밝혀왔다. 가벼운 레이어링과 SS 제품을 강화해 계절 의존도를 낮추면서 산악 브랜드라는 출발점은 더 자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이다.
도시 의류와 여름 상품, 신발과 액세서리까지 판매 범위가 넓어질수록 다른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와의 경계도 낮아진다. 산은 제품군이 확대된 이후에도 몽클레르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남는다. 사업은 넓어지지만 브랜드를 설명하는 핵심 이미지는 오히려 한곳으로 모이는 구조다.
기업의 정체성은 오래된 연혁을 반복한다고 유지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장과 제품을 선택할 때 과거의 출발점이 실제 판단 기준으로 작동해야 한다. 모든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어도 아무 방향으로나 움직이지 않는 선택이 쌓이면서 브랜드의 성격도 만들어진다.
몽클레르에게 산은 과거의 기록인 동시에 현재 사업의 기준선에 가깝다. 보온과 방수, 움직임 같은 기능성을 놓치면 Grenoble이라는 이름의 근거가 약해지고, 반대로 전문 스포츠웨어에만 머물면 럭셔리 시장에서 확장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진다. 기능복과 패션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Grenoble의 사업 모델이 된 셈이다.
‘등산복의 고급화’라는 표현만으로는 현재의 구조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 스키와 설상 활동을 고려한 제품과 슬로프 밖에서 입는 아프레스키가 같은 라인 안에 들어간다. 산에서 필요한 기능을 도시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과 가격 체계 안으로 끌어오고, 도시의 럭셔리를 다시 산악 환경과 연결한다.
고가 전략에서도 산악의 역사는 하나의 근거가 된다. 높은 가격 자체가 럭셔리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소재와 기능, 제작 기술, 역사 가운데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몽클레르는 산악 장비에서 출발한 이력을 갖고 있고 Grenoble은 이를 현재의 기능성 제품과 계속 연결한다.
산에서 쇼를 연다고 제품의 기술력이 자동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설원 위의 런웨이가 방수성과 보온성, 내구성을 검증하는 시험장은 아니다. FW27의 구체적인 소재와 제작 기술도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엔가딘의 풍경은 브랜드의 출발점을 설명할 수 있지만 제품의 성능까지 대신 입증해주지는 않는다.
산악 풍경이 강할수록 옷에는 더 높은 설득력이 요구된다. 실제 의상이 기능과 디자인에서 충분한 차이를 만들지 못하면 산악 쇼는 정교하게 제작된 프로모션으로 남을 수 있다. 브랜드의 기원이 마케팅 자산이 될 수는 있어도 마케팅만으로 기원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2026년 상반기 Moncler 브랜드 매출은 10억8958만유로로 전년 동기보다 환율 영향을 제외하고 9% 증가했다. 소비자 직접판매(DTC)는 9억3317만유로로 전체의 85.6%를 차지했고 같은 기준 10% 늘었다. 아시아 매출은 5억9290만유로로 19% 증가했다.
DTC 비중이 85%를 넘는 사업구조에서는 패션쇼의 역할도 달라진다. 도매 거래처와 패션 미디어에 다음 시즌 제품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주요 고객을 직접 초청해 브랜드 경험과 다음 구매를 연결할 수 있다. 몇 분짜리 런웨이보다 이동과 체류, 식사와 산악 활동까지 포함된 일정은 고객과 브랜드가 접촉하는 시간을 길게 만든다.
올해 아스펜 행사 뒤에는 초청 고객의 현지 매장 방문과 현재 컬렉션 구매, 다음 컬렉션 주문이 발생했다는 경영진 설명도 나왔다. 행사 하나가 전체 매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지는 별도로 공개되지 않았다. 목적지 쇼가 직접적인 판매행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브랜드 경험과 고객관리가 실제 판매에서 완전히 분리돼 있지도 않다.
럭셔리 소비의 무게중심도 제품 소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행과 경험이 고가 제품과 같은 소비예산을 놓고 경쟁하고, 높은 가격에 걸맞은 품질과 서비스, 정서적 연결을 요구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특정 장소에 초청받아 브랜드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는 일이 제품의 희소성과 별개의 가치를 갖는 배경이다.
AI의 확산은 럭셔리 브랜드가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만들고 있다. 생성형 AI는 설산과 모델, 눈보라와 런웨이를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낼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장소도 실제처럼 구현할 수 있다. 이미지 제작의 비용과 시간이 낮아질수록 시각적 장관 자체의 희소성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엔가딘이라는 실제 장소는 이런 환경에서 다른 성격을 갖는다. 산을 이미지로 만드는 것과 사람을 직접 이동시켜 추위와 고도, 시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사진과 영상은 반복해서 복제할 수 있지만 특정 시간과 장소를 함께 경험했다는 사실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몽클레르의 산악 쇼는 디지털을 거부하는 아날로그 회귀와는 거리가 있다. 실제 산에서 벌어진 행사는 다시 영상과 사진으로 제작돼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유통된다. 물리적 경험이 디지털 콘텐츠의 원본이 되는 구조다. AI 시대에도 디지털을 버리기보다 디지털이 복제할 수 있는 원본의 출처를 더 분명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The tradition of what is next.’라는 문구도 기업의 최근 행보와 함께 놓으면 단순한 광고 문장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를 그대로 보존한다는 의미보다는 다음 제품과 새로운 시장을 선택할 때 기존의 산악 정체성을 계속 기준으로 삼겠다는 방향에 가깝다.
오래된 기업은 전통과 변화 사이의 긴장을 피하기 어렵다. 전통만 붙들면 시장의 변화에서 멀어지고 유행만 따라가면 정체성이 흐려진다. 기업이 오래 살아남는 과정은 두 방향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일이 아니라, 변화하면서도 버리지 않을 기준을 정하는 일에 가깝다.
몽클레르는 현재 계절과 지역, 제품군을 넓히면서 산이라는 기준을 더욱 자주 드러내고 있다. 확장을 위해 뿌리를 지우기보다 사업이 넓어질수록 뿌리를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성장이 정체성의 폐기를 뜻하지 않고 기존 정체성을 새로운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기업 철학은 슬로건보다 제품에서 오래 남는다. FW27에서 산악 환경에 필요한 기능과 소재 연구가 충분하지 않고 설경과 이벤트만 강하게 남는다면 ‘전통’은 높은 가격을 설명하기 위한 이미지에 가까워진다. 산악 헤리티지가 현재의 기술과 디자인 안에서 계속 작동할 때 과거도 사업의 근거가 된다.
몽클레르 그레노블의 엔가딘 행보는 기능성 의류를 럭셔리 영역으로 확장하고, 브랜드의 기원을 고가 전략의 근거로 유지하며, 주요 고객에게 실제 장소의 경험을 제공하는 사업 방향이 겹쳐 있다. 산은 제품의 배경이면서 동시에 기업이 스스로 정한 제한선이다.
AI가 새로운 이미지를 빠르게 만들어내는 시대에도 기업의 정체성까지 자동으로 생산되지는 않는다. 브랜드의 성격은 새로운 이미지를 얼마나 많이 내놓는가보다 변화 속에서도 어떤 기준을 반복해서 선택하는가에서 만들어진다.
엔가딘의 산은 몽클레르가 출발한 곳을 다시 보여줄 수 있다. 그 역사가 현재에도 살아 있는지는 2027년 2월 공개될 옷과 그 이후의 사업 방향이 증명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