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된 솔 아래 달라진 다리와 전신 비례…신발이 몸의 인상까지 변화
얼굴과 상체에 집중되던 시선 발끝으로…‘작고 가벼운 발’이라는 미적 기준에서 이탈
SS27 ‘An Invitation’, 몸을 보정하기보다 낯설게 만들어 새로운 아름다움 제시

[KtN 박인경기자]grounds의 SS27 컬렉션 ‘An Invitation’은 신발의 크기를 키우면서 사람의 몸을 바라보는 기준까지 흔들었다. 흰색 수트와 검은색 레이어링, 짧은 하의와 긴 드레스 등 서로 다른 옷 아래에서 부피가 큰 솔이 반복됐고, 발끝이 넓어질수록 다리와 허리, 어깨의 비례도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패션이 오랫동안 가늘고 길어 보이는 몸, 작고 정돈된 발을 아름다운 비례로 사용해왔다면 grounds는 가장 아래쪽의 크기를 의도적으로 키웠다. 몸을 더 날씬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대신 익숙한 균형을 무너뜨려 사람 전체를 다시 보게 하는 방식이다.

grounds SS27 ‘An Invitation’. 흰색의 긴 실루엣 아래 투명하고 부피가 큰 신발을 배치해 가늘게 내려오는 전신의 비례를 발끝에서 확장했다. 사진=grounds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grounds SS27 ‘An Invitation’. 흰색의 긴 실루엣 아래 투명하고 부피가 큰 신발을 배치해 가늘게 내려오는 전신의 비례를 발끝에서 확장했다. 사진=grounds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목을 높게 감싼 흰색 상의와 곧게 떨어지는 팬츠는 몸의 세로선을 길게 만든다. 장식을 줄인 옷만 놓고 보면 시선은 얼굴에서 어깨를 거쳐 다리까지 자연스럽게 내려올 수 있다. 그러나 발끝의 투명한 솔이 크게 부풀면서 가늘게 이어지던 선은 지면 가까이에서 갑자기 넓어진다. 신발 때문에 다리는 상대적으로 더 가늘어 보이지만, 전체 인상은 전통적인 ‘롱 앤드 린(long and lean)’ 실루엣과 달라진다. 길이를 강조하면서도 발을 작게 숨기지 않아 전신의 균형을 일부러 불안정하게 만든다.

뷰티의 역사는 몸의 비례를 조정하는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헤어는 얼굴형을 보완하고, 메이크업은 눈과 입술의 위치를 강조하며, 의복은 허리와 어깨·다리의 비율을 바꾼다. 신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하이힐은 굽을 높여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고, 앞코를 좁혀 발을 작고 날렵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왔다. grounds는 높은 신발을 사용하면서도 그 익숙한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발을 감추는 대신 더 크게 드러내고, 굽을 하나의 가느다란 선으로 정리하는 대신 솔 전체를 부풀린다.

사카베 미키오(Mikio Sakabe)가 grounds에서 발을 중요하게 다뤄온 이유도 몸 전체의 인식과 연결된다. 사람의 인상은 얼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몸의 균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어진다. 발의 크기와 높이가 크게 달라지면 같은 옷을 입어도 사람이 서 있는 모습과 걸음, 다리 길이의 인상이 함께 달라진다. SS27에서는 신발이 얼굴을 꾸미는 뷰티와 멀리 떨어진 물건이 아니라 전신 이미지를 조정하는 또 하나의 도구로 들어왔다.

흰색 퍼프 소매 상의와 검은색 짧은 하의에 높은 신발을 조합한 grounds SS27 착장. 노출된 다리와 큰 솔의 대비가 전신 비례를 강조한다. 사진=grounds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흰색 퍼프 소매 상의와 검은색 짧은 하의에 높은 신발을 조합한 grounds SS27 착장. 노출된 다리와 큰 솔의 대비가 전신 비례를 강조한다. 사진=grounds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흰색 퍼프 소매 블라우스와 검은색 짧은 하의에서는 다리와 신발의 대비가 더욱 크게 드러난다. 둥근 소매와 목 주변의 리본은 얼굴과 상체를 강조할 수 있는 요소지만, 검은색으로 묵직하게 확장된 신발이 시선을 아래쪽으로 끌어내린다. 노출된 허벅지와 무릎 아래 레그웨어, 거대한 솔이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다리의 길이보다 여러 구간으로 나뉜 비례가 먼저 읽힌다. 작은 신발로 다리를 길어 보이게 만드는 방식과 달리 다리 끝에 큰 형태를 붙여 인체의 구조 자체를 강조했다.

여성 패션에서 ‘예쁜 다리’는 오랫동안 발을 얼마나 작고 자연스럽게 연결하느냐와 관련돼 있었다. 뾰족한 펌프스와 얇은 스트랩 샌들은 발을 시각적으로 축소하고, 다리와 신발의 경계를 흐리면서 길이를 강조했다. grounds의 신발은 경계를 지우지 않는다. 발목 아래에서 형태를 크게 확장하고 지면과 몸 사이에 두꺼운 공간을 만들어 신발의 존재를 분명하게 남긴다. 다리가 길어 보이는가보다 사람이 어떤 형태로 서 있는가를 먼저 보게 한다.

연한 핑크색 수트와 부피가 큰 신발을 결합한 grounds SS27 착장. 상체에 집중되기 쉬운 수트의 시선을 발끝까지 분산시켰다. 사진=grounds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한 핑크색 수트와 부피가 큰 신발을 결합한 grounds SS27 착장. 상체에 집중되기 쉬운 수트의 시선을 발끝까지 분산시켰다. 사진=grounds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한 핑크색 수트에서는 이런 변화가 테일러링과 맞붙는다. 재킷과 팬츠는 어깨와 허리, 다리를 비교적 정돈된 선으로 묶지만 발에서는 다시 큰 신발이 등장한다. 전통적인 수트가 어깨와 상체에 시각적인 중심을 두는 옷이라면 grounds의 스타일링은 그 무게를 발까지 끌어내린다. 얼굴과 헤어, 재킷의 칼라를 보고 끝나던 시선이 신발까지 내려가면서 사람을 위아래로 길게 훑게 된다.

큰 신발이 항상 몸을 둔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솔은 실제 외곽선의 크기를 유지하면서 안쪽을 비쳐 보이게 한다. 부피는 크지만 하나의 무거운 덩어리처럼 막히지 않고, 발 아래에 공기층이 생긴 듯한 인상을 남긴다. 크기를 줄이지 않고도 무게감을 조절한 것이다. 기존 신발이 작고 가늘게 보이는 방식으로 가벼움을 표현했다면 grounds는 큰 형태 안에 투명성과 빈 공간을 넣어 다른 종류의 가벼움을 만든다.

연한 보라색 아우터와 넉넉한 하의에 높은 솔의 신발을 더한 grounds SS27 착장. 의복과 신발의 부피가 몸의 위아래에서 함께 확장된다. 사진=grounds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한 보라색 아우터와 넉넉한 하의에 높은 솔의 신발을 더한 grounds SS27 착장. 의복과 신발의 부피가 몸의 위아래에서 함께 확장된다. 사진=grounds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한 보라색 아우터와 넉넉한 하의에서는 몸을 가늘게 조이는 대신 의복과 신발이 모두 여유 있는 부피를 만든다. 팬츠 아래로 두꺼운 솔이 이어지면서 다리는 하나의 긴 선보다 여러 층으로 나뉜다. 상체가 넓고 하체도 넓은데 발까지 커지면서 기존의 모래시계형이나 역삼각형처럼 익숙한 체형 분류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몸을 이상적인 하나의 비율에 맞추기보다 착장마다 다른 균형을 허용하는 쪽에 가깝다.

SS27에서 신발이 만드는 변화는 그래서 스타일링을 넘어 뷰티의 문제로 연결된다. 뷰티가 얼굴이나 화장에만 머물지 않고 몸을 어떤 비례로 보여줄 것인가까지 포함한다면, 발의 크기를 바꾸는 일도 전신 이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허리를 더 가늘게 만들거나 어깨를 넓히지 않아도 발끝의 부피 하나로 전체 몸이 달라 보일 수 있다.

POTTER와 LONPIE는 이런 비례를 더욱 크게 확장한다. POTTER는 약 10cm 높이의 조형적인 솔을 사용하고, LONPIE는 앞쪽 약 14cm, 뒤쪽 약 20cm까지 올라간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높이가 아니다. 발이 차지하는 면적 자체가 커지면서 신발과 다리, 다리와 몸통의 비율까지 함께 달라진다는 데 있다. 거대한 신발을 신은 몸은 같은 사람이어도 평범한 구두를 신었을 때와 다른 인체로 읽힌다.

회색 재킷과 와이드 팬츠 아래 큰 신발을 배치한 grounds SS27 착장. 어깨에서 발끝까지 여러 지점에 부피를 나눠 전통적인 수트의 균형을 바꿨다. 사진=grounds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회색 재킷과 와이드 팬츠 아래 큰 신발을 배치한 grounds SS27 착장. 어깨에서 발끝까지 여러 지점에 부피를 나눠 전통적인 수트의 균형을 바꿨다. 사진=grounds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회색 재킷과 와이드 팬츠에서는 수트의 익숙한 선과 신발의 과장이 한 몸 안에 놓인다. 재킷의 어깨와 넓은 팬츠는 이미 상당한 부피를 갖고 있지만 발끝에서도 형태가 다시 넓어진다. 팬츠 밑단 아래에서 신발이 조용히 사라지지 않고 별도의 형태를 남기면서 전신의 중심이 상체 한곳에 모이지 않는다. 얼굴과 어깨, 허리와 다리, 신발이 모두 한 번씩 시선을 끌어당긴다.

런웨이의 헤어와 메이크업도 과장된 신발과 경쟁할 정도로 강한 장식에 의존하지 않았다. 여러 모델의 얼굴에는 비교적 직접적인 인상이 남고, 헤어 역시 한 가지 미의 기준으로 통일하기보다 각기 다른 길이와 질감이 드러난다. 옷과 신발의 비례가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얼굴까지 같은 강도로 꾸며 전신을 채우는 방식은 피했다. 신발이 커질수록 오히려 얼굴은 과도하게 장식되지 않은 채 사람의 개별성을 남긴다.

grounds가 몸을 다루는 방식은 ‘보완’이라는 전통적인 뷰티 언어에서도 멀어진다. 얼굴형을 작아 보이게 하고, 허리를 가늘게 보이게 하고, 다리를 길게 보이게 하는 식의 접근은 하나의 이상적인 몸을 전제로 한다. SS27은 이미 존재하는 몸을 그 기준에 맞추기보다 발끝에서 낯선 요소를 더해 기존의 비율 자체를 흔든다. 아름다움을 완성된 정답으로 두기보다 비례가 달라졌을 때 나타나는 새로운 인상을 살핀다.

‘An Invitation’이라는 컬렉션명도 이런 몸의 변화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셔츠와 수트, 드레스 같은 익숙한 옷은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지만 발이 달라진 순간 사람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 미래의 인간을 만들기 위해 얼굴을 바꾸거나 전신을 기계처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사람이 땅을 딛는 가장 아래쪽의 비례 하나만 달라져도 전체 인상은 충분히 변한다.

뷰티에서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균형과 조화의 문제로 설명돼 왔다. 얼굴에서는 좌우 균형을, 몸에서는 긴 다리와 작은 허리, 적절한 어깨 폭을 이상적인 비례로 제시해왔다. grounds는 균형을 없애지는 않지만 어디에 균형을 둘 것인지 바꾼다. 발이 지나치게 커 보이는 순간 기존의 비례는 무너지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균형이 생긴다.

grounds SS27이 흥미로운 이유는 기괴한 신발을 만든 데만 있지 않다. 발을 크게 만들자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여겨졌던 비례도 함께 흔들렸다. 작은 발과 긴 다리, 위로 집중되는 시선이라는 오래된 공식을 따르지 않고 몸 전체에 여러 개의 중심을 만들었다.

신발이 달라지자 옷도 다시 보이고, 옷이 달라지자 얼굴과 몸의 관계도 다시 읽힌다. grounds가 SS27에서 건드린 것은 발끝의 형태이지만 변화가 미친 범위는 전신이다. ‘An Invitation’은 새로운 신발을 향한 초대에 머물지 않는다. 익숙하게 아름답다고 여겼던 몸의 비례에서 한 발 벗어나 다른 균형을 바라보게 하는 초대에 가깝다.

저작권자 © KtN (K trendy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