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중심 수익구조로의 전환, 콘텐츠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가
[KtN 임우경기자]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중심이 ‘콘텐츠 자체’에서 ‘지식재산(IP)’으로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의 확산과 함께, IP 기반 콘텐츠의 장기 확장 전략은 산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핵심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IP 중심 구조로의 전환이 창작 현장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우려 또한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K-콘텐츠가 전 세계 시청자와 소비자에게 소구력을 갖게 된 배경에는 독창적인 서사와 감정, 제작자 개개인의 미학적 실험이 있었다. IP 비즈니스의 논리가 산업 전체를 지배할 때, 창의성이라는 본질은 수익 모델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콘텐츠가 아닌 IP가 산업을 지배하다
2021년 이후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프라임 등 글로벌 OTT 플랫폼은 자사 독점 콘텐츠를 중심으로 IP 라이선싱 및 세계관 확장 전략을 강화해왔다. 한국도 이 흐름에 따라 <오징어 게임>, <D.P.>, <재벌집 막내아들>, <더 글로리> 등 특정 콘텐츠를 중심으로 장르 확장, 시즌제 기획, 세계관 제품화, 캐릭터 상품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2024년 기준 한국 방송영상 콘텐츠 산업의 수출은 전체 콘텐츠 수출의 26.6%를 차지하며, 영상 중심의 IP 수익화가 산업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전체 산업 내 극소수 IP에 수익과 자원이 집중되는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중소제작사와 신규 창작자의 진입은 점차 협소해지고 있으며, 슈퍼 IP를 반복 재생산하는 구조 속에서 콘텐츠 다양성과 실험성이 위축되고 있다.
IP 수익화 구조의 집중 편중 문제
IP 기반 수익화는 단일 콘텐츠로부터 다중 매출 흐름을 창출하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전략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OTT 계약, 해외 판권, 2차 유통, 굿즈·웹툰·게임 등 다양한 파생 수익원이 확보된다. 문제는 이 수익구조가 기획 단계부터 ‘수익 예측 가능성’이 우선되며, 창작의 위험을 감수하는 제작물보다 기존 검증된 IP 기반의 프로젝트가 선호된다는 점이다.
예산과 유통 채널이 검증된 기획안에만 집중되면서, 새로운 시도는 ‘투자 불확실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된다. 산업 구조의 수익화는 성공한 IP에 유리하게 설계되며, IP가 없는 독립 창작자는 유통 시장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글로벌 확장’의 이름으로 반복되는 기획 구조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분석한 2023년 방송영상콘텐츠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제작사의 상당수가 시즌제, 리메이크, 웹툰 원작 등 기존 IP 활용 기획에 몰두하고 있으며, 원작이 없는 순수 창작 시리즈는 전체 제작물의 21.4%에 불과한 수준이다.
창의성이 아니라 ‘수익 안정성’이 우선되는 제작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OTT 편성 제작물의 경우, 해외 수출 가능성과 판권 매각 가능성에 따라 기획 방향이 선제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으며, 문화적 맥락보다 시장성, 즉 ‘글로벌 유통 적합성’이 판단 기준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산업 집중화와 창작 불균형의 구조화
콘텐츠 IP 산업의 성장 이면에는 구조적 집중화가 진행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이끈 IP는 넷플릭스 등 OTT가 선점한 뒤, 해당 제작사와 장기 계약을 체결해 시리즈, 외전, 캐릭터 유니버스를 확장하고 있다. 한국 제작사는 IP 자체를 보유하지 못하거나, 수익 분배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IP를 선점한 플랫폼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구조 속에서, 국내 창작자는 ‘창조자’에서 ‘공급자’로 전락하고 있다.
제작비 투자 구조 또한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CJ ENM, 스튜디오드래곤, 카카오엔터, 티빙 등 대형 자본이 제작·유통·마케팅을 수직 계열화하고 있으며, 독립제작사의 경우 OTT 납품 외에는 자립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IP 비즈니스는 수익 모델의 다각화를 가능케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창작자가 배제된 IP 산업, 지속가능한가
지금의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은 IP가 자산이 되고, 플랫폼이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익이 구조화되는 방식 속에서 창작자의 권리와 창의성이 점차 희석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는 표준계약서 확산, IP 공동권리 모델 구축, 수익분배 구조 투명화 등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창작의 본질은 수익 논리의 하위 구조로 잔존할 가능성이 높다. IP 산업은 산업이다. 그러나 콘텐츠는 예술이다. 수익화 전략이 산업 전체를 이끄는 순간, 콘텐츠는 상품이 되고 창작은 유통의 전제 조건으로 축소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IP 중심 구조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이며, 창작자의 권리를 산업구조의 중심에 되돌려 놓는 정책적 재설계다. K-콘텐츠의 확장은 산업적 쾌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창의성의 고갈 위에 세워진 수익 구조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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