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그룹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의 공통점은 ‘야간 12시간 교대제’
[KtN 박준식기자] “일주일에 나흘을 밤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12시간씩 일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이재명 대통령이 SPC 시흥공장에서 던진 이 말은 단순한 의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산업사회가 수십 년 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장시간 노동의 구조를 해체하라는 근본적 요청이자, ‘노동시간’을 생명권의 기준으로 재설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SPC그룹의 8시간 초과 야근 폐지 선언은 이러한 구조 전환의 신호탄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노동자의 생명이 위협받는 원인은 다양하나, 그 근저에는 ‘시간’이 있다. 지나치게 많은 시간, 체계 없이 배분된 시간, 회복이 불가능한 시간. 심야 노동, 교대 근무, 연속 노동이 중첩되면 인간은 기계처럼 ‘고장’난다. 집중력 저하, 피로 누적, 신경계 이상, 심혈관질환. 모든 수치는 장시간 노동에서 기인한 위험과 직결된다.
SPC그룹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의 공통점은 ‘야간 12시간 교대제’였다. 한 주에 나흘, 한 번에 12시간, 일상적으로 새벽까지 이어지는 근무는 인간의 회복 메커니즘을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특히 심야 근무는 생체 리듬을 뒤틀고, 주간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며, 일상생활 전반에 만성적인 피로와 혼란을 유발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기계보다 덜 견디는 존재’로 취급받으며, 결국 사고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단순히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가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곧 ‘안전’이다. SPC 사망사고처럼 반복되는 기계 끼임, 추락, 장비 오작동은 대부분 ‘주의력 결핍’과 ‘즉각 대응 실패’라는 인간 조건의 한계를 노린다. 그리고 그 인간 조건은 과도한 노동시간 아래서 급격히 악화된다. 피로한 노동자에게 위험을 피하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피로하지 않은 조건을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시간 단축은 사업장 운영 구조, 설비 자동화, 인력 충원, 근무형태 개편까지 포함한 ‘시스템 전환’이다. SPC처럼 고정비 구조가 높은 식품 가공·제조업은 인력 1명 충원의 부담이 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생산 유지에 의존해왔다. 이는 곧 사고 위험을 전제로 한 생산 전략이며, 그 구조 자체가 위험한 고정비 최적화 모델이었다.
이제는 ‘사람이 죽지 않도록 만드는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영 원칙이 필요하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교대 인력을 늘려야 하고, 설비를 자동화해야 하며, 생산성과 직결된 효율성을 재설계해야 한다. 이는 인건비뿐 아니라 경영 전략 전체를 바꾸는 일이기에 기업은 종종 이를 미룬다. 그러나 SPC가 보여준 것처럼, 노동시간 구조가 사고를 부르고, 사고가 결국 브랜드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이상, 더는 미룰 수 없는 전환이 되었다.
또한,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한 법적 근로시간 제한이 아니라, 실효적 감시와 감독, 구조적 개선 유도 정책이 필요하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에도 교대제 운영과 포괄임금제, 간접노동·하청구조 등을 통해 회피하는 방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편법적 구조 아래서 노동자는 여전히 ‘하루 12시간’ 노동을 이어가며 사고 위험을 감수한다. 시간의 총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위험한 시간’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2025년 현재, 이재명 정부는 산재 사망률 감축을 국가 핵심 정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반복 산재 사업장을 방문해 노동시간 구조의 문제를 지적했고, 기업이 이를 받아들여 운영 방식을 바꿨다는 점에서, 이 흐름은 단기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는 정책 변곡점이 된다. 산재를 구조적으로 줄이기 위해선, 생명권과 노동시간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법적으로 명문화하고, 현장 기반의 구조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산업 경쟁력 저하가 아니라, 장기적 생산성 회복의 기반이기도 하다. 피로하지 않은 노동자가 더 정확하게 작업하며, 이직률과 재해율이 낮아질수록 조직의 효율은 오히려 개선된다. 더불어 사회적 의료비 절감, 국민 건강 증진, 일자리 창출이라는 2차 효과도 뒤따른다. 이제 기업은 단기 수익성보다 장기 지속가능성의 시야에서 노동시간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산업현장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다. SPC의 야근 폐지 선언은 하나의 사업장만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을 둘러싼 한국 산업 전반의 인식 전환을 촉발했다. 대통령이 묻고, 기업이 반응했고, 이제 제도가 응답할 차례다. 더 이상 위험한 시간을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시간부터 다시 나눠야 한다. 그 시간이 곧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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