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임우경기자] 서울 서초동에 새로 문을 여는 뤄니갤러리 서초점은 단순한 지점 확장이 아니다. 강북점에서 축적한 기획력과 담론성을 바탕으로, 강남이라는 문화적 소비 중심지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려 한다. 개관전 「시작의 조각, 열림 그리고 울림」은 예술을 보는 ‘눈’과 예술을 경험하는 ‘몸’을 동시에 호출하며, 오늘날 미술의 본질을 재고한다.
뤄니갤러리의 서초 진출은 단순히 갤러리의 규모 확대가 아닌, 예술 공간의 플랫폼화라는 시대적 전환을 반영한다. 작품을 소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담론과 체험, 지역사회와 세계를 연결하는 실험이 바로 이번 개관의 핵심이다.
예술, 질문으로 존재하다
김정대의 조각 — 감정과 오리지널리티의 긴장
김정대의 작품은 긍정적 감정을 전하지만, 동시에 ‘아우라와 오리지널리티’라는 철학적 의심을 남긴다. 김 작가의 작가노트는 “관람자는 실제 대상을 보는가, 아니면 아우라를 추종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는 발터 벤야민의 논의를 재현하면서도, AI 아트와 NFT 미술이 확산된 오늘날 더욱 첨예한 의미를 갖는다.
가령,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된 작품에 우리는 얼마만큼의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할 수 있을까. 김정대의 질문은 단순히 조각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 감각 전체를 흔드는 도전으로 읽힌다.
하태임의 색채 — 철학의 시각화
함께 전시되는 하태임의 컬렉션은 강렬한 원색과 부드러운 곡선이 교차한다. 강인함과 유연함의 공존은 뤄니갤러리의 정체성을 압축한다. 이 지점에서 갤러리는 단순히 작품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철학을 ‘전시’하는 장치로 변한다. 이는 뉴욕의 구겐하임이 건축 자체로 예술 철학을 구현했던 사례와 닮아 있다. 건물과 전시가 일치하는 순간, 갤러리는 철학의 공간으로 승격된다.
다감각적 개관식 — 감각의 민주화
개관식은 시각에 머무르지 않는다. 소프라노 이선영의 공연, 예술 철학을 담은 와인 브랜드 CSR, 아트토크와 케이터링 등이 준비된다. 전시는 눈으로만 즐기는 행위가 아니라, 청각과 미각을 포함한 총체적 감각의 체험으로 확장된다. 이는 몰입형 전시와 다감각적 예술 소비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는 세계적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한다. 관람객은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작품과 교류하며 감각적으로 몰입하는 ‘참여자’로 재정의된다.소프라노 이선영의 목소리, 와인이라는 미각적 은유, 아트토크의 지적 교류가 맞물린다. 이는 전시가 오감을 아우르는 총체적 경험으로 확장되는 장면이다.
지역과 도시문화에 미치는 파급
강북점의 성공 이후 강남에 거점을 마련한 것은 단순한 공간 확장이 아니다. 서초동은 이미 예술의전당을 비롯한 문화 인프라와 탄탄한 소비 기반을 갖춘 지역이다. 뤄니갤러리가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지역 상권, 관광, 교육 프로그램과의 연계 효과가 기대된다. 해외에서는 런던 테이트 모던, 도쿄 롯폰기 힐스 갤러리처럼 갤러리가 도시 브랜드를 재편하는 중심축이 되어왔다. 뤄니갤러리 서초점 역시 강남 문화지도를 새롭게 쓰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세대와 예술 소비 — 소유에서 경험으로
MZ세대를 중심으로 미술 소비는 ‘소유’에서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 작품을 구매하기보다는 체험하고, SNS에 기록하고, 일상의 일부로 공유하는 방식이다. 뤄니갤러리 서초점의 플랫폼 전략은 이러한 변화를 정조준한다. 이는 예술시장 저변 확대와 동시에, 갤러리 자체가 문화 브랜드이자 경험 상품으로 자리 잡는 전환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변화는 동시에 질문을 남긴다. 예술이 지나치게 경험 상품화될 때, 본래의 비판성과 사유는 약화되지 않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뤄니갤러리의 실험은 논쟁적 의미를 가진다.
한국과 세계의 갤러리 플랫폼화
서울의 아라리오뮤지엄은 건축과 현대미술을 결합해 관객 경험을 확장했다. 부산의 F1963은 폐공장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도시재생과 예술 소비를 동시에 끌어냈다.
런던 테이트 모던은 전시를 넘어 시민 담론의 광장이 되었고, 일본 teamLab Borderless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으로 ‘경험경제’를 상징했다.
뤄니갤러리 서초점은 이들 사례 사이에서 독자적 위치를 모색한다. 즉, 한국 현대미술의 비평적 전통과 글로벌 체험형 예술 트렌드를 접합하는 교차점에 서 있다.
갤러리의 미래, 플랫폼의 실험
뤄니갤러리 서초점은 단순한 개관을 넘어 ‘플랫폼 갤러리’라는 새로운 모델을 실험한다. 이는 작품을 매개로 예술가, 관람자, 지역사회, 산업이 함께 교차하는 구조다. 김정대의 작품은 오리지널리티의 본질을 묻고, 하태임의 컬렉션은 공간의 철학을 구현하며, 개관식은 다감각적 경험을 통해 예술 소비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궁극적으로 뤄니갤러리 서초점은 한국 현대예술의 미래를 탐색하는 하나의 실험실이다. 이곳에서 던져진 질문 "예술은 누구의 것이며 어떻게 경험되어야 하는가"는 강남을 넘어 한국 미술계 전체로 파급될 것이다.
서울 서초동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이 실험은, 앞으로 한국 예술의 플랫폼화를 이끄는 ‘열림과 울림의 무대’로 기억될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