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보다 먼저 성숙을 요구받는 시장의 조건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 미술을 자산으로 부르는 말은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 그러나 이 표현은 늘 논란을 동반했다. 가격이 오르면 자산이라 불렸고, 시장이 식으면 투기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최근 다시 미술이 자산이라는 이름으로 호출되는 배경은 이전과 다르다. 단기 상승의 기억이 아니라, 유지의 가능성이 먼저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 시장은 지금 수익의 속도보다 구조의 지속성을 묻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글로벌 미술 시장은 확연히 달라졌다. 초고가 작품이 시장의 상징이던 시기는 지나갔다. 거래 규모가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몇 점의 기록이 전체 분위기를 대표하던 구조는 약해졌다. 거래는 더 자주, 더 낮은 가격대에서 이루어지고, 시장의 중심은 넓어졌다. 미술을 자산으로 바라보는 기준도 이 변화에 맞춰 조정되고 있다.
이 변화는 미술을 금융 상품처럼 다루려는 시도와는 결이 다르다. 단기 차익을 전제로 한 접근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작품은 유동성이 낮고, 가격 형성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금융 상품의 문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늘어난다. 미술이 자산으로 읽히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이 성숙해야 한다는 판단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미술 시장에서 자산이라는 말은 가격의 높낮이를 뜻하지 않는다. 유지 가능성을 의미한다. 거래가 이어질 수 있는가, 가격을 설명할 수 있는가, 관리와 책임이 구조화돼 있는가가 기준이 된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미술은 언제든 소비재로 전락한다. 반대로 이 조건이 갖춰질 때 미술은 자산의 언어를 획득한다.
자산으로서의 미술은 개별 작품보다 구조를 먼저 요구한다. 유통 경로가 분산돼 있는지, 거래 기록이 축적돼 있는지, 관리 이력이 투명한지가 중요하다. 한두 번의 거래로는 기준이 생기지 않는다. 반복된 거래와 관리가 쌓여야 시장은 그 작품을 다시 부른다. 미술을 자산으로 만든 것은 가격이 아니라 시간이다.
이 과정에서 미술 시장은 ‘사는 사람’보다 ‘지키는 사람’을 더 많이 요구한다. 소유 이후의 관리, 전시와 보관, 보험과 기록이 뒤따르지 않으면 가격은 유지되지 않는다. 미술품은 사고 파는 대상이 아니라, 책임을 동반한 보유 대상이다. 이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술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플랫폼과 기술을 앞세운 새로운 시도들도 등장했다. 조각 소유, 디지털 인증, 자산화 모델은 미술의 접근성을 넓혔다. 그러나 기술이 신뢰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진위와 관리, 거래의 책임 구조가 명확하지 않으면 기술은 껍데기에 그친다. 시장은 여전히 설명 가능한 구조를 우선한다. 기술은 이를 보조할 뿐이다.
안정 자산으로 자주 언급되는 사례는 이 조건을 비교적 일찍 충족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이 반복해서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정 한 점의 기록이 아니라, 작품군 전체의 거래 흐름과 관리 이력이 축적돼 있다. 가격은 오르내렸지만, 거래는 끊기지 않았다. 시장은 이 지속성을 자산의 조건으로 읽어왔다.
이 지점에서 시장을 운영해온 쪽의 판단이 더해진다. 에스티에스그룹 의장 차효준은 미술을 자산으로 부르는 흐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술을 자산으로 보려면 먼저 시장이 설명 가능해야 합니다. 가격이 왜 유지되는지, 누가 책임을 지는지, 관리와 거래가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자산이라는 말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이 발언은 최근 미술 시장의 방향을 압축한다. 미술이 다시 자산으로 불리는 이유는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 아니라, 기준이 정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격을 떠받치는 요소들이 하나씩 점검되고, 책임의 경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조정 국면에서 이 차이는 더 뚜렷해진다. 시장이 위축될 때 어떤 작품이 남는지를 보면 구조가 보인다. 관리가 정리된 작품은 거래 간격이 길어질 수는 있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구조가 약한 작품은 관심이 식는 순간 거래 목록에서 빠져나간다. 자산이라는 평가는 상승기보다 하락기에서 더 정확해진다.
미술 시장이 자산을 말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단순화다. 미술은 금융 상품처럼 빠르게 환금되지 않는다. 대신 장기적인 관리와 합의의 과정을 요구한다. 이 과정을 감당할 준비가 있을 때 미술은 자산으로 기능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격은 숫자로만 남는다.
지금 미술 시장이 다시 자산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더 빨리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오래 남기 위해서다. 미술을 자산으로 만드는 힘은 기대가 아니라 구조다. 이 구조가 작동하는 한, 미술은 다시 자산의 언어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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