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국가유산청-민간 추진단 ‘격의 없는’ 실무 간담회… 남북·국제 전략, 이제부터 시작
코리아태권도유네스코 추진
[KtN 임우경기자] 8월 12일 오후, 국가유산청 청사 회의실. 허민 청장이 코리아태권도유네스코 추진단을 초청해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등재 신청부터 적극 검토하겠다.” 청장의 한마디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었다. 6년여에 걸친 민간의 경과보고를 끝까지 경청한 뒤, 정부 차원의 실무 지원을 약속했다. 자리에 함께한 윤순호 무형유산국장, 송인헌 세계유산정책과장, 방인아 지정심사과장, 최숙경 학예연구관, 김유내 주무관 등 실무 라인이 총출동했다. 민간에서는 공성배 용인대 교수와 최재춘 추진단장이 배석했다. 오랫동안 민간이 닦아온 초석과 정부의 제도적 가속이 맞물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회의는 상징을 넘어 실무의 출발점으로 기록된다.
태권도는 이미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을 각인시킨 종목이지만,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오른 이름은 아니다. 같은 전통 무예인 택견이 2011년 등록된 것과 대비된다. 스포츠의 프레임을 넘어, 공동체의 전승과 예법, 삶 속의 실천이라는 무형유산의 언어로 태권도를 번역해 내야 한다는 숙제가 본격화된 셈이다. 최근 북한의 단독 신청 움직임이 전해지면서 전개는 한층 복합해졌다. 2018년 씨름의 남북 공동등재 선례처럼 협력의 창이 열려 있지만, 누가 어떤 서사로 국제사회에 설명할 것인가의 경쟁 또한 피할 수 없는 국면이다.
정책 환경은 달라졌다. 정부는 문화재 행정을 국가유산 체제로 전환하며, 살아있는 유산 중심의 정책 축을 강조해 왔다. 무형유산의 보존과 활용, 국제협력을 한데 묶는 체계를 정비했다. 유네스코의 요건과 국내 목록 체계를 맞추고, 국제협력을 통해 공동등재와 다자외교, 관광·교육 연계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 빨라졌다. 8월 12일의 회동은 그 변화를 태권도라는 구체 과제 위에 올려놓는 장면이었다.
현장에선 무엇이 오갔나. 추진단은 그간의 준비를 압축한 경과보고를 내놓았다. 첫째, 태권도의 핵심 가치와 예법, 도장 문화, 품새 전승 등 생활 속 실천을 유산의 본체로 서술하는 작업. 둘째, 사료와 구술사, 지역 도장 네트워크, 시범단 기록을 모아 증거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점. 셋째, 국기원과 세계태권도, 지방정부, 교육계, 시범단 등 이해관계자의 역할을 정리하고 동의를 확장해 온 과정. 넷째, 단독·공동·다국간 등재라는 다중 시나리오를 놓고 각각의 위험과 기회를 비교해 온 시뮬레이션이다. 정부는 이 보고를 바탕으로 신청서 초안부터 검토하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실무 협의로 이어가겠다고 했다.
등재의 문턱은 높다. 유네스코의 평가 항목은 요건을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공동체의 참여가 실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보존과 전승 계획이 실행 가능한지, 등재가 갖는 공공적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특히 태권도는 스포츠 산업과 맞닿은 영역이 넓은 만큼, 상업화와 전승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관광 상품으로 소비되는 순간 전승의 맥락이 옅어지는 역설을 피하려면, 공동체의 주도권을 제도화하는 장치부터 점검해야 한다.
그럼에도 등재가 여는 창은 크다. 첫째, 가시성과 신뢰도의 상승이다. 등재는 특정 국가의 소유 선언이 아니라, 공동체가 전승을 이어가겠다는 국제적 약속이다. 이 약속은 정책 우선순위와 공적 지원의 타당성을 끌어올리고, 장기적 브랜드 자산을 축적한다. 둘째, 관광과 교육의 체류형 모델이 가능해진다. 도장 체험과 마스터 클래스, 시범과 지역 축제를 묶는 경험경제의 설계가 본격화될 수 있다. 셋째, 문화외교의 레버리지다. 씨름 공동등재가 보여주었듯, 협력의 서사는 한반도 평화의 언어로 기능한다. 남북이 공동의 설명서를 마련한다면, 그 과정 자체가 신뢰 구축의 통로가 된다. 넷째, 산업의 파급 효과다. 용품과 교육, 콘텐츠, 대회 운영과 플랫폼 등 연관 생태계가 넓게 열려 있다. 다만 규모의 추정이 들쭉날쭉한 탓에, 품목별·부문별 데이터로 세분화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리스크는 분명하다. 남북 변수는 예측 불가능하다. 공동등재를 추진할 경우 문서의 언어와 범위를 합의해야 하고, 단독·다국간 루트로 갈 경우에는 각기 다른 국제정치의 파고를 견뎌야 한다. 시간의 압박도 경시할 수 없다. 유네스코의 접수와 심사는 다년 절차로 운영되며, 미흡하면 다음 사이클로 이월된다. 속도보다 완성도라는 원칙을 잊기 어렵다. 무엇보다 증거의 경제학이 중요하다. 외부가 납득할 수 있는 서술과 자료, 그리고 삶의 장면이 필요하다. 태권도는 링 위의 스포트라이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동네 도장의 매트 위에서, 학교 체육 수업에서, 주말마다 도복을 챙기는 시민들의 몸짓에서 비로소 유산의 얼굴을 드러낸다.
취재를 종합하면, 지금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정체성의 언어화를 통한 서사 정비, 공동체 동의 구조의 제도화, 실행 가능한 보존·전승 계획의 청사진이다. 정체성의 언어화는 스포츠 규정집을 넘어선 삶의 문장으로 태권도를 다시 쓰는 일이다. 공동체 동의는 국내 도장과 사범, 여성과 청소년, 장애인 수련자, 해외 디아스포라까지 아우르는 참여의 지도다. 보존·전승 계획은 학교·생활체육·시범예술·지역축제·디지털 기록을 연결해, 누구나 접근 가능한 학습과 체험의 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명칭과 범위의 전략, 즉 태권도의 요소를 과도하게 넓히지도 좁히지도 않는 정교한 정의가 뒤따라야 한다. 이미 등재된 택견과의 구분 가능성을 정리하는 비교 서술도 필수다.
외교와 협상은 또 다른 축이다. 공동등재의 장점은 평화의 상징성과 국제적 가시성에 있다. 그러나 합의 도출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단독 또는 다국간 신청의 시나리오도 동시에 운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해외 전승국의 참여를 폭넓게 끌어들이는 다국간 모델은 태권도의 글로벌 저변을 증명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어느 길을 택하든, 국제 커뮤니케이션의 품질은 성패를 가른다. 영어와 불어로 된 브리핑 키트, 여성과 청소년, 이주민 공동체의 수련 사례를 담은 다큐멘터리형 기록, 지역별 맞춤형 교육 콘텐츠가 필요하다.
거버넌스와 예산도 숙제다. 국가유산청과 외교, 체육, 지방정부, 민간을 잇는 프로그램 관리 체계를 세우고, 연차별 예산과 성과지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등재 이후의 사후관리 계획까지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교육 콘텐츠의 표준화, 지역별 특화 프로그램, 관광의 적정 수용량을 고려한 운영 지표 등 지속가능성의 설계를 미리 공개하는 편이 심사에서도 유리하다.
이번 회의는 그래서 출발점이자 시험대다. 추진단의 6년이 책상 위 보고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부는 실무의 속도를 내고 민간은 증거의 두께를 더해야 한다.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는 누구의 공로를 적는 문제가 아니다. 생활의 언어를 어떻게 기록하고, 누구와 함께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다. 매트 위의 예의와 절제, 반복 수련의 시간, 품새의 호흡이 한 나라의 문화적 품위로 번역되는 과정. 그 번역을 지금, 우리 문장으로 시작할 때다.
허민 국가유산청장
윤순호 무형유산국장
송인헌 세계유산정책과장
방인아 지정심사과장
최숙경 지정심사과 학예연구관
김유내 세계유산정책 주무관
공성배 용인대학교 교수·코리아태권도추진단 실무위원
최재춘 코리아태권도 유네스코추진단장
정체성의 언어화와 범위 정의
국가 무형유산 목록 반영 상태 점검
공동체 동의 구조의 제도화
보존·전승 계획의 실행성
증거 포트폴리오의 신뢰도
국제 커뮤니케이션의 품질
공동·단독·다국간 시나리오의 병행
거버넌스·예산의 투명성
사후관리와 지속가능성의 선제 설계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