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언어로 해석된 오리엔탈리즘의 변주
[KtN 임우경기자]Hermès의 향수 컬렉션 ‘An Oriental Dream’은 시장의 변화를 넘어 문화의 전환을 드러낸다. 브랜드는 동양을 주제로 한 향을 통해 세계 럭셔리 산업이 어떻게 감각의 언어로 재편되는지를 보여준다. 시각적 화려함 대신 향의 구조로 문화의 깊이를 탐색한 결과물이다.
수석 조향사 크리스틴 나겔은 원료의 결합으로 동서양의 감각을 엮었다. 아가우드, 발삼 전나무, 베티버, 통카빈은 각각 다른 기후와 풍토의 상징이다. 나겔은 향의 균형을 기술적 조합이 아닌 감정의 조율로 완성했다. 무거운 잔향을 지닌 전통 오리엔탈 향에서 벗어나 맑고 투명한 질감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양의 낭만적 이미지가 아니라 일상의 온도를 재현한 결과다.
Hermès 향수 라인은 2004년 Hermessence 시리즈로 시작됐다. 당시 Hermès는 향을 부속품이 아닌 독립된 예술로 다루는 방식을 택했다. 조향사 이름을 제품 전면에 올리고, 창작 과정을 작품 제작에 준하는 절차로 진행했다. Hermès 내부에서는 조향실을 ‘감각의 아틀리에’라 부른다. 원료는 향료가 아니라 조형 재료로 취급된다. 향의 창작 과정이 예술의 언어로 옮겨졌다.
‘An Oriental Dream’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Hermès는 동양을 상징적 이미지로 소비하지 않는다. 병의 형태와 색감, 포장의 질감 어디에도 이국적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오리엔탈이라는 단어가 주는 시각적 과잉을 배제한 채, 향의 구조 속에서 문화의 결을 구현했다. 향은 단어보다 느리고, 이미지보다 깊다. Hermès는 향을 통해 문화의 차이를 감각의 층위로 옮겼다.
동양을 다루는 태도는 과거 럭셔리 브랜드의 접근법과 확연히 다르다. 1990년대 명품 시장은 금사, 붉은색, 자수 같은 장식적 코드로 ‘이국’을 표현했다. Hermès는 그 틀을 해체했다. 시각적 기호 대신 공기와 온도, 질감의 관계를 세밀하게 조율했다. 동양의 향은 장식이 아니라 구조로 번역되었다. Hermès의 향은 문화가 아니라 감각으로 동양을 해석한다.
Hermès의 오리엔탈 시리즈는 동시에 시장 분석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베인앤드컴퍼니 자료에 따르면 2025년까지 아시아 지역의 럭셔리 소비 비중은 전 세계의 절반에 이를 전망이다. Hermès는 이 지역에서 향수 라인을 전략적 전위로 삼았다. 중국, 한국, 일본, 싱가포르의 소비자는 향을 자아의 언어로 사용한다. 브랜드는 감각의 변화를 읽고, 문화적 정체성과 시장 구조를 동시에 겨냥했다.
Hermès 향수의 핵심은 소재와 구조의 긴장에 있다. ‘Agar Ébène’은 짙은 나무의 질감과 발삼 전나무의 시원한 결이 맞물린다. ‘Vétiver Tonka’는 흙냄새와 단맛이 교차하며 온도의 층을 만든다. Hermès는 향의 형태로 대륙의 기후를 번역한다. 나겔의 작업은 문화의 서술이 아니라 감각의 조형이다. 향의 층이 곧 언어다.
Hermès는 동양을 단일한 공간으로 다루지 않는다. 제품 기획 단계에서 동아시아, 중동, 동남아시아의 기후와 식물 분포, 생활 습관까지 분석한다. 향의 농도와 잔향, 확산 속도는 지역별 공기 밀도와 온도에 맞춰 조정된다. 브랜드 내부에서는 이를 ‘기후 기반 감각 설계’라 부른다. Hermès는 동양을 신비의 공간이 아닌, 구체적인 기후와 생활의 공간으로 다룬다.
Hermès의 접근은 문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향은 시각 예술이 다루지 못한 감각의 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파리 사회학자 피에르 랑베르는 Hermès의 오리엔탈 시리즈를 “감각의 번역학적 시도”로 평가했다. 그는 “Hermès는 문화적 차이를 재현하지 않고 감각의 구조로 치환했다”고 분석했다. Hermès 향수는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의 복제물이 아니라 감각의 언어로 전환된 작품에 가깝다.
Hermès는 향을 상업의 언어로 다루지 않는다. 향을 통해 문화적 존중과 감정의 교류를 구현한다. 향의 조합은 시장 전략을 넘어 일종의 문화적 외교로 작동한다. Hermès는 향을 매개로 세계 각지의 감각을 연결하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장한다. 예술과 상업, 서구와 동양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감각의 질서가 형성된다.
Hermès의 ‘An Oriental Dream’은 럭셔리 산업의 새로운 문화 모델을 제시했다. 동양을 상징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의 파트너로 세우며, 향의 언어로 시장과 문화를 동시에 엮었다. Hermès가 구축한 감각의 교차점은 럭셔리 산업이 문화적 책임을 지는 방식의 한 사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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