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을 품은 시계, 라 케트가 보여준 기술의 서사화

Vacheron Constantin Marks 270 Years With Les Cabinotiers “La Quête” 사진=Vacheron Constanti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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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임우경기자]바쉐론 콘스탄틴이 270주년을 맞아 선보인 라 케트(La Quête) 시리즈는 고급 시계 산업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압축했다. 이번 편은 천문학을 주제로 한 모델에 초점을 두고, 기술과 상징이 결합된 구조를 분석한다. 별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하늘의 질서를 기계 구조로 재현하려는 시도는 시계 산업이 과학의 언어를 예술의 문법으로 옮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 케트 시리즈에서 천문학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중심 개념으로 작동한다. 코스미카 듀오, 셀레스티아, 미스 오브 더 플레이아데스 모델은 별의 위치, 지구의 자전, 시간의 흐름을 정밀하게 계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밀함은 실용보다 상징에 가깝다. 시계는 하늘의 움직임을 재현하며 인간의 위치를 다시 설정한다.

코스미카 듀오는 시간의 복층적 구조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케이스 양면에 서로 다른 시간 체계가 배치됐다. 한쪽은 천문학적 시간을, 반대편은 기계적 시간을 담았다. 별자리의 이동과 태양의 각도를 계산하는 장치는 천체 관측의 원리를 기반으로 설계됐다. 투명한 구조 안에서 1,000개가 넘는 부품이 맞물려 작동한다. 하늘의 움직임과 인간의 기술이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양면 구조는 현대 시계 산업이 추구하는 이중적 성격을 상징한다. 외형은 천문학의 질서를 따르지만, 내부는 인간의 기술력을 찬양한다. 별의 이동을 계산하는 과정은 과학의 영역에 속하지만, 이를 손목 위에서 구현하는 행위는 미학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하늘의 질서를 재현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주를 인간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도에 가깝다.

Vacheron Constantin Marks 270 Years With Les Cabinotiers “La Quête” 사진=Vacheron Constanti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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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케트 시리즈의 천문학적 기능은 기술적 성취이자 문화적 서술이다. 시간의 계산, 별자리의 위치, 일출과 일몰의 시각, 평균 태양시와 진태양시의 차이 같은 요소가 모두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이 과정은 과학의 논리를 예술의 언어로 번역하는 시도에 가깝다. 시계는 관찰의 도구가 아니라 관조의 대상이 된다.

셀레스티아 모델은 천문학의 두 가지 철학을 병치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우주관과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체계가 각각의 시계로 표현됐다. 두 모델은 동일한 기계 원리를 사용하지만 세계를 해석하는 시각이 다르다. 지구 중심 체계는 인간의 중심성을 상징하고, 태양 중심 체계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상기시킨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두 관점을 기술과 조형으로 병렬시켜 시간 철학의 다양성을 드러냈다.

두 모델 모두 23개의 복합 기능을 탑재했다. 태양의 위치, 달의 위상, 황도대의 이동, 항성 시간을 모두 기계적 계산으로 구현했다. 시계 내부의 514개 부품이 각각의 계산을 담당하며, 8.7밀리미터의 얇은 구조 안에 모든 기능이 들어섰다. 셀레스티아는 기술의 정밀함을 넘어 인간이 우주를 수학적 질서로 환원하려는 오랜 욕망을 시각화한 결과물로 읽힌다.

천문학을 기반으로 한 시계 제작은 시계 산업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그러나 현대의 초고가 시계는 천문학을 새롭게 해석한다. 과거의 시계가 항해와 측정을 위해 만들어졌다면, 오늘날의 초고가 시계는 상징적 권위를 구현하기 위해 제작된다. 하늘의 움직임은 기능의 근거가 아니라 미학의 근거로 전환됐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천체의 질서를 기술의 정당성으로 삼고, 기술의 정당성을 통해 브랜드의 상징 자산을 강화한다.

Vacheron Constantin Marks 270 Years With Les Cabinotiers “La Quête” 사진=Vacheron Constanti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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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케트의 천문학 모델은 인간의 탐구 정신을 표현하는 동시에 권력의 언어로 작동한다. 별의 움직임을 손목 위에서 재현하는 개념은 자연의 질서를 소유 가능한 형태로 축소하는 인식 구조와 맞닿아 있다. 하늘을 이해하려는 학문적 욕망이 자본의 체계 안으로 흡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계는 우주의 모형이지만, 이 모형은 언제나 소유 가능한 형태로 압축된다.

천문학적 기능을 내세운 시계들은 시간의 절대성을 약화시킨다. 별자리의 이동, 자전과 공전의 속도, 항성의 변주는 인간의 시간 감각과 다르게 작동한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러한 차이를 기계적 구조로 드러내며, 시간의 상대성을 시각화했다. 이는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철학적 선언에 가깝다. 시계가 표현하는 시간은 객관적 흐름이 아니라 해석 가능한 구조로 재편된다.

라 케트의 천문학 모델들은 예술과 과학, 기술과 신화의 경계를 허물었다. 각 모델의 설계와 조형, 장식은 시계 산업이 예술적 해석의 시대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별의 움직임은 천체의 운동이 아니라 인간이 구축한 상징 체계의 일부가 됐다. 천문학은 기술의 언어에서 미학의 언어로 이행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초고가 시계의 본질이 기술 과시가 아니라 의미 구성임을 증명했다. 시계 산업의 중심에는 여전히 정밀한 기술이 존재하지만, 그 기술은 이제 서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하늘의 질서를 계산하는 행위는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고자 하는 오래된 욕망의 표현이다.

라 케트의 천문학 모델은 기능의 경계를 넘어서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시계는 하늘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시선을 반영하는 문화적 언어로 변모했다. 시간은 계산되지 않고 해석된다. 별의 움직임을 담은 시계는 결국 인간이 자신을 우주 속에 위치시키는 방식의 표현이다.

Vacheron Constantin Marks 270 Years With Les Cabinotiers “La Quête” 사진=Vacheron Constanti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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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을 품은 시계의 구조적 변주

모델명 천문학적 기능 기술 구조 미학적 구성 철학적 해석
Cosmica Duo Grand Complication 항성시·진태양시·일출·일몰·윤년 주기·황도대 이동 등 24개 기능 리버서블 케이스, 1,003개 부품, 수동 칼리버 2756-B1 한쪽은 천체도, 반대쪽은 오픈워크 기계면, 청금석빛 다이얼 인간이 관찰하는 하늘과 계산하는 시간이 분리되어 있음을 시각화
Celestia “Homage to Ptolemy” 지구 중심 체계의 별자리 궤도, 달의 위상, 황도대 회전 23개 기능, 세 개의 기어 트레인, 3주 파워리저브 백금 케이스, 지구 중심 궤도 조각, 회전형 별자리 디스크 인간 중심적 우주관의 상징. 세계를 인간의 시선으로 재구성
Celestia “Homage to Copernicus” 태양 중심 체계의 행성 궤도, 항성시·태양시 동시 표기 동일한 Cal.3600 구조, 두 번째 기어 트레인으로 태양 중심 계산 핑크골드 케이스, 태양을 중심으로 퍼지는 궤도 조형 자연 중심적 세계관의 복원. 인간이 아닌 우주 질서에 대한 경외의 표현
Armillary Tourbillon “Myth of the Pleiades” 항성 운동과 별자리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표현 이중축 아밀러리 투르비용, 바이레트로그레이드 시·분 표시 450시간 조각, 별자리 다이아몬드 인레이 천체의 질서를 기술 구조로 구현. 하늘의 운동을 인간의 손목으로 축소
Grand Complication “Moon Dust” 달의 위상, 일출·일몰·천문학적 시차 등 839개 부품, Cal.2755 GC16, 미니트 리피터 탑재 다이아몬드 200개 이상, 기요셰 패턴, 이중 다이얼 구조 달빛의 반사를 기계적 리듬으로 치환. 천문학과 장식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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