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의 귀환과 케이트 홀리의 영화 의상 혁명
[KtN 김동희기자]고딕 문화는 몇 차례의 큰 파도를 지나며 늘 극적인 방식으로 돌아왔다. 19세기 초 유럽을 뒤흔든 낭만주의 문학, 20세기 산업화의 그림자 속에서 부상한 하위문화, 그리고 21세기 디지털 피로감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 존재의 어둠을 마주하고자 하는 욕망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2025년 오늘 다시 고딕 감성이 문화와 패션 전면에서 강력하게 부활하고 있다. 그 중심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있다. 케이트 홀리 의상 디자이너가 구축한 이 작품의 시각 세계는 전통 고딕을 단순히 재현한 것이 아니라 현대적 감각으로 완전히 재조립하며 대중의 시선을 장악하고 있다.
메리 셸리가 발표한 1818년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 기술의 시대적 폭주와 존재의 비극을 예견한 고전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원작의 철학과 서사만큼 중요한 요소가 바로 정서적 어둠과 낭만을 품은 시각 이미지였다. 고대 종교 건축, 석상, 인간의 몸을 넘어선 존재를 향한 욕망. 델 토로 감독은 이러한 이미지의 근원을 다시 끌어올리고 여기에 독일 낭만주의 미술과 신화적 세계를 결합한다. 케이트 홀리가 구체화한 의상들은 이 독창적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며 고딕이라는 장르를 동시대 문화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는다.
홀리는 인터뷰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빅토리아 시대 고정관념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19세기 영국 문학을 떠올릴 때 흔히 소환되는 디킨스식 정통 빅토리아 양식 대신, 델 토로 감독은 독일식 낭만주의를 짙게 깔아 인간과 창조물 사이의 신화적 감정을 촉발했다. 신에 도전하는 창조의 광기, 자연과 문명 사이의 균열, 기억이 만들어내는 우울한 꿈결. 이러한 감정 구조를 정밀하게 읽은 홀리는 의상을 서사 구조의 핵심으로 삼는다. 인물의 심리 상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적 도구로 활용하며 이야기의 감정선을 한층 더 또렷하게 만든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의 오스카 아이삭이 착용한 의상은 패션 전문가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초기 장면에서 등장하는 다크 브라운 벨벳 수트는 완벽하게 계산된 재단과 소재가 빅터의 뛰어난 지성과 계급적 배경을 보여준다. 케이트 홀리는 이 옷을 제작할 때 록스타 믹 재거의 스타일을 모델로 삼았다. 창작 그 자체를 무대처럼 여기는 광적인 열정을 빅터에게 입히고자 한 선택이다. 시간이 흐르고 실험이 폭주할수록 홀리는 의도적으로 재단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정갈한 칼라는 흐트러지고, 옷깃의 선들은 비틀린다. 천재의 몰락과 죄책감을 상징하며 시각적으로 광기의 균열을 표현한다. 이처럼 의상이 스토리텔링의 흐름을 주도하는 전략은 현대 영화 속 캐릭터 디자인의 중요한 전환점을 확인시킨다.
프랑켄슈타인은 그 자체로 ‘붉은색’을 내러티브의 핵심으로 삼는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붉은 베일, 빅터의 장갑, 엘리자베스의 웨딩드레스를 적시는 피. 이 선택은 인간의 죄, 탄생과 죽음, 존재의 기억이라는 주제를 이어주는 시각 언어다. 케이트 홀리는 색을 단순한 장식이 아닌, 서사를 관통하는 감정의 끈으로 다룬다. 이는 현대 패션계에서도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색의 정치학, 색의 감정적 상징성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고딕 패션의 부활을 뒷받침한다.
여성 캐릭터 엘리자베스의 의상은 프랑켄슈타인의 세계관을 가장 시적으로 구현한다. 홀리는 자연에 대한 애정과 생명의 순환을 테마로 식물과 곤충 모티프를 의상 텍스처에 적용했다. 주얼리 부분에서도 세계적 브랜드 티파니와 협업하며 고전과 현대적 감각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엘리자베스가 착용한 스카라브(풍뎅이) 모티브 목걸이는 자연과 부활의 상징성을 부여하면서, 작품 전체의 비극적 로맨스에 힘을 싣는다. 메리 셸리의 초상 속 헤어스타일을 오마주한 요소까지 더해 작품의 역사성과 모던한 예술성이 우아하게 겹쳐진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웨딩드레스이다. 이 드레스는 전통적 웨딩 패션의 상징성을 제거하고, 창조물의 봉합과 해부학적 구조를 시각화하며 전통의 경계를 과감히 넘는다. 초박형 오가르자로 구성된 외피 속에 드러나는 내부 구조는 마치 엑스레이로 여과된 것처럼 보이며, 상처와 봉합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낸다. 드레스는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붉게 물들고, 그 변형된 색은 존재의 고통을 시각적 진실로 남긴다. 이 장면은 수많은 영화 의상사 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케이트 홀리의 디자인은 영화 산업의 기술과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현대 소비문화의 방향을 예측하게 한다. 이미 패션계에서는 프랑켄슈타인에서 비롯된 텍스처 연구가 활발히 등장하고 있다. 봉합과 구조 노출, 고급 재단의 해체적 변형 등이 런웨이에서 관찰되고 있으며, 고딕 로맨티시즘은 스트리트 패션에서도 부활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영화 한 편의 성공을 넘어 고딕 패션이 다음 계절을 지배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또한 넷플릭스가 택한 개봉 전략은 작품의 경제적 파급력을 상징한다. 제한된 극장 상영을 통해 작품성을 먼저 입증하고, 스트리밍 공개를 통해 확산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비평가와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상황을 만들었다. 의상 중심의 홍보 전략 역시 뚜렷하다. 케이트 홀리가 구축하는 고딕 패션의 거대한 세계는 이미 수많은 패션 매거진과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고, 이는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도까지 끌어올리는 선순환을 형성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이 지금 다시 뜨거운 이유는 분명하다. 고딕 미학이 단순한 유행이 아닌, 인간의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상징적 언어라는 점이다. 불완전함을 품은 존재의 복잡한 감정, 신을 모방하고자 한 인간의 오만, 사랑과 상실이 빚어낸 비극적 아름다움. 이 모든 것이 다시 한번 관객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케이트 홀리의 의상은 이 감정 구조를 옷의 언어로 번역하며 현대 관객에게 또렷하게 전달한다.
2025년 문화와 패션의 첫번째 키워드는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귀환이다. 고딕의 본질을 깊이 탐구한 이 영화의 의상은 예술적 깊이와 상업적 영향력을 동시에 확보하며 새로운 시대의 고딕 패션 흐름을 선언하고 있다. 이 귀환은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고딕은 다시 한번 사회가 잃어버린 감정의 언어를 되찾게 만들고 있다. 인간 내면의 그림자와 마주하는 이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앞으로 어떤 진화를 보여줄지 주목할 시점이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