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asso SKETCHBOOK 최초 공개 예정,  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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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남자

작/박준식

등장인물

한도윤 : 무명 화가. 피카소의 영혼이 잠식된 존재. 예술로 살아남으려 하지만 스스로를 파괴한다.
해설1 : 한도윤의 긍정적 자아. 감정과 상처, 진실을 관객에게 직접 전달한다.
해설2 : 한도윤의 부정적 자아. 조롱과 광기를 통해 사건을 밀어붙인다.
피카소(음성/실루엣) : 현실을 잠식하는 신화적 존재. 도윤의 자아를 흡수하고 파멸로 이끈다.

형사1 :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경찰. 양심과 시스템 사이에서 무너진다.
형사2 : 폭력으로 정의를 가장하는 경찰. 두려움을 힘으로 둔갑시킨다.

기자 : 비극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언어 권력자. 죽음까지 기사거리로 삼는다.
SNS 인플루언서 : 조회수로 관객을 움직이는 대중의 상징. 폭력 소비를 부추긴다.
미술 평론가 : 해석 권력. 예술을 언어로 지배하고 시장을 정당화한다.
포토그래퍼 : 예술가를 착취하는 자본 하수인. 고통을 작품으로 상품화한다.
경매사 : 예술을 가격표로 환산하는 자본의 입. 흥분을 조장한다.
콜렉터1 : 희귀성과 소유욕을 숭배하는 자. 죽음조차 trophy로 본다.
콜렉터2 : 예술 참여의 자격을 엘리트 기준으로 판단하는 소비자.

아버지 : 정상성 강요. 평범이라는 폭력으로 아들을 짓누른다.
어머니 : 사랑이라는 이름의 공포를 심은 원죄자. 아이에게 신을 강요한다.
한도혁(형) : 비교와 조롱으로 도윤을 흔드는 기준의 화신.

지우성 : 어린 시절 친구. 죄책감의 기원.
점쟁이 : 미신과 공포로 비극을 강화하는 예언의 폭력자.
서민주 : 사랑을 거래로 삼는 욕망의 인물. 러브스캠 유도자.

인질1 : 평범한 삶의 허망함을 드러내는 희극적 피해자.
인질2 : 생존 욕망의 민낯을 폭로하는 인물.

관객(극 내부 설정) : 작품 속 실제 공범. (이 극을 완성시키는 폭력의 주체)

 

연극 '피카소의 남자'를 위한 피카소 작품.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극 '피카소의 남자'를 위한 피카소 작품.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제1막 1장
장소: 갤러리

(조명 ON. 총을 든 한도윤. 피카소 스케치 영상 깜빡임. 관객석 겨냥.)

한도윤: 움직이면… 예술은 끝난다.
한도윤: 지금부터 여러분은 내 그림 속 피사체다.

해설2: 시작부터 광기 터진다.

인질1: 살려주세요… 제발요…

해설1: 누군가는 두려움 속에 있다.
해설2: 아주 훌륭하다.

형사1(외침): 한도윤! 그만 둬!
형사1(속): 제발… 인간 하나라도 구하고 싶다…

형사2(외침): 총 내려!
형사2(속): 쏴버리고 싶다… 진심이다.

기자(카메라): 예술계 첫 테러! 생중계 중입니다!
기자(속): 피 좀 튀어라. 특종이다.

SNS 인플루언서(휴대폰): 헬로 여러분~ 살아있는 콘텐츠!
SNS 인플루언서(속): 팔로워 두 배 가자.

미술 평론가: 자아 폭발과 사회 타살의 현장!

해설2: 또 시작이다, 아무 말 대잔치.

한도윤: 조용히 해!
(비명)

(스포트라이트 – 인질1)

인질1 독백: 살려주세요 제발… 아 근데 존경스럽다! 저 사람은 꿈이라도 꾸잖아. 나는 꿈이 뭐였더라? 야근? 인사고과? 커피 쿠폰? 내 인생은 보너스 아닌 벌점 누적이었네. 근데 여기서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승진 필요 없고 그냥 살고 싶어지네? 웃기죠? 살아봤자 시시했는데 막상 죽기 직전에 되니까 살고 싶어 미치겠어. 회사도 때려치우고 진짜 하고 싶은 거… 월차 정도 내보고 싶어요. 제발… 살게 해주세요…

형사2: 네가 뭔데 사람을 조종해!
형사2(속): 저 놈은 그래도 예술가라고 부른다…

형사1: 도윤 씨, 스케치북 내려놓고 얘기하자.
형사1(속): 제발 잘 끝나게…

한도윤: 이건 내 거다.
한도윤: 나는 피카소다.

해설1: 아이 같다.
해설2: 그리고 신 같다.

(조명 점멸. 피카소 선 영상 확대. 암전)

■ 제1막 2장

장소: 경찰서 심문실

(차가운 형광등. CCTV 붉은 점 점멸. 수갑 찬 한도윤. 형사1과 형사2 마주 앉는다.)

형사2: 피카소? 네가? 웃기지 마.
형사2(속): 미친놈 하나 주웠네.

형사1: 왜 스케치북을 훔쳤나. 팔려고? 유명해지려고?
형사1(속): 제발… 제정신으로 대답해라…

한도윤: 잊히지 않으려고 훔쳤다.
한도윤: 사람은 사라지지만 그림은 남는다.

해설1: 진심이다.
해설2: 아니, 변명이다.

형사2: 천재는 피카소!
형사2: 넌 범죄자! 비교하지 마라!
형사2(속): 질투 난다. 넌 그래도 예술가라고 부른다…

한도윤: 천재를 누가 정하죠? 당신들이?

해설1: 말이 칼이 된다.
해설2: 더 날카롭게 찔러라.

형사1 독백 

형사1 독백: 왜 나는 이런 인간들을 계속 마주할까… 사건 속에서 발견하는 건 늘 인간의 무너진 자리였고, 나는 그걸 붙잡는 척만 했지, 구한 적 없다. 사실 난 무섭다. 총도, 피도, 범죄자도.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지금 저 남자의 눈이다. 살아보겠다고, 누군가 되겠다고 발악하는 눈. 나는 살아 있나? 나도 누군가를 구한 적이 있었나? 그냥 규정대로 움직이는 기계 아니었나? 그를 구해보고 싶다. 그를 구하면… 오늘은 나도, 누군가를 살린 인간이었다고… 누가 기억해주지 않을까.

(조명 전환 → 플래시백)

점쟁이: 이 아이는 피카소가 아니면 죽는다!
어머니: 부적 네 개 주세요!
한도윤: 저는… 도윤인데요…
점쟁이: 그 이름으론 못 산다!

(심문실 복귀)

형사1: 누군가 널 붙잡지 않았나? 사랑 같은 것?
형사1(속): 제발… 네 편이 있었기를…

(조명 전환 → 플래시백)

서민주: 캄보디아로 와! 부자 되자!
서민주(속): 재능 없는 애는 해외에서 속여야지.

(심문실 복귀)

한도윤: 세상이 먼저 내 목을 그림에 걸었다.

피카소(음성): 그리고 내가 너를 대신 살아남는다.

형사2: 이송해! 갤러리로!
형사2(속): 쇼가 다시 시작된다.

한도윤: 죽어가는 인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피카소로 돌아간다.

(암전)

■ 제1막 3장

장소: 한도윤의 집 (과거)

(밥상. TV 예능 프로그램 소리. 가족 셋 앉아 있다.)

아버지: TV 좀 봐라. 저렇게 살아야지.
어머니: 얼마나 착해, 효자잖아.
한도윤: 저 사람은… 그림 안 그리잖아요.
아버지: 그게 장점이지!

해설1: 사랑받고 싶은 말.
해설2: 더 밟아라.

형(한도혁): 도윤아. 포기하면 편해.
형(속): 나는 정답을 얻었고, 넌 오답이다.

한도윤: 형은 좋겠다. 정답만 살아서.
아버지: 형은 공무원이다. 멀쩡하다.

아버지 독백 

아버지 독백: 나는 평범하게 살라고 했을 뿐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 남한테 꿀리지 않게 버티는 게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 줄 아냐, 나는 꿈도 포기했고, 자존심도 계좌에 넣고 살았다, 그런데 넌 왜 저렇게 자신만만하냐, 왜 꾸지도 말라는 꿈을 붙잡고 가족까지 흔드냐, 내가 망한 건가? 내가 잘못 산 건가? 그래서 네가 틀렸다는 걸 보고 싶나 보다, 그래야 내가 살아온 게 틀리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 미안하다, 근데 나는 네가 나처럼 살아남아주길 바란다, 네가 도망치지 말고 현실에 무릎 꿇어주길 바란다, 그래야 내 인생도 구원받는다.

어머니: 네가 뭘 해도 좋으니까… 굶기진 말자.
한도혁: 그냥 취직해. 공모전 같은 건 그만두고.

해설1: 그는 무너진다.
해설2: 지금 더 밀어버려.

한도윤: 나는… 피카소가 되어야 살아요.
아버지: 또 그 소리냐!
형사2(음성 잔향처럼 겹침): 미친놈…
(조명 급격히 다운 → 전환)

■ 제1막 4장

장소: 점집 (과거)

(붉은 조명. 부적과 향으로 가득한 공간. 어린 도윤과 어머니 들어온다.)

점쟁이: 손 내밀어라… 이 아이… 예술의 기운이 흐른다!
어머니: 아이고! 역시 우리 도윤이!
점쟁이: 그러나 피카소가 아니면 죽는다!
어머니: 네!?
도윤: 저는… 그냥… 도윤인데…
점쟁이: 그 이름으론 못 산다!
어머니: 부적 네 개 주세요! 많이 사면 더 안전하죠?

해설1: 사랑이다.
해설2: 그리고 저주다.

어머니 독백 

어머니 독백: 나는 사랑한다고 했을 뿐이다, 내 아이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나는 뭐든지 믿을 수 있고 어디든 절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사랑이 이 아이 목에 칼을 들이대게 된 걸까, 남들 다 하는 걱정이고 남들 다 하는 기대인데 왜 이 아이는 이토록 덜덜 떨고 있지, ‘피카소가 아니면 죽는다’는 말이 왜 이렇게 설득력 있게 들릴까, 이 아이가 망하면 내 인생이 틀렸다는 증거가 될까 봐 무서운 거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핑계로 겁을 주고, 사랑을 핑계로 붙잡고, 사랑을 핑계로 이 아이를 비정상으로 만들고 있다, 도윤아 미안하다, 엄마가 널 살리고 싶어서 네 인생을 죽이고 있다.

도윤: 저… 죽나요?
점쟁이: 피카소처럼 그리면 산다.
어머니: 들었지! 넌 피카소야!
해설1: 그날, 아이의 이름은 사라졌다.
해설2: 그리고 신화가 들어왔다.

(조명 급변 / 사이렌 사운드 스쳐 지나가며 장면 전환)

■ 제1막 5장

장소: 놀이터 (과거)

(해 질 무렵. 쇠사슬 그네 덜컹거린다. 어린 도윤과 어린 지우성 웃으며 뛰논다.)

지우성: 더 높이! 더 높이!
도윤: 조심해… 그러다 다친다니까…

해설1: 친구를 지키고 싶었다.
해설2: 하지만 실수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지우성, 그네에서 몸 날리다 중심 잃고 추락. 울음 터진다.)

지우성: 손… 아파… 아야야…
도윤: 우성아… 미안해… 미안해…

어른1: 뭐하는 거야!? 네가 민 거 맞지!?
어른2: 저런 애는 사고친다니까! 위험한 애야!

해설2: 드디어 누군가 낙인을 찍었다.

해설1 독백 

해설1 독백: 그 아이는 그냥 놀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 빨리 죄의 색으로 칠한다, ‘너 때문’이라는 말은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잔인한 흉터가 되는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도윤은 처음 배웠다, 숨을 쉬어도 죄가 있고, 웃어도 죄가 있고, 다른 아이를 만지는 손조차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그는 평생 달고 살게 된다, “내가 잘못했나?”라는 질문을, 어른들이 던진 책임을 아이가 평생 짊어지게 된다.

도윤: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한 거야…
해설1: 죄책감은 이렇게 태어난다.
해설2: 잘 키웠다. 이제 그 죄로 굴려라.

(조명 어두워짐. 불안한 심장 박동음. 암전)

■ 제1막 6장

장소: 허름한 스튜디오(인사동 어딘가)

(형광등 깜빡임. 군데군데 곰팡이. 카메라, 조명, 작은 캔버스 몇 장. 도윤은 지친 얼굴. 포토그래퍼는 자신감에 가득.)

포토그래퍼: 이거 예술이야!
포토그래퍼: 네가 고통스러울수록 사진은 더 팔린다니까!

도윤: 고통을 팔아요?
포토그래퍼: 팔리는 게 예술이지!

해설1: 도윤은 착취를 모른다.
해설2: 아니, 모른 척한다.

포토그래퍼: 표정! 더 공허하게! 폐허처럼!
포토그래퍼(속): 쟤 고장 나면 새로 데려오면 되니까.

도윤: …저는… 그냥 인정받고 싶어요.
포토그래퍼: 오! 바로 그거! 찌질함! 천재 될 수 없는 불쌍함! 최고야!

(찰칵! 찰칵! 플래시 번쩍)

포토그래퍼 독백 

포토그래퍼 독백: 나는 예술을 사랑한다, 아니 예술이 주는 권력을 사랑한다, 예술가? 그건 그냥 재료다, 울어도 좋고 삐뚤어져도 좋고 미쳐도 좋다, 그 상태가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상품이 된다, 나는 착취자가 아니다, 관객이 시켰다, 대중은 타인의 실패를 술안주로 즐기고, 타인의 멍을 자신의 자존감으로 쓰니까, 나는 그저 시장의 충실한 종일 뿐이다, 도윤아 널 망치는 건 내가 아니라 세상이다, 난 그냥 셔터를 눌렀을 뿐이다.

도윤: 전시… 정말 시켜주시는 거죠?
포토그래퍼: 그래! ‘불행의 인류학’ 특별전!
포토그래퍼: 네가 대표샘플이야!

해설2: 축하해라.
해설1: 천천히… 부서지고 있다…

(도윤,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카메라 플래시. 조명 페이드아웃 → 심문실 잔향 겹치며 암전)

■ 제1막 7장

장소: 카페 → 캄보디아 영상 전화 플래시백

(카페. 대낮. 서민주는 태블릿을 들여다보고, 도윤은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눈빛.)

서민주: 도윤아, 넌 재능 있어.
서민주: 근데 한국은 좁잖아.
서민주: 캄보디아 아트 프로젝트! 네 그림 전시하자!

도윤: 정말요? 진짜… 제가요?

해설2: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서민주: 숙소비만 먼저 보내줘~
서민주(속): 봉 하나 잡았다.

해설1: 그래도 사랑받는다고 믿었다.

도윤: 민주야… 너만 믿고 갈게.
서민주: 그래, 나만 믿어.

(조명 전환 → 영상전화 화면 연기)

서민주: 어머, 도윤! 지금 돈 들어왔어!
서민주(속): 이제 차단하면 되겠네.

도윤: 우리… 사랑 맞지?
서민주: 예술가는 사랑도 실험해야지!

해설2: 와우.
해설1: 무너진다…

서민주: 곧 너를 세계가 안다!
도윤: 네가 있으니까… 나도 살아…

(서민주 화면 ‘연결 종료’ / 뚝)

도윤: 민주야? …민주야!!
해설2: 전형적인 사기 패턴.
해설1: 그래도 마음은 아프다.

(카페, 도윤 혼자. 주변 사람들은 무심하게 휴대폰만 본다.)

서민주 독백 

서민주 독백: 사랑? 돈 없으면 그게 사랑이냐, 예술가라며? 꿈이 있다며? 그럼 증명해, 세상은 재능을 영혼의 통화로 바꾸지 않아, 현금 아니면 그 어떤 감정도 인정받지 못해,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나도 피해자다, 나도 누군가의 착취였다, 그러니까 먼저 치고 나가야지, 억울하면 성공해, 성공하면 사랑은 따라오는 거니까, 도윤아 미안하지만 세상은 네 눈물보다 내 생존이 더 급해.

도윤: (휴대폰 바닥에 던지며) 나를 버린 게… 사랑이었나.

해설1: 한 번 더 부서진다.
해설2: 찢어져서 좋아.

해설1: 하지만 아직… 그가 살아있다.
해설2: 그러니… 더 부숴라.

(도윤, 스케치북을 움켜쥐고 괴로움에 고개 숙인다. 머리 위에 피카소 그림 영상 출몰. 조명 피드아웃)

■ 제1막 8장

장소: KUBA ART CENTER 경매장 (현재)

(럭셔리 조명.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 도윤은 스케치북을 품에 안고 숨어 입장. 관객석 쪽으로도 조명이 스치며 경매장 ‘손님’으로 인식시킨다.)

경매사: 자, 여러분— 미술사적 가치가 거룩히 응축된 피카소 스케치북!
경매사: 시작가는 백억!
관중들: 오~!!

해설2: 더러운 흥분.
해설1: 예술이… 숫자가 된다.

콜렉터1: 백오억!
콜렉터2: 백오십억!

한도윤: 잠깐!!
(모두 시선 쏠림)

경매사: 이… 미등록 참가자는?
한도윤: 이건… 내 겁니다.

(정적)

콜렉터2: (비웃으며) 저… 누구세요?
콜렉터1: 퍼포먼스인가? 재미다.

한도윤: 피카소가 그린 건… 내가 그린 거다!
한도윤: 피카소는 나다!

관중들: 우와~! 쇼다 쇼!
(몇몇 박수)

해설2: 재밌다. 계속해봐.
해설1: 그는 마지막으로 울부짖고 있다.

경매사: 그럼… 입찰하시죠?
한도윤: …백오십억.
경매사: 확인할 계좌는?
한도윤: …없습니다.

(폭소)

콜렉터1 독백 

콜렉터1 독백: 예술은 아름답지 않아도 돼, 희귀하면 돼, 가짜라도 귀하면 돼, 진짜라도 흔하면 쓰레기다, 나는 예술가를 사랑하지 않아, 예술가의 목숨을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는 이 순간을 사랑한다, 나 같은 자본가 덕에 예술이 존재한다? 아니지, 나 같은 자본가 때문에 예술은 죽지 못하고 산다, 예술? 그게 뭔데? 나는 그냥 돈으로 영혼을 수집할 뿐이다.

콜렉터2: 경찰 불러요. 저 사람 불편하게 하잖아!
해설2: 드디어 시작이다.

형사들 난입. 도윤 포위.

형사1: 도윤 씨, 제발…
형사2: 그만하라니까, 예술가님!
해설1: 이제 도망칠 수 없다.

한도윤: (스케치북 꼭 쥐며) 이건… 내 이름이다.
한도윤: 그림 없으면… 나는 없다.

(혼란의 소음. 싸이렌. 카메라 프레시. 조명 피치 올리며 장면 종료)

■ 제1막 9장

장소: 갤러리 – 인질극 확장 (현재)

(사이렌 반복. 경찰 저격조 배치. 갤러리 안은 혼란. 도윤은 스케치북을 들고 밀려 들어온 관람객과 직원들을 몰아세운다.)

한도윤: 다들 조용히!
한도윤: 예술이… 여기서 끝날 수 없어!

인질2: 살려줘요! 저 결혼식 일주일 남았어요!
인질1: 난 월차라도 내고 싶었어…!

해설2: 하, 인생의 민낯 제각각.
해설1: 모두가 살아남고 싶다.

형사2(확성기): 도윤! 협상하자고!
형사2(속): 총만 한 번 쏘게 해라.

형사1(확성기): 아무도 다치지 않게, 대화로 끝내자!
형사1(속): 제발 우리 모두 살아남자…

기자: 여러분! 범죄 현장 바로 앞입니다!
기자(속): 죽으면 특종, 살면 장기 독점 인터뷰.

SNS 인플루언서: 이건 그냥 대박 콘텐츠!
해설2: 시청률·조회수·구독… 삼위일체.

관객 역할 배우(갤러리 손님 중 한 명): 이게 진짜 예술 아닌가요?
다른 손님: 나… 사인 좀?

한도윤: 사인이 필요해요?
한도윤: 내 피로 써 드릴까요?

(모두 비명)

인질2 독백 

인질2 독백: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핸드폰을 붙들고 있다, 나도 방금까지 웨딩드레스 서치했는데, 여기선 드레스고 뭐고… 그냥 속옷만 살아남으면 감사해야 할 판이다, 웃기지? 결혼이 인생 최대 이벤트라 생각했는데, 이젠 생존이 더 큰 이벤트네, 살려만 준다면… 나 진짜 달라질 거야, 남편 밥도 안 태우고, 시댁에도 미소 지을 거고, 인생 걸고 잘 살아 볼게, 근데… 살고 싶은 이유가 남편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살아보고 싶다, 내가 진짜로 나로서 숨 쉬는 하루를.

형사2: 정신 차려, 예술가님! 사람 죽인다!
형사2(속): 제발 누가 나 좀 말려라.

형사1: 도윤 씨… 당신을 돕고 싶어.
형사1(속): 당신이 아직 살아있길.

한도윤: 살아있는 건… 그림이지 사람은 아니에요.
한도윤: 사람은 잊혀지니까.

해설1: 눈물에 젖은 절규.
해설2: 더 미쳐라.

(쇼윈도 너머 관객석 조명 스치며 관객 자체가 인질인 듯한 효과.)

조명 플리커 → 암전
총성 직전의 정적

■ 제1막 10장

장소: 갤러리 — 도윤의 정신 속

(조명이 급격히 쏟아지며, 피카소 스케치 선들이 벽과 바닥에 살아 움직이듯 퍼진다.
도윤 주변으로 원형 빛이 감싸며 현실과 환상이 겹친다.)

한도윤: 너는… 누구지…?
피카소(실루엣, 음성): 네 안에 있다.

해설1: 그가 찾아왔다.
해설2: 그리고 지배한다.

한도윤: 내가 너를 훔친 게 아니야…
한도윤: 네가 나를 훔친 거잖아…

피카소(음성): 네 이름은 이미 없어졌다.
피카소: 나를 그리면 산다고 했잖나.

(도윤 무릎 꿇는다. 피카소 실루엣이 도윤 바로 뒤에 겹쳐보인다.)

형사1(멀리서): 도윤 씨!! 듣고 있어!?
형사1(속): 제발… 제발 살아있어라…

형사2(속삭임): 미친 예술 놀이… 끝장내주지…

(도윤 들리지 않는다.)

해설2 독백 

해설2 독백: 결국 이렇게 되는 거다, 꿈이 클수록 무너질 때 소리가 더 크게 난다, 사람들은 영웅을 원한다, 하지만 영웅이 되는 순간, 인간은 처형된다, 도윤은 자신이 피카소가 되면 살 수 있다고 믿었고, 이제 피카소가 그를 먹어 치우고 있다, 죽어가는 건 도윤이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은 살아남는다, 예술은 언제나 누군가를 제물로 삼고 도망친다, 자… 이제 신화를 위해 한 명 정도는 죽어줘야지.

한도윤: 제발… 날 살려줘…
피카소: 이미 늦었다.

해설1: 도윤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찾는다.
해설2: 그리고 너는? 관객?
해설2: 너도 이걸 보고 웃고 있으니까 같은 편이다.

(피카소 실루엣, 도윤을 뒤에서 감싼다. 그림선이 그의 목을 감싸는 영상효과. 심장소리가 점점 빠르게.)

조명 깜박이며 암전

■ 제1막 11장

장소: 갤러리 앞 — 경찰 포위 상황

(장전된 총. 방패. 레이저 조준점이 갤러리 유리를 스캔한다. 관객석으로도 조준점 스치며 몰입 유도.)

형사2(확성기): 한도윤! 이제 끝이야!
형사2(속): 제발 한 방만, 딱 한 방만…

형사1: 제발 조용히 접근해!
형사1(속): 죽이면 안 돼… 절대 안 돼…

해설2: 두려움은 사람을 맹수로 만든다.
해설1: 그리고 맹수는 자신을 보호한다고 말한다.

(갤러리 안 도윤은 스케치북 가슴에 안고 극도로 떨고 있다.)

한도윤: 다가오면… 예술도 죽는다…
한도윤: 나 죽이면… 너희도 잊혀진다…

형사2: 예술? 지금 사람 목숨이 걸렸어!
형사2(속): 그 말… 웃기다… 사실 맞는 말이다…

기자: 상황 여러분 보이시나요!?
기자(속): 이건 내 출세다… 하… 흥분돼…

해설2: 전부 이 비극을 연료 삼아 달리고 있다.

형사2 독백 

형사2 독백: 사실은 무섭다, 겁난다, 총을 들고 있어도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가장이고 누군가에게 필요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명령에 목을 맨다, 나도 기억되고 싶다,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비겁하게 살아온 날들에 면죄부를 주고 싶다, 솔직히 말해볼까, 이놈을 쓰러뜨리면… 내 이름도 기사에 나온다, TV에도 나오겠지, 아이에게 자랑할 수도 있겠지, “아빠가 나쁜 놈 잡았다”고, 하지만 그가 예술가면? 그 순간 나는 관객에게 살인자가 된다, 인간이란 참… 정의를 가장한 공포 그 자체다.

한도윤: (절규) 나는 살고 싶어!!!
해설1: 그는 인간이다.
해설2: 인간이라서 더 불쌍하다.

형사1: 도윤 씨… 손에 든 걸 내려놔…
형사1(속): 제발 누가 나 좀 구해줘…

(잠시 정적. 서늘한 조명. 총구들이 한도윤을 향해 일제히 조정.)

피카소(음성): 이제 마지막 붓질이다.

(레이저 포인트가 도윤 가슴을 꽂는다.)

암전 직전 교차음 — 관객 심장과 같은 박동

■ 제1막 12장

장소: 갤러리 내부 — 최후

(정적. 빨간 조준점이 도윤의 가슴을 맴돈다. 모든 인물의 숨이 멈춘 듯. 피카소 실루엣은 도윤 뒤에 겹쳐 서 있다.)

형사1: 제발…
형사2: 발포 준비!

한도윤: 나는… 사라지기 싫다…
해설1: 어린아이의 울음.
해설2: 신의 오만.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누르는 도윤)

한도윤: 나를 지우려면… 예술도 죽여라.

해설1: 그는 아직 살아있다.
해설2: 곧 아무도 아니다.

(총성. 도윤 쓰러진다. 스케치북 바닥으로 흩어진다.)

해설1: 도윤이 죽는다.
해설2: 피카소는 산다.

(형사1 달려온다. 형사2는 굳어 서 있다.)

형사1: 의료팀!!! 제발… 살아있어라 제발!!
형사2(속): 끝났다… 끝이 났다…

카메라 플래시. 마이크 쏟아짐.

기자: 여러분… 실시간으로 보고 계십니다! 예술가가 스스로 비극의 필름을 마감했습니다!
기자(속): 완벽해… 끝내준다… 이제 내 이름도 남겠다…

SNS 인플루언서: 댓글 난리 났어요~! #실시간_예술 #피카소_테러리스트

미술 평론가: 죽음마저 예술적 제스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해설2: 당신도? 역시.

(카메라, 관객석을 향한다. 관객이 사건의 소비자가 됨을 명확히)

기자 독백 

기자 독백: 세상은 비극을 사랑한다, 누군가가 망가지고 무너지고 찢겨야 조회수가 오른다, 나는 그냥 그 사실을 잘 이용하는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 죽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는 직업, 누군가 불타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카메라를 드는 직업, 사람들은 나를 책임 없다고 욕하지, 하지만 당신들은 어떠냐, 보고, 공유하고, 버튼 한 번 눌러서 그 죽음을 영원히 돌린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는 죄인이다, 근데 당신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함께 죽였다, 피카소가 아니라 한도윤을.

(조명 — 도윤 시신에서 서서히 멀어져 갤러리 바닥에 흩어진 그림 조각만 남긴다)

해설1: 한도윤은 예술을 꿈꿨다.
해설2: 그리고 예술은 그 꿈 위에 서 있다.

(해설1과 해설2, 관객을 향해 돌아선다.)

해설1: 당신은 기억할 것인가.
해설2: 아니면 또 소비할 것인가.

(조명 OFF — 완전 암전)

연극 '피카소의 남자'를 위한 피카소 작품.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극 '피카소의 남자'를 위한 피카소 작품.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작가의 생각

피카소의 남자는 한도윤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갈가리 찢기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도윤은 살아남기 위해 그림을 붙잡았지만, 예술은 한도윤을 구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은 한도윤이라는 존재를 소모하고, 피카소라는 신화를 키우는 연료로 삼는다. 예술은 남고, 예술가는 사라진다. 이 역설이 한도윤의 비극을 만든다.

한도윤의 몰락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가 만든 파괴다. 가족은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한도윤을 억압한다. 사랑이라는 관계는 생존을 위한 거래로 변질된다. 미술 시장은 예술가의 고통을 가격표로 환산한다. 경찰과 언론은 폭력을 제도와 뉴스라는 명목으로 정당화한다. 관객은 비극을 콘텐츠로 소비한다. 한도윤에게 가해진 모든 상처는 사회가 함께 행사한 폭력이다.

공연의 무대는 가능한 한 비어 있게 설계된다. 텅 빈 무대는 한도윤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관객이 보는 공간은 미술관이자 심문실이고, 어린 시절 놀이터이자 점집이며, 결국 해체된 정신 세계다. 세트 없이 남은 허공은 한도윤이 지워지고 사라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소품은 스케치북 단 하나만 무대에 실체로 존재한다. 이 오브제는 한도윤의 정체성, 스스로를 지탱하는 마지막 증거이며, 동시에 현실을 무너뜨리는 기믹이다.

의상은 캐릭터 과시를 위한 장식이 아니라 얼굴의 색채로 심리를 드러내는 장치다. 배우의 눈 아래 찍힌 한 점, 광대뼈 위에 비틀린 면, 이마에 가로지른 선 하나가 삶의 균열을 상징한다. 파란색은 절망을, 분홍색은 속절없는 희망을 암시하며, 붉은색은 신화의 폭력을 경고한다. 피카소 색의 잔재는 모든 인물이 한도윤의 내면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영상과 사운드는 극단적으로 절제한다. 피카소 스케치 영상은 실제 장면이 아니라 정신 침식의 시각화로 사용된다. 관객은 화면의 선이 진짜인지 환상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사운드 또한 극적 긴장점에만 삽입된다. 총성, 심장 박동, 카메라 셔터 소리는 관객의 신체를 직접 자극하고, 방관자의 위치를 불편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순간은 침묵이 지배하며, 이 침묵은 언어보다 더 가혹한 폭력으로 작동한다.

피카소의 남자는 한 예술가가 꿈과 신화 사이에서 인생을 잃는 장면을 기록한다.
이 기록은 단지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관객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장치다.

한도윤은 무대에서 사라진다.
피카소는 무대 위에 남는다.
최종 질문은 관객에게 돌아온다.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예술을 남기기 위해 누구를 또 죽일 것인가.
비극을 박수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목격할 것인가.

피카소의 남자는
한 사람을 예술로 소비하는 사회 전체를 겨냥한다.
극장을 나가는 순간,
관객도 그 질문을 짊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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