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그래픽카드 회사가 아니다"… 전 세계 AI 투자금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 의외의 장소
[KtN 최기형기자]엔비디아의 2026회계연도 매출은 2159억3800만달러였다. 1년 전보다 65% 늘었다. 4분기 매출은 681억2700만달러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보다 20%, 전년 동기보다 73%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연간 1303억8700만달러, 순이익은 1200억6700만달러였다. 각각 60%, 65% 늘었다. 희석주당순이익은 4.90달러로 67% 증가했다. 반도체 기업 실적표로 보기엔 규모가 너무 커졌고, 증가 속도 역시 여전히 가팔랐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번 실적은 ‘사상 최대’라는 말로 묶을 수 있다. 그러나 더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매출의 크기보다 매출의 자리다. 돈이 어느 사업부로 몰렸는지, 회사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옮겨갔는지, 실적표는 이미 답을 적어 놓고 있다. 중심은 데이터센터였다.
2026회계연도 데이터센터 매출은 1937억달러였다. 1년 전보다 68% 늘었다. 4분기 데이터센터 매출은 623억달러로 직전 분기보다 22%, 전년 동기보다 75% 증가했다. 4분기 전체 매출 681억달러 가운데 대부분이 데이터센터에서 나왔다. 엔비디아를 설명하는 첫 문장은 더 이상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가 아니다.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 AI 모델 업체, 기업들의 추론 인프라 증설, 각국의 AI 설비투자 계획이 가장 먼저 찍히는 곳이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매출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엔비디아의 이름은 게이밍 시장에서 먼저 불렸다. 그래픽카드 신제품과 프레임 성능, 게이머 수요가 회사를 움직이는 핵심 변수였다. 지금 실적표는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서버용 가속기와 네트워크, 저장장치와 운영환경이 한 덩어리로 묶인 데이터센터 사업이 회사를 끌고 간다. 게임 칩 회사라는 오래된 설명은 이제 절반만 맞는 말이 됐다.
수익도 같은 쪽으로 움직였다. 4분기 영업이익은 442억9900만달러였다. 전년 동기보다 84% 늘었다. 순이익은 429억6000만달러로 94% 증가했다. 희석주당순이익은 1.76달러로 98% 늘었다. 매출 증가가 이익 증가로 빠르게 이어졌다. AI 설비투자 확대가 매출만 키운 것이 아니라 수익까지 두텁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총마진은 여전히 높았다. 4분기 GAAP 기준 총마진은 75.0%, 비GAAP 기준 총마진은 75.2%였다. 직전 분기보다 각각 1.6%포인트 높아졌다. 수익성만 보면 압도적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다만 연간 숫자를 함께 놓고 보면 다른 장면도 보인다. 2026회계연도 GAAP 총마진은 71.1%였다. 1년 전 75.0%보다 3.9%포인트 낮다. 비GAAP 총마진도 71.3%로 1년 전 75.5%보다 4.2%포인트 내려왔다.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은 맞지만, 제품 전환과 공급 확대가 비용 부담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영업비용 증가폭도 적지 않았다. 4분기 영업비용은 67억9400만달러였다. 1년 전보다 45% 늘었다. 연구개발비는 55억1200만달러, 판매관리비는 12억8200만달러였다. 연간 영업비용은 230억7600만달러로 41% 증가했다. 연구개발과 사업 확장에 돈을 더 넣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익 증가 속도가 비용 증가를 앞질렀다. 엔비디아는 비용을 억누르며 실적을 만든 회사가 아니라, 더 많이 쓰면서 더 많이 벌어들인 회사에 가깝다.
시장 시선은 이미 다음 분기로 넘어가 있다. 엔비디아는 2027회계연도 1분기 매출을 780억달러, 오차 범위는 ±2%로 제시했다. 막 끝난 4분기 매출 681억달러보다 더 높은 수치다. 회사는 전망치에 중국 데이터센터 컴퓨트 매출을 넣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국 변수를 비워 둔 채 내놓은 숫자다. 수출 규제와 지정학적 긴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북미와 다른 지역의 설비투자 열기가 여전히 강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음 분기 총마진 전망은 GAAP 기준 74.9%, 비GAAP 기준 75.0%였다. 영업비용 전망은 각각 77억달러, 75억달러다. 눈에 띄는 변화도 하나 들어 있다. 엔비디아는 2027회계연도 1분기부터 비GAAP 지표에 주식보상비용을 포함하기로 했다. 주식보상은 인재 확보와 유지를 위한 핵심 보상 체계라는 설명이 붙었다. 미국 기술기업 다수가 비GAAP 지표에서 빼 온 항목까지 넣겠다고 밝힌 셈이다. 수익성 설명 방식도 한 단계 달라졌다.
사업부별 실적을 들여다보면 엔비디아 안에서 벌어진 이동이 더 또렷하다. 게이밍 부문 4분기 매출은 37억달러였다. 전년 동기보다 47% 늘었지만 직전 분기보다 13% 줄었다. 회사는 연말 성수기 뒤 유통 채널 재고가 조정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연간 게이밍 매출은 160억달러로 41% 증가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여전히 큰 사업이다. 다만 데이터센터와 나란히 놓는 순간 비중 차이가 선명해진다. 예전에는 엔비디아 실적을 읽을 때 게이밍이 첫 문단에 왔다. 이제는 아니다. 게이밍은 포트폴리오의 한 축이고, 매출의 중심은 이미 서버 쪽으로 넘어갔다.
프로페셔널 비주얼라이제이션 부문은 4분기 13억달러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보다 74%, 전년 동기보다 159% 늘었다. 연간 매출은 32억달러로 70% 증가했다. 자동차·로보틱스 부문은 4분기 6억400만달러, 연간 23억달러였다. 4분기 기준 직전 분기보다 2%, 전년 동기보다 6% 증가했다. 절대 규모는 아직 작다. 그래도 자율주행, 로봇, 산업용 시스템이 실적표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금은 데이터센터가 압도하지만, 회사가 넓혀 가는 방향은 이미 숫자에 찍히고 있다.
현금흐름은 이번 실적에서 빼놓기 어렵다. 2026회계연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1027억1800만달러였다. 1년 전 640억8900만달러에서 크게 늘었다. 잉여현금흐름은 965억7500만달러였다. 4분기 잉여현금흐름만 349억200만달러에 이른다. 장부상 이익이 아니라 실제 현금이 대규모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AI 설비투자 확대가 엔비디아의 손익계산서에서 끝나지 않고 현금으로도 확인됐다. 연간 잉여현금흐름이 1000억달러에 가까운 반도체 기업은 흔치 않다.
주주환원 규모도 컸다. 엔비디아는 2026회계연도에 자사주 매입과 현금배당으로 411억달러를 주주에게 돌려줬다. 4분기 말 기준 자사주 매입 승인 잔액은 585억달러 남아 있다. 다음 분기 배당은 주당 0.01달러로 유지했다. 배당보다 자사주 매입의 비중이 훨씬 크다. 성장주이면서도 현금환원 여력이 큰 회사라는 뜻이다. 벌어들인 돈은 한쪽에서 주주에게 돌아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래 사업으로 다시 흘러 들어간다.
재무상태표를 보면 덩치 변화가 더 선명하다. 2026년 1월 25일 기준 총자산은 2068억300만달러였다. 1년 전 1116억100만달러에서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현금·현금성자산·시장성 유가증권은 625억5600만달러였다. 매출채권은 384억6600만달러, 재고는 214억300만달러였다. 수요 확대 국면에서 매출채권과 재고가 함께 불어났다. 비시장성 지분증권은 222억5100만달러로 늘었다. 손에 쥔 현금을 쌓아 두기보다 지분 투자와 기술 확보, 사업 확장에 계속 쓰고 있다는 의미다.
투자 지출 내역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26회계연도 현금흐름표에는 비시장성 지분증권 매입 175억200만달러가 적혀 있다. 4분기에는 그록 관련 130억달러 지출도 별도 항목으로 잡혔다. 자본지출, 지분투자, 인수·제휴가 동시에 움직인 셈이다. 현재 실적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시장을 미리 확보하는 쪽으로 자금이 흘렀다고 볼 수 있다.
실적표가 말하는 변화는 간단하다. 기업들이 AI를 시험하는 단계에서 실제로 깔고 돌리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모델을 한 번 학습시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추론 서비스와 업무 자동화, 산업용 시스템 운영까지 지출이 넓어지고 있다.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매출 비중이 높아진 배경도 여기에 있다. 4분기 전체 매출 681억달러 가운데 데이터센터 매출이 623억달러였다는 숫자가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AI 투자금이 흘러간 자리에서 가장 먼저 매출로 확인되는 회사가 엔비디아다.
실적 발표에 담긴 사업 목록도 같은 흐름을 드러낸다. 데이터센터 부문 설명에는 루빈 플랫폼, 블루필드-4, 메타와의 다년 협력, AWS·구글 클라우드·마이크로소프트 애저·오라클 클라우드와의 협력이 함께 올라왔다. AI 저장장치 인프라, 오픈 모델, 산업용 AI, 기상 모델도 이름을 올렸다. 이번 분기 매출 증가의 배경을 적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디에 장비를 더 깔고, 어느 산업으로 넓히고, 어떤 소프트웨어와 모델을 얹을지까지 한 문서 안에 들어갔다. 엔비디아가 파는 물건이 단일 칩에서 시스템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GTC 2026에서 나온 내용도 실적표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루빈은 새 GPU 한 장으로 소개되지 않았다. CPU, 네트워크, 저장장치까지 묶인 풀스택 플랫폼으로 설명됐다. 개발자용 소형 시스템부터 데이터센터급 장비, 에이전트 개발 환경까지 한 줄로 엮는 구성이 뒤따랐다. AI 서비스를 만드는 단계와 운영하는 단계를 한 회사가 모두 붙잡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미 실적이 데이터센터 쪽으로 기운 만큼, 사업 설명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물론 모든 발표가 곧장 매출로 잡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로보틱스 부문 매출은 아직 작고, 산업용 AI와 피지컬 AI는 데이터센터에 비하면 초기 구간에 가깝다. 실적표만 놓고 보면 현재를 떠받치는 기둥은 여전히 데이터센터 하나다. 그렇다고 새 사업들을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이유도 분명하다. 연간 매출 2159억달러, 데이터센터 매출 1937억달러, 잉여현금흐름 965억달러를 만든 회사가 내놓는 다음 사업 계획이기 때문이다. 숫자가 먼저 쌓였고, 확장 계획이 뒤를 잇는다.
리스크도 남아 있다. 중국 변수는 가장 먼저 꼽힌다. 1분기 전망에서 중국 데이터센터 컴퓨트 매출을 넣지 않았다고 밝힌 대목은 규제와 긴장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매출 편중도 부담이다. 데이터센터 매출 1937억달러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특정 수요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간 총마진이 전년보다 낮아진 점 역시 함께 봐야 한다. 제품 전환과 공급 확대는 매출을 키우는 동시에 비용도 끌어올린다. 대규모 주문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문제없어 보일 수 있지만, 투자 사이클이 느려질 때 시장은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래도 2026회계연도 실적이 남긴 결론은 분명하다. 엔비디아는 기대감만 앞서는 회사를 넘어섰다.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와 AI 기업, 산업계의 설비투자가 실제 매출과 이익, 현금흐름으로 이어지는 회사가 됐다. 연간 매출 2159억달러, 데이터센터 매출 1937억달러, 영업활동현금흐름 1027억달러, 잉여현금흐름 965억달러는 시장 분위기만으로 만들 수 없는 숫자다. 돈은 이미 들어왔고, 대부분은 데이터센터에서 나왔다.
게임 그래픽처리장치 회사로 출발한 기업이 지금은 AI 서버와 네트워크, 개발 환경과 운영 인프라를 함께 파는 회사로 몸집을 바꾸고 있다. 매출의 중심은 이미 바뀌었다. 회사 설명이 아니라 숫자가 먼저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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