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협업 구상에 담긴 ‘아트코인’의 방향
최상희 꾸바아트센터 총괄이사 “미술품도 투명한 거래 구조를 갖춰야 한다”
[KtN 박준식기자]예술은 오래도록 감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작품은 전시장 벽에 걸리고, 가치는 소수의 수집가와 전문가 사이에서 오갔다. 거래는 제한적이었고, 가격을 둘러싼 정보도 널리 공유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술 시장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작품은 더 이상 전시장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자산으로서의 가치, 유통 구조의 투명성, 디지털 기술과의 접점이 함께 거론되는 시대가 됐다.
대구 동구 봉무동 바라크나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인 대구: 피카소와 세계 마스터피스’도 그런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이번 전시는 유화와 판화, 드로잉, 1959년 스케치북을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술품을 어떻게 더 투명하게 평가하고 거래할 것인지까지 시야에 넣고 있다. 전시장 한복판에서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 이야기가 함께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상희 꾸바아트센터 총괄이사가 구상하는 ‘아트코인’ 프로젝트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최 총괄이사는 최근 유럽과 중동 출장 과정에서 두바이 정부 관계자 및 왕실 네트워크와 만나 실물 미술품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자산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최 총괄이사는 “가상 자산 시장이 커졌지만 신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며 “실물 작품처럼 가치의 근거가 분명한 자산을 바탕으로 디지털 금융을 연결하면 다른 시장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변동성만 큰 자산이 아니라, 실재하는 작품을 바탕으로 한 구조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최 총괄이사가 말하는 아트코인의 핵심은 실물 자산의 토큰화다. 이번 전시에 나온 피카소의 유화와 판화, 스케치북 같은 작품이 디지털 기술과 만나면 소유와 거래의 문법도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미술 시장은 고가 작품을 온전히 소장할 수 있는 사람만 참여할 수 있는 구조에 가까웠다. 작품 한 점 가격이 수억, 수십억 원을 넘는 경우가 많아 일반 관람객이나 투자자는 사실상 시장 바깥에 서 있어야 했다. 최 총괄이사는 이 장벽을 낮추는 방식으로 디지털 자산화를 보고 있다.
그가 그리는 구상은 간단하다. 실물 작품은 안전한 수장과 관리 체계 안에서 보관하고, 작품 가치와 거래 기록은 디지털 시스템 위에 투명하게 남기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고가의 작품 한 점을 통째로 소유하지 않더라도, 더 작은 단위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설명이다. 미술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거래의 유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논리도 여기서 나온다. 미술품을 좋아하지만 직접 소장하기에는 가격 부담이 큰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참여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총괄이사는 이번 대구 전시를 그런 가능성을 시험하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대구에서 열린 피카소 전시는 지역 관람 기회의 확대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예술품이 어떤 방식으로 자산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전시가 단순히 감상을 위한 공간에 머물지 않고, 작품 가치와 거래 구조, 인증 체계까지 함께 이야기하는 이유다. 예술을 벽에 거는 일에서 끝내지 않고, 작품을 둘러싼 제도와 기술까지 전시장 밖으로 끌어내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최 총괄이사가 반복해서 꺼낸 말은 ‘신뢰’다. 미술품이 자산으로 기능하려면 무엇보다 진위와 이력, 가치 평가 체계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총괄이사는 인터뷰에서 작품의 히스토리와 인증서 발행, 가치 증명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작품이 누구 손을 거쳐 왔는지,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는지, 소유권과 거래 이력이 어떻게 관리되는지가 분명해야 시장도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디지털 기술은 그다음 단계에 놓인다. 작품 자체의 신뢰가 먼저 확보돼야 블록체인도 의미를 갖는다는 판단이다.
최 총괄이사는 국내에서 동산 등기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부동산처럼 미술품 역시 소유권과 가치가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술품 가치가 공적으로 인정받고, 등기와 인증 체계가 자리 잡으면 작품은 단순한 수집품을 넘어 자산으로 다뤄질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된다. 은행 담보, 상속과 증여, 각종 자산 관리 영역에서 미술품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결국 객관적인 기준이 먼저 서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술품 물납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최 총괄이사는 가치 평가와 인증 체계가 갖춰질 경우 미술품이 세금 납부 등 제도권 안에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고 봤다. 현금과 부동산 중심으로 짜인 자산 인식 속에서 미술품도 제도적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구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그런 방향을 시험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는 게 최 총괄이사의 설명이다. 감상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예술품을 제도와 금융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두바이와의 협업 구상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최 총괄이사는 두바이가 가상 자산과 디지털 금융에 대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시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동시에 실물 기반 자산과 연결된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도 높다고 설명했다. 피카소처럼 이미 국제적 시장 가치와 상징성을 가진 작가의 작품은 디지털 자산화 논의에서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선보인 피카소 전시가 두바이와 연결되는 이유도 단순한 순회 전시 차원을 넘는다. 작품을 둘러싼 가치와 거래 구조까지 함께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이 예술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전시장 벽에 걸린 작품이 먼저이고, 블록체인은 그 뒤에 온다. 최 총괄이사도 “예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며 “기술은 그 길을 더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도구”라고 말했다. 작품이 주는 감동과 시장이 요구하는 구조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수단으로 기술을 보는 셈이다. 피카소 전시와 아트코인 이야기가 한 자리에서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전시는 예술의 감동을 보여주고, 디지털 기술은 그 가치를 어떻게 안전하게 나누고 기록할지 묻는다.
바라크나눔갤러리가 내세운 나눔의 방향도 이 구상과 겹친다. 소수만 소유하던 거장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이 향유하고, 장기적으로는 더 넓은 방식으로 참여하게 하는 일 역시 나눔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운영 방향에 더해, 예술 감상과 자산 접근의 문턱 자체를 낮추는 문제까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술이 차갑고 낯선 언어로 들릴 수 있지만, 최 총괄이사가 말하는 방향은 오히려 반대편에 있다.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의 삶 가까이로 끌어오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쪽이다.
대구 봉무동의 전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피카소라는 이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유화와 판화, 드로잉, 스케치북이 걸린 전시 공간에서 블록체인과 자산화, 인증과 거래 구조까지 함께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 전시의 외연을 넓힌다. 예술을 감상의 영역으로만 묶어 두지 않고, 기술과 제도, 시장의 언어로도 풀어보려는 시도가 이미 시작됐다. 8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거장의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미술품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유통되고 인정받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함께 시험하는 현장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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