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박인경기자]검은 커튼 앞에 선 첫 룩부터 분위기는 분명했다. 재킷은 허리 위에서 끊겼고, 바지는 발등을 덮은 채 길게 내려왔다. 큰 외투와 낮은 색, 군복을 닮은 어깨선과 포켓, 아웃도어 아우터의 부피가 런웨이 곳곳에 남았다. 그런데 HYKE의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은 복각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옷의 구조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대신, 길이와 폭을 다시 잡고 원단과 표면을 눌러 지금의 겨울 옷으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HYKE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카이브를 다루는 태도였다. 요즘 패션은 과거를 자주 불러온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대로 꺼내 놓는 브랜드가 있고, 겉모양만 빌려 오는 브랜드가 있다. HYKE는 이번 시즌 둘 다 택하지 않았다. 군복과 작업복, 아웃도어 아우터에서 가져온 것은 장식이 아니라 뼈대였다. 포켓과 플랩, 절개와 퀼팅, 어깨선과 몸판의 균형이 먼저 서고, 그 위에 지금의 비례가 올라갔다. 그래서 낡은 옷의 흔적은 분명한데 결과는 낡지 않았다.
에디 바우어 협업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오래된 아웃도어 피스를 그대로 진열하듯 내놓지 않고, HYKE가 해 오던 길이와 색, 마감 안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다운 아우터의 부피와 퀼팅의 리듬은 남겨 두고, 전체 인상은 도시의 겨울 옷 쪽으로 눌렀다. 이런 방식은 협업을 화제성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유산을 빌려 오되, 그 유산을 지금의 생활 안에서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아카이브가 박물관에서 멈추지 않고 런웨이로 걸어 나오는 순간도 바로 그 자리에서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