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함과 편의는 이미 화면이 가져갔다… 미래의 시계는 ‘무엇을 보여주는가’보다 ‘어떻게 읽히는가’를 묻는다

[KtN 임우경기자]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가 모든 시각 정보를 독점한 시대에 기계식 시계가 살아남는 법은 역설적이다. 더 정확해지거나 편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생경해지고 불편해지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최근 시계 시장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베다(Veda)의 ‘앵글스 기쉐’는 이 같은 2026년 시계 트렌드의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투영한다. 바늘을 지우고 24시간 디스크를 채택해 시간을 한 박자 늦게 읽게 만드는 이 파격적인 설계는, 이제 시계가 ‘시간을 재는 도구’에서 ‘장면을 연출하는 오브제’로 그 무게중심을 완전히 옮겼음을 시사한다.

미래의 시계를 트렌디하게 만드는 첫 번째 동력은 ‘시선의 전복’이다. 앵글스 기쉐가 보여주듯, 이제 다이얼은 시간을 지시하는 판에서 시간을 숨기고 해석을 요구하는 판으로 진화했다. 예리한 팔각 케이스와 세로 결이 촘촘한 기요셰(Guilloché) 금속판, 그리고 그 틈으로 보이는 회전 디스크는 사용자로 하여금 시계를 읽기 전에 ‘바라보게’ 만든다. 효율을 중시하는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불친절한 기기일지 모르나, 손목 위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소비자에게 이 낯선 문법은 그 자체로 강력한 구매 당위성이 된다. 바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백이 아니라, 시간을 감상하는 새로운 리듬이 들어섰다.

이러한 미학적 실험은 소비자의 냉정한 ‘가치 해체’ 과정, 즉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과 맞물린다. 2026년의 소비자들은 브랜드 로고 하나에 맹목적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300만 원 안팎이라는 중간 지대 가격표를 마주한 이들은 무브먼트의 제원부터 케이스의 가공 방식, 그리고 디자인의 독창성까지 집요하게 따져 묻는다. 베다가 범용 수동 무브먼트인 ETA 7001을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표시 방식을 비틀어 차별화를 꾀한 것은, 개발의 안정성과 미학적 신선함 사이에서 최적의 가격 정당성을 찾아내려는 영리한 전략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기술의 절대량보다 그 기술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배치했는가에 값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구독자 전용 기사 입니다.
회원 로그인 구독신청
저작권자 © KtN (K trendy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