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 설명 걷어내고 질문과 대화로 채운 ‘피카소 인 대구’
최상희 꾸바아트센터 총괄이사 “작품 앞에서 스스로 느끼고 말할 수 있어야”
[KtN 박준식기자]미술관 풍경은 오래 비슷했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조용히 서 있고, 해설은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갔다. 도슨트의 설명은 작품 감상의 길잡이이면서 동시에 해석의 기준이 되곤 했다. 관람객은 자기 감상을 말하기보다 정답에 가까운 설명을 받아 적는 쪽에 익숙했다.
대구 동구 봉무동 바라크나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인 대구: 피카소와 세계 마스터피스’는 그 익숙한 질서를 조금 다르게 가져갔다. 전시장이 내세운 장치는 ‘오픈 도슨트’다. 이름만 바꾼 해설 프로그램이 아니다. 작품 설명을 일방향으로 끝내지 않고, 관람객의 질문과 감상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전시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전시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관람객의 자리를 옮겨 놓겠다는 시도라고 할 만하다.
오픈 도슨트 아래서 관람객은 설명을 듣고 지나가는 데 머물지 않는다. 작품 앞에서 의문을 말하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야기하고, 도슨트는 그 감상을 다시 작품의 맥락과 연결한다. 피카소의 그림이 낯설고 어렵게 보이더라도 “왜 얼굴이 이렇게 그려졌는지”, “왜 눈의 방향이 다르게 보이는지”, “왜 불편하고 슬프게 느껴지는지”를 스스럼없이 꺼낼 수 있다. 전시장은 설명을 전달하는 장소에서 질문이 오가는 장소로 바뀐다.
전시 실무를 총괄한 최상희 꾸바아트센터 총괄이사는 관람객의 감각을 먼저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총괄이사는 “미술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작품을 완성했는지 함께 생각해 보면 이해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작품 이해를 전문가의 해설에만 맡기지 않고, 관람객이 자기 언어로 감상을 풀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 총괄이사가 오픈 도슨트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술 앞에서 많은 관람객이 먼저 느끼는 감정은 호기심보다 부담에 가깝다. 그림을 잘 모르는데 말을 해도 되는지, 내가 본 것이 맞는지, 작품을 엉뚱하게 읽는 것은 아닌지 주저하게 된다. 오픈 도슨트는 그런 부담부터 낮추는 방식이다. 설명을 들려주는 사람이 앞에 서고 관람객이 뒤따르는 구조가 아니라, 관람객이 먼저 보고 묻고 말하게 하는 구조다. 작품 감상은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 각자 다른 감각으로 접근하는 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전시장 안에서 오픈 도슨트가 가장 힘을 발휘하는 지점은 피카소 작품이 가진 난해함이다. 입체주의 회화와 변형된 인체, 어긋난 시선, 낯선 비례는 처음 보는 관람객에게 장벽이 될 수 있다. 오픈 도슨트는 그 장벽을 설명으로 덮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왜 낯선지, 왜 불편한지, 왜 자꾸 시선이 붙는지를 함께 짚는다. 아이가 “왜 코가 옆에 있느냐”고 묻는 순간도, 어른이 “왜 슬퍼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순간도 감상의 출발점이 된다. 질문은 무지의 표시가 아니라 작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봉무동 전시장에서 이런 방식이 더 또렷하게 드러나는 까닭은 출품작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유화와 판화, 드로잉, 1959년 스케치북이 함께 놓인 전시장에서는 피카소를 한 시기의 이름으로만 읽기 어렵다. 오픈 도슨트는 작품 제목과 제작 연도, 미술사적 맥락을 일방적으로 늘어놓기보다 화면 안에서 보이는 변화와 피카소가 밀고 갔던 형상의 방향을 함께 살핀다. 어떤 시기에는 인물이 부드럽고, 어떤 시기에는 선이 날카로워지는지, 왜 어떤 얼굴은 비틀려 있고 어떤 화면은 색보다 선이 먼저 보이는지를 관람객과 함께 풀어가는 식이다.
1959년 스케치북 앞에서 오픈 도슨트의 장점은 더 분명해진다. 완성작만 보는 자리였다면 관람객은 결과 앞에서 감탄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스케치북은 결과 이전의 시간을 드러낸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얼굴의 각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선의 굵기와 방향이 바뀌며, 한 형상이 다른 형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남아 있다. 도슨트가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답을 주는 대신, 관람객이 먼저 어느 장면에서 손이 머뭇거렸는지, 어느 부분에서 얼굴의 인상이 달라졌는지, 어떤 대목이 유화와 닮았는지 말하도록 이끈다면 스케치북은 단순한 희소 자료가 아니라 살아 있는 감상의 현장이 된다.
긴 전시 기간도 오픈 도슨트를 작동하게 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다. ‘피카소 인 대구’는 3월 6일부터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 하루 이틀로 끝나는 단기 행사와 달리, 같은 작품을 두고도 다른 관람객의 반응이 쌓일 시간이 있다. 한날한시에 같은 그림을 봐도 어린이와 청년, 중장년의 시선은 다르고, 미술을 처음 접한 사람과 익숙한 사람의 질문도 다르다. 그렇게 전시장 안에서 쌓인 말과 반응은 다시 다음 관람객의 감상에 영향을 준다. 작품 하나를 둘러싼 해석이 도슨트 한 사람의 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의 경험 속에서 조금씩 넓어진다.
바라크나눔갤러리라는 공간의 성격도 오픈 도슨트와 맞물린다. 신생 공간이 피카소 전시를 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역 문화계에는 낯선 장면인데, 관람 방식까지 바꿔 보겠다고 나선 점이 더 눈에 띈다. 바라크나눔갤러리는 전시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방향도 함께 내걸고 있다. 운영 철학의 중심에 ‘나눔’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 감상의 기회 역시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시민과 나눠야 한다는 인식이 오픈 도슨트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예술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공유의 경험으로 보겠다는 태도가 전시장 운영과 관람 방식에 함께 스며든 셈이다.
최 총괄이사는 대구 전시를 시작으로 하노이와 두바이 등으로 전시 흐름을 넓히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런 구상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봉무동 전시장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다. 피카소라는 이름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기 감상을 말하는 사람, 아이의 질문을 작품 해설의 출발점으로 삼는 도슨트, 설명을 듣는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는 관람객이 전시장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전시의 완성은 작품 반입과 설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의 시선이 들어올 때 비로소 이뤄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오픈 도슨트’는 거창한 구호로만 남기 어려운 방식이다.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이름만 남고 만다. 대구 봉무동 전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 이름을 실제 관람 경험으로 바꾸려 하고 있어서다. 설명의 권위를 앞세우는 대신 질문의 자리를 넓히고, 전문가의 해설을 반복하는 대신 관람객의 감각을 전시장 안으로 불러들이는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 피카소를 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전시를 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봉무동에서 시작된 오픈 도슨트는 그 가능성을 전시장 안에서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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