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성장 둔화 속 광고 요금제·숏폼·크리에이터·팬덤 수익 확대…한국 제작사도 ‘판매 이후 수익’이 생존 과제로
[KtN 전성진기자]2024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시장에서 광고 매출이 소비자 지출을 처음 앞질렀다. 콘텐츠 기업이 시청자에게 직접 받는 구독료보다 시청자의 시간과 데이터를 겨냥한 광고 수익이 더 큰 돈줄이 된 셈이다. 넷플릭스는 광고 요금제를 키우고, 유튜브와 틱톡은 숏폼으로 시청 시간을 흡수하며, 게임과 크리에이터 시장은 광고·결제·팬덤을 한 화면 안에 묶고 있다. 콘텐츠 산업의 경쟁 기준이 가입자 수에서 수익화 접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PwC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전망 2025~2029’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산업 매출은 전년보다 5.5% 늘어난 2조9,000억 달러였다. 2029년 전망치는 3조5,000억 달러다. 향후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3.7%로 제시됐다. 성장 속도는 완만해지지만 산업 내부의 돈줄은 더 뚜렷하게 갈라진다. 광고 부문은 연평균 6.1% 성장하는 반면 소비자 지출은 2.0%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2023년 거의 같은 수준이던 광고 매출과 소비자 지출은 2029년 3,000억 달러 차이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구독자 수는 여전히 OTT 사업의 기초 체력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유튜브, 지역 OTT 플랫폼은 반복 결제 이용자를 확보해야 콘텐츠 투자와 기술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달라진 대목은 구독료 인상만으로 성장률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PwC는 경제 불확실성과 소비자 지출 제약을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산업의 연간 성장률 둔화 요인으로 짚었다. 플랫폼이 광고를 보조 수익원이 아니라 성장 동력으로 다시 끌어올리는 배경이다.
미국 스트리밍 시장의 소비자 반응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딜로이트의 2026년 디지털 미디어 트렌드 조사에서 SVOD 가입자의 68%는 최소 한 개 이상의 광고형 요금제를 이용하고 있었다. 2024년 46%에서 20%포인트 이상 높아진 수치다. 유료 스트리밍 가구의 월평균 지출은 69달러로 전년과 같았지만, 소비자의 73%는 구독 중인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의 가격 인상에 불만을 표시했다. 해지율은 약 40% 수준으로 유지됐고, 응답자의 61%는 월 5달러가 오르면 가장 좋아하는 서비스라도 해지하겠다고 답했다.
넷플릭스의 광고 요금제 확대는 구독 산업의 방향 전환을 압축한다. 넷플릭스는 2026년 1분기 주주서한에서 미국 기준 월 8.99달러인 광고 요금제가 광고 도입 국가의 1분기 신규 가입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광고주 수는 4,000곳을 넘었고, 전년보다 70% 늘었다. 넷플릭스는 2026년 광고 매출을 약 30억 달러로 예상했다. 한때 ‘광고 없는 구독’을 내세웠던 대표 OTT가 광고를 주요 수익화 과제로 올려놓은 것이다.
광고 요금제는 이용자에게 낮은 가격을 제공하고, 플랫폼에는 구독료와 광고를 함께 얻는 구조를 만든다. 콘텐츠 기업에는 해지를 늦출 수 있는 장치가 되고, 광고주에게는 전통 TV에서 빠져나간 시청자를 다시 만날 통로가 된다. 다만 스트리밍 광고 시장이 기존 방송 광고를 그대로 대체하는 단순한 구조는 아니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게임, 크리에이터 채널이 이미 이용 시간과 광고 기술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IAB와 PwC가 집계한 2025년 미국 디지털 광고 매출은 2,946억 달러로 전년보다 13.9% 늘었다. 소셜 광고 매출은 1,177억 달러, 디지털 비디오는 780억 달러, 커머스 미디어는 634억 달러였다. 크리에이터 광고 지출은 370억 달러에 이르렀고, 2026년에는 44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광고비는 방송사와 포털, 검색창에만 머물지 않는다. 동영상, 숏폼, 커머스, 크리에이터, 스트리밍 화면으로 동시에 이동하고 있다.
숏폼 플랫폼은 드라마와 예능의 홍보 창구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을 발견하는 입구이자, 광고가 붙는 매체이며, 팬덤이 모이는 장소다. 딜로이트 조사에서 팬이라고 응답한 소비자의 52%는 새 콘텐츠를 발견하는 주요 경로로 소셜 플랫폼을 꼽았다. Z세대 팬층에서는 비율이 73%까지 올라갔다. 팬층의 44%는 소셜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발견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해 전체 버전을 보거나 듣거나 구매한다고 답했다.
OTT 사업자는 숏폼을 막을 수 없고, 제작사는 숏폼을 무시할 수 없다. 본편은 플랫폼에서 공개되지만 흥행의 첫 접촉은 클립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한 장면, 한 대사, 한 출연자의 표정이 숏폼에서 먼저 소비되고, 해당 장면이 다시 본편 시청과 검색, 팬덤 활동으로 이어진다. 본편과 클립, 라이브, 커머스, 팬 이벤트를 따로 설계하는 방식으로는 IP 수익을 길게 끌고 가기 어렵다.
광고의 중심도 디지털 화면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PwC는 2024년 전체 광고 매출의 72%였던 디지털 포맷 비중이 2029년 80.4%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OTT 비디오 매출은 2024년 1,690억 달러에서 2029년 2,30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광고 기반 주문형 비디오, 즉 AVOD는 2020년 OTT 비디오 부문 매출의 20%를 차지했지만 2029년에는 27.1%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AI는 제작 현장보다 광고와 유통에서 먼저 돈을 만들고 있다. 맞춤형 추천, 광고 타기팅, 캠페인 성과 측정, 자동 자막, 현지화, 예고편 편집, 시청자 세분화가 앞단에 놓였다. IAB는 2026년 광고 시장을 재정의하는 구조적 변화 가운데 하나로 AI를 들며, AI가 발견, 제작, 집행, 수익화의 가치사슬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도 2026년 중 광고주가 넷플릭스에서 집행한 광고 구매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광고를 본 사람이 누구인지, 광고 노출 뒤 어떤 행동을 했는지, 특정 콘텐츠와 광고가 얼마나 잘 맞는지를 설명하는 능력이 플랫폼의 가격 결정력으로 바뀌고 있다.
팬덤 경제는 콘텐츠 기업의 새 매출표에서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 딜로이트 조사에서 소비자의 약 80%는 음악, 스포츠, TV·영화, 비디오게임 등 최소 한 분야의 팬이라고 답했다. 팬층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월평균 71달러를 쓰는 반면, 비팬층은 56달러를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팬층은 하루 엔터테인먼트 활동 시간도 비팬층보다 51분 길었다. 팬은 콘텐츠를 보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더 오래 머물고, 더 자주 결제하며, 플랫폼과 브랜드가 반복적으로 만날 수 있는 소비 단위다.
게임 시장에서도 광고의 비중은 커지고 있다. PwC는 무료 모바일 게임의 배너·영상 광고 확대로 전체 비디오게임 매출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0년 4분의 1 수준에서 2024년 32.3%로 높아졌고, 2029년에는 38.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게임은 영상, 결제, 광고, 커뮤니티가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움직이는 산업이다. 영상 콘텐츠 기업이 게임을 단순한 부가사업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콘텐츠 IP의 성과 판단 기준도 바뀌었다. 과거 작품 한 편의 성패는 시청률, 박스오피스, 플랫폼 판매가, 가입자 증가로 주로 판단됐다. 지금은 같은 IP가 광고, 글로벌 유통, 숏폼 재가공, 게임화, 굿즈, 팬미팅, 브랜드 협업, 라이브 이벤트로 얼마나 오래 수익을 내는지가 중요해졌다. 드라마 한 편이 끝난 뒤 배우 팬미팅이 열리고, OST와 굿즈가 팔리고, 숏폼 클립이 조회수를 만들며, 해외 리메이크와 포맷 판매가 이어지는 구조다.
한국 제작사에는 기회와 부담이 함께 온다. 완성작을 글로벌 플랫폼에 판매하면 제작비 회수와 해외 노출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 계약 구조에 따라 IP, 시청 데이터, 후속 사업 권리가 플랫폼 쪽에 집중될 경우 제작사의 장기 수익은 제한될 수 있다. 흥행작을 만들고도 팬덤, 굿즈, 공연, 게임, 웹툰·웹소설 확장, 지역별 유통권을 함께 설계하지 못하면 작품 이후의 수익은 플랫폼과 외부 사업자에게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다.
광고 중심 구조는 한국 콘텐츠의 해외 진출 방식도 바꾼다. 북미와 서유럽처럼 구독 시장이 성숙한 지역에서는 광고 요금제와 번들이 중요해지고, 동남아와 중남미처럼 가격 민감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무료·저가 모델과 통신사 결합 상품이 진입로가 된다. 작품 자체의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지 플랫폼의 광고 영업력, 통신사 요금제, 결제 수단, 현지어 더빙과 자막, 숏폼 재가공 전략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현재 콘텐츠 산업의 경쟁 기준은 가입자 수에서 수익화 접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구독료를 받는 일, 광고를 붙이는 일, 시청 데이터를 읽는 일, 팬덤을 유지하는 일, IP를 다른 장르와 시장으로 확장하는 일이 한꺼번에 묶였다. 남은 변수는 소비자의 구독 피로, 광고 반복에 대한 반감, AI 저작권 분쟁, 제작비 상승, 플랫폼과 제작사 사이의 IP 수익 배분이다. 한국 콘텐츠 기업의 다음 과제도 같은 지점에 놓여 있다. 작품을 파는 데서 끝낼지, 작품 이후의 돈줄까지 설계할지에 따라 해외 시장에서 남는 몫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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