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스트리밍 시장 성장과 BL·GL 수출 확산…이재명 정부의 CEPA·창조산업 외교가 콘텐츠 기업의 진출 조건을 바꾼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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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전성진기자]4월 7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의 통화 의제에는 CEPA, 경제, 안보, 치안, 문화교류, 에너지 공급망이 함께 올랐다. 하루 뒤 태국 정부는 양국 정상이 온라인 범죄 대응, 관광·영화·엔터테인먼트 등 창조산업 협력, 11월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 초청까지 논의했다고 밝혔다. 외교 일정표 위에 올라온 단어들은 통상과 안보였지만, 그 아래에는 빠르게 커지는 태국 디지털 콘텐츠 시장이 놓여 있다.

태국 OTT 시장에는 넷플릭스, 디즈니+, Viu, TrueID, AIS Play, oneD가 한꺼번에 들어와 있다. 한국 드라마는 이미 검증된 외부 콘텐츠로 소비되고, 태국 BL·GL 시리즈는 해외 팬덤과 라이선스 시장을 만들어냈다. 한국 콘텐츠 기업이 태국을 단순 판매 시장으로 보면 판권과 플랫폼 입점 경쟁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제작, 유통, 통신사 번들, 현지 팬덤, CEPA 이후의 디지털 통상 환경까지 함께 읽어야 태국의 쓰임새가 달라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태국비즈니스센터가 2026년 5월 8일 배포한 ‘태국 OTT 및 온라인 스트리밍 콘텐츠 산업 동향’은 태국 미디어 시장이 전통 유료방송과 선형 방송 중심 구조에서 OTT, 소셜미디어, 모바일 기반 소비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태국 시청자의 콘텐츠 소비 방식은 방송사 편성표에 맞춘 실시간 시청에서 개인화된 주문형 소비로 바뀌고 있고, 소셜미디어는 콘텐츠 소비와 공유, 참여가 동시에 이뤄지는 주요 허브로 자리 잡았다.

태국 OTT 비디오 시장 매출은 2020년 4억9,395만 달러에서 2023년 약 7억5,089만 달러로 늘었다. 2025년 전망치는 약 8억8,029만 달러, 2030년 전망치는 약 11억6,994만 달러다. 유료 가입형 VOD인 SVoD 이용자는 2017년 280만 명에서 2024년 542만 명으로 증가했고, 2027년 605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2021년 59.9%에서 2023년 71.5%로 높아졌고, 장기적으로 약 97% 수준까지 포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태국 콘텐츠 소비는 ‘TV에서 OTT로’라는 단순한 대체 구도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태국 비디오 소비자의 약 51%는 OTT로 영상을 보고, 70%는 영상 공유 플랫폼에서 비디오 콘텐츠를 이용한다. Z세대는 주문형 시청 선호도가 28.5%로 전 세대 중 가장 높고, 실시간 방송 시청률은 25.8%로 가장 낮았다. 반면 42세 이상 고연령층에서는 85~97.1%가 여전히 실시간 방송을 주로 시청한다. 태국 시장은 OTT, 유튜브형 영상 공유 서비스, 소셜미디어형 콘텐츠 소비, 전통 TV가 함께 남아 있는 복합 시장이다.

플랫폼 경쟁 구도는 네 갈래로 나뉜다. 글로벌 독립형 플랫폼에는 넷플릭스, HBO GO, 프라임 비디오, 디즈니+ 핫스타, 애플TV+가 있고, 아시아 지역 기반 플랫폼에는 Viu, iQIYI, WeTV, YouKu, GagaOOLala가 있다. 통신사 연계 플랫폼으로는 TrueID와 AIS Play가, 지상파 방송사 기반 플랫폼으로는 oneD, 3Plus, Bugaboo, VIPA가 꼽힌다. 글로벌 자본, 아시아 플랫폼, 통신 인프라, 방송 IP가 같은 이용자를 놓고 경쟁하는 시장이다.

2024년 온라인 시청 행태 조사에서 태국 OTT 플랫폼별 구독 이용 비율은 넷플릭스 66.4%, 디즈니+ 31.3%, Viu 23.0%, TrueID 19.5%, 프라임 비디오 16.4%, AIS Play 15.1%, iQIYI 14.0% 순으로 나타났다. 3Plus와 oneD는 각각 6.2%, MONOMAX는 4.8%, WeTV는 0.9%였다. 구독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20.2%였다. 한 명의 이용자가 여러 플랫폼을 겹쳐 쓰는 시장에서 독자 플랫폼 하나로 정면 진입하는 전략은 초기부터 높은 마케팅 비용과 낮은 전환율을 감수해야 한다.

넷플릭스는 태국 시장에서 가장 강한 구독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넷플릭스가 ‘Local content to global’ 전략으로 태국 현지 제작사와 협력하고, 현지 오리지널 콘텐츠를 세계 시장에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Viu는 한국 드라마 팬덤을 기반으로 한국 방영 뒤 8~24시간 안에 태국어 자막을 제공하고, 태국 북부와 동북부 이산 방언 더빙까지 제공하는 ‘Go Local’ 전략으로 지방 시청자층을 공략한다. WeTV와 iQIYI는 중국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고 있다.

통신사 플랫폼은 콘텐츠를 요금제 안으로 끌어들인다. AIS Play는 모바일·브로드밴드 서비스와 OTT를 결합하고, TrueID는 통신·유료TV·온라인 서비스를 묶은 슈퍼앱 전략을 취한다. 지상파 기반 플랫폼은 기존 방송 IP와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한다. 3Plus, Bugaboo, oneD는 자사 드라마와 예능,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팬덤 마케팅을 결합해 플랫폼 가치를 높인다. 한국 기업이 태국에서 맞닥뜨리는 경쟁자는 넷플릭스만이 아니라 통신사, 지상파, 지역 플랫폼, 크리에이터 생태계 전체다.

태국 로컬 콘텐츠의 수출력은 BL·GL 장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태국 BL·GL 시리즈가 연간 50억 바트 규모의 시장 가치를 지니고, 190개국 이상에 라이선스되며 태국의 대표적 문화 수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고 정리했다.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낮고 팬덤 충성도가 높은 장르는 영상 공개 뒤 팬미팅, 굿즈, 해외 이벤트로 수익이 이어진다. 태국 콘텐츠 산업은 영상 판매만으로 끝나는 시장이 아니라 배우와 캐릭터, 팬덤을 묶어 수익 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K콘텐츠 수요는 이미 확인돼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태국 OTT 이용자가 현지 콘텐츠를 가장 많이 소비하지만, 한국 콘텐츠를 그다음 주요 선호 콘텐츠로 인식한다고 정리했다. 태국 소비자는 한국 드라마, 예능, 영화에 높은 친숙성과 수용성을 보이며, 한국 콘텐츠는 태국 시장에서 검증된 외부 콘텐츠군으로 자리 잡았다. 태국 시청자의 83.1%가 한국 OTT 이용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는 조사도 인용됐다.

높은 선호도는 곧바로 독자 플랫폼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태국 OTT 시장은 이미 파편화돼 있고, 이용자는 다중 구독에 익숙하다. 한국 기업이 범용 OTT로 들어가면 넷플릭스, 디즈니+, Viu, TrueID, AIS Play와 콘텐츠, 가격, 결제, 현지 광고, 통신사 번들, 이용자 데이터 경쟁을 동시에 해야 한다. K콘텐츠 전문성이나 특정 장르 IP는 초기 관심을 만들 수 있지만, 장기 가입과 반복 결제를 만들려면 현지 플랫폼·통신사·제작사와의 결합이 필요하다.

현지화는 태국 진출의 기본 비용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태국 시청자의 90.7%가 해외 콘텐츠를 볼 때 번역 품질을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정리했다. 태국어 자막을 붙이는 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장르에 따라 더빙, 방언, 현지 광고 문법, 팬 커뮤니티 운영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Viu가 태국 북부와 동북부 이산 방언 더빙을 제공하는 이유도 방콕 중심의 표준어 시장만으로 태국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동제작은 수출보다 더 긴 수익선을 만든다. 한국 제작사는 기획력, 장르 설계, 후반작업, 글로벌 유통 경험을 갖고 있다. 태국 제작사는 로컬 정서, 배우 팬덤, 촬영 인프라, 현지 플랫폼 관계망을 갖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CJ ENM과 태국 트루 그룹이 설립한 ‘True CJ Creations’ 모델을 벤치마킹 사례로 들며, 한국의 기획력과 태국의 현지 제작 역량을 결합해 콘텐츠를 만들고 동남아 전역으로 수출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태국 정부의 제작 인센티브도 계산에 들어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태국이 글로벌 제작 허브를 목표로 촬영 시 최대 30% 수준의 현금 리베이트와 포스트프로덕션 관련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로케이션, 현지 인력, 후반작업, 행정 지원을 결합하면 태국은 단순 소비 시장이 아니라 제작비를 낮추고 아세안 유통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공동제작 기지가 된다.

CEPA는 콘텐츠 기업의 진출 조건을 바꿀 수 있는 통상 변수다. FTA 통합플랫폼에 게시된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한·태국 CEPA 제7차 공식협상은 2025년 9월 22~25일 서울에서 열렸고, 협상 분야에는 상품, 서비스, 투자, 디지털, 금융 등 7개 분야가 포함됐다. 양측은 공급망, 중소기업, 관광, 보건, 노동, 환경 등 폭넓은 경제협력 근거를 포함한 협상 내용을 감안해 기존 EPA 명칭을 CEPA로 바꾸는 데도 합의했다. 콘텐츠 유통, 플랫폼 서비스, 디지털 결제, 현지 투자, 저작권 보호는 이 협상 범위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의 태국 외교는 이 지점에서 콘텐츠 산업과 만난다. 청와대는 2026년 4월 7일 양국 정상이 경제, 안보, 치안, 문화교류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심화에 공감했고, 현재 협상 중인 CEPA의 조기 타결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 중동 상황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정 속에서 긴밀히 공조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태국 시장 진출은 이제 콘텐츠 판권 거래만이 아니라 공급망, 통상, 치안, 디지털 규범과 함께 움직이는 의제가 됐다.

태국 정부 발표는 창조산업 협력을 더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태국 정부 공보부는 4월 8일 양국 정상이 CEPA 협상 진전, 온라인 범죄 대응, 관광·영화·엔터테인먼트 등 창조산업 육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아누틴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11월 태국에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초청했고, 해당 계기가 CEPA 서명과 양국 협력 강화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CEPA 서명은 2026년 5월 8일 기준 확정 일정이 아니라 태국 정부 발표에 담긴 기대와 설명으로 처리해야 한다.

태국 OTT 산업은 규제 전환기에도 들어섰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태국 방송통신위원회, NBTC가 2026~2030 방송·텔레비전 마스터플랜 개편을 계기로 전통 디지털 TV 사업자와 OTT 플랫폼 간 규제 불균형을 완화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전통 방송사는 주파수 비용, 인허가 조건, 콘텐츠 심의, 아동 보호, 의무송출 규제를 부담하는 반면 해외 OTT는 상대적으로 완화된 규제 환경에서 사업해 왔다는 지적이 배경이다.

전자거래개발원, ETDA의 디지털 플랫폼 감독도 함께 움직인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는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 사업자에게 사전 신고와 정보 보고를 요구하는 태국의 디지털 플랫폼 규제 체계를 설명하면서, 외국 플랫폼도 태국 고객을 보유하면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정리했다. NBTC의 시청각 서비스 감독과 ETDA의 일반 디지털 플랫폼 감독이 결합되는 방향이다. 한국 기업이 태국에서 콘텐츠를 팔거나 플랫폼과 제휴할 때 규제, 과세, 데이터, 청소년 보호, 저작권 대응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태국 시장의 매력은 성장률에만 있지 않다. 현지 콘텐츠의 힘, 한국 콘텐츠에 대한 친숙도, 통신사 번들 구조, 팬덤 기반 장르, 제작 인센티브, CEPA 협상, 아세안 외교 일정이 한꺼번에 겹쳐 있다. 한국 기업이 태국을 단순 배급 시장으로 보면 플랫폼 입점과 판권 판매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공동제작, IP 소유 구조, 현지 배우·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팬미팅·굿즈·이벤트, 숏폼 재가공까지 포함하면 태국 시장의 수익 계산은 달라진다.

한국 콘텐츠 기업의 태국 전략은 독자 플랫폼보다 현지 플랫폼·통신사 제휴를 우선해야 한다. 완성작 수출만으로는 넷플릭스와 Viu가 이미 구축한 유통망을 넘기 어렵다. 공동제작은 태국 정서와 장르 문법을 반영하면서도 한국식 기획과 후반작업, 글로벌 세일즈 역량을 넣을 수 있는 방식이다. 팬덤 수익은 제작 초기부터 설계해야 한다. 태국 BL·GL 장르의 확산은 콘텐츠 공개 뒤 팬미팅, 굿즈, 해외 이벤트로 이어질 때 수익 기간이 길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 남은 변수는 한·태국 CEPA 타결 시점, 11월 아세안 정상회의 일정, 태국 OTT 규제의 세부 내용, NBTC와 ETDA의 감독 범위, 한국 기업의 현지 공동제작 파트너 확보다. 태국은 K콘텐츠가 이미 통하는 시장이지만 경쟁이 느슨한 시장은 아니다. 한국 콘텐츠 산업이 태국에서 남길 몫은 한류의 인기도보다 계약 구조, 현지화 수준, 플랫폼 제휴, IP 확장 전략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