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에서 다시 꺼낸 6·15…대화 복원보다 먼저 충돌 비용 낮추는 외교

 

[KtN 박준식기자]이재명 대통령이 교황청 공식방문 첫 일정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을 다시 꺼낸 것은 과거 대북정책의 복원 선언만으로 읽기 어렵다. 성 밖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 기념연설에는 한반도 평화를 남북관계의 감상적 언어가 아니라 국가 리스크 관리의 외교 의제로 되돌려 놓으려는 계산이 담겼다.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흡수통일과 일방적 체제 경쟁 불추구, 군사적 신뢰 회복 의지는 이재명 정부가 평화를 안보 비용과 경제 비용의 문제로 다루려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재명식 평화외교의 출발점은 북한에 대한 낙관이 아니다. 한반도 긴장이 높아질 때 한국이 치르는 비용을 낮추려는 현실적 판단에 가깝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면 외국인 투자, 환율, 금융시장, 관광, 물류, 공급망, 국가신용도가 함께 흔들린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기술과 품질로 경쟁하더라도 한반도 안보 불안이 커지면 한국 경제에는 별도의 위험 프리미엄이 붙는다. 평화는 도덕적 가치이면서 동시에 경제 비용을 낮추는 안보 장치다.

성 밖 성 바오로 대성당 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가 국제사회의 분열과 대립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남과 북이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야기했던 시기에서 다시 단절과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섰고, 남북을 연결하던 소통 통로가 닫혔으며, 불신과 긴장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연설의 현실 인식은 낙관보다 위기 진단에 가까웠다. 평화 의제를 꺼내면서도 현재 남북관계가 깊은 단절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한 셈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언급한 대목은 이재명 정부 대북정책의 상징적 출발선이다. 26년 전 남과 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마주 앉아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적 협력, 교류와 왕래가 이어졌던 흐름도 함께 소환했다. 과거의 성과를 그대로 반복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 단절된 남북관계에서 최소한의 접촉면을 다시 찾아보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재명 외교③] 한반도 평화, 선의가 아니라 국가 리스크 관리  사진=2026. 06.15 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재명 외교③] 한반도 평화, 선의가 아니라 국가 리스크 관리  사진=2026. 06.15 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정부가 제시한 긴장 완화 조치는 비교적 구체적이다. 대북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 중단은 군사분계선 일대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는 조치다. 흡수통일과 일방적 체제 경쟁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해온 체제 위협 논리를 낮추려는 메시지다. 군사적 신뢰 회복과 우발적 충돌 방지 노력은 남북 대화가 곧바로 복원되지 않더라도 군사적 관리 채널을 되살리겠다는 방향을 담고 있다.

현재의 국제환경은 과거 남북 화해 국면보다 훨씬 거칠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중동에서는 새로운 충돌이 이어지고 있으며, 미중 전략경쟁은 공급망과 안보 질서를 동시에 흔든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했고, 남북 간 통신과 군사적 신뢰 장치는 약화됐다. 평화 메시지가 곧바로 대화 복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재명 정부가 평화를 말하는 환경은 2000년대 초반의 남북관계와 다르다.

평화외교는 선의보다 구조로 평가해야 한다.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지, 미국과의 공조를 흔들지 않는지, 중국과 러시아의 계산을 어떻게 관리할지, 국내 여론의 불신을 어떻게 넘을지, 군사 대비 태세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긴장 완화 조치를 어떻게 유지할지가 관건이다. 평화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통신선, 군사 핫라인, 인도적 협력, 우발충돌 방지 절차, 국제 지지 문안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교황청을 무대로 택한 선택은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황청은 군사력이나 경제 규모로 압박하는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교황청은 분쟁과 평화, 인권과 연대의 언어를 국제사회에 확산시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교황청에서 한반도 평화를 말한 것은 북한을 직접 움직이기 위한 협상이라기보다, 한국 정부의 평화 노선을 국제사회의 도덕적 언어로 확장하고 지지 기반을 넓히려는 시도다.

유럽 순방 전체의 흐름에서도 교황청 일정은 고립된 종교 행사가 아니었다. EU에서는 통상과 안보 협력을, 이탈리아에서는 제조업과 문화 협력을, 교황청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세계청년대회를 배치했다. 이재명 정부는 경제안보와 평화외교를 분리하지 않았다. 철강 쿼터와 탄소규제는 한국 제조업의 시장 접근권 문제이고, 한반도 긴장 완화는 한국 경제 전체의 위험 비용을 낮추는 문제다. 산업을 지키는 외교와 평화를 말하는 외교가 같은 순방 안에서 연결됐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세계 각국 청년들이 전선과 철조망, 국경의 제약을 넘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종교 행사이지만,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국제 청년 교류, 관광, 국가 브랜드,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함께 담을 수 있는 외교 무대다. 한국이 가톨릭이 다수 종교가 아닌 국가로서 세계청년대회를 개최한다는 점도 국제사회에 전할 상징성을 갖는다.

세계청년대회가 평화외교의 실제 기반이 되려면 행사 성공만으로는 부족하다. 참가자 안전, 교통과 숙박, 지방 프로그램, 종교계와 정부의 역할 분담, 해외 청년 지원, 분단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대회가 관광 행사로만 소비되면 한반도 평화 메시지는 약해진다. 반대로 세계 청년들이 분단과 평화, 민주주의와 연대의 의미를 직접 접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한국 외교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가장 큰 변수는 북한의 무반응이다. 한국 정부가 전단과 확성기를 중단하고, 흡수통일 불추구를 밝히고, 교황청에서 평화를 말해도 북한이 대화에 나오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제한된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높이거나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면 국내 정치권에서는 유화책 실패론이 거세질 수 있다. 평화외교는 상대가 있는 정책이다. 한국 정부가 원하는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내 여론도 간단하지 않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기간이 길었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한국 사회의 대북 인식을 강하게 바꿨다. 대화 복원과 긴장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함께 제시돼야 한다. 군사 대비를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분명한 태도, 한미동맹과의 정합성, 북한 도발 시 대응 원칙, 인도적 협력의 범위, 제재 체계와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설명돼야 한다.

한미 공조는 평화외교의 필수 조건이다. 미국과 조율되지 않은 대북 접근은 지속되기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정책에서 거래형 접근을 강화하는 상황이라면 한국 정부는 더 정교한 조율을 해야 한다. 북미 대화 가능성이 열릴 경우 한국이 배제되지 않아야 하고, 북미 긴장이 높아질 경우 한반도 충돌 위험을 낮출 통로도 필요하다. 한국 외교가 평화 의제를 주도하려면 워싱턴과의 조율 능력이 먼저 확인돼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 변수도 작지 않다. 북한 문제는 남북 간 사안이지만, 유엔 제재와 동북아 안보 질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진영 대립과도 연결돼 있다. 중국은 한반도 긴장 완화에는 관심이 있지만 한미동맹 강화에는 경계심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과의 밀착을 강화해왔다. 평화외교는 북한만 바라보는 접근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주변국의 이해관계까지 계산한 다층 조정이 필요하다.

군사적 억지와 평화 메시지의 균형도 중요하다. 평화를 말하는 정부가 안보를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주면 정책은 곧바로 흔들린다. 반대로 군사적 대응만 앞세우면 긴장 완화의 공간이 사라진다. 이재명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억지와 대화를 동시에 들고 가는 방식이다. 한미동맹과 군사 대비를 유지하면서도 우발적 충돌을 막고, 인도적 협력과 대화의 통로를 열어두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특별미사 연설에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경험을 연결하는 대목도 있었다. 한국 국민이 식민지와 전쟁, 독재와 억압, 경제 위기와 사회적 격랑을 거치며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왔다는 서사다.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을 한반도 평화외교의 신뢰 자산으로 쓰려는 접근이다. 총과 칼이 아니라 촛불, 폭력이 아니라 평화, 냉소가 아니라 연대라는 표현은 국내 민주주의 경험을 국제 평화 담론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민주주의를 평화외교의 언어로 쓰려면 국내 제도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선거관리, 법치, 공공기관 책임성, 정치적 갈등 관리가 흔들리면 해외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설득력도 약해진다. 유럽과 교황청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말한 만큼 국내에서는 제도 운영의 안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외교 메시지는 국내 현실과 분리되지 않는다.

평화외교는 철강 쿼터나 투자 계약처럼 숫자로 즉시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평가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남북 통신선 복원 여부, 군사적 우발충돌 방지 장치, 인도적 협력 재개, 국제사회 지지 문안, 한미 공조 수준, 북한의 공식 반응, 국내 여론 변화가 기준이 된다. 평화외교는 선언보다 채널로 확인된다.

교황청 연설만으로 남북관계가 바뀌지는 않는다. 교황청의 지지와 세계청년대회의 상징성도 북한을 곧바로 협상장으로 끌어내지는 못한다. 다만 한국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국제사회 의제로 다시 올리고, 대북정책을 위험 관리의 언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평화는 선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면 한국은 안보 비용, 금융 비용, 외교 비용, 산업 비용을 동시에 치른다. 이재명 정부가 평화를 다시 외교 의제로 끌어올린 배경에는 북한을 낙관하는 시각보다 긴장 관리에 실패했을 때 한국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는 현실 인식이 놓여 있다.

평화외교가 성과로 이어지려면 상징과 제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교황청의 도덕적 플랫폼, 세계청년대회의 국제적 주목도, EU와 G7의 한반도 평화 지지, 한미 공조, 남북 군사 채널, 인도적 협력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돼야 한다. 연설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평화를 유지하는 힘은 절차와 채널, 신뢰의 축적에서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평화외교는 출발선에 서 있다. 북한의 반응, 미국의 정책 변화, 중국과 러시아의 계산, 국내 여론, 군사적 긴장 수위가 모두 변수로 남아 있다. 교황청에서 다시 꺼낸 6·15와 평화의 언어가 실제 외교 자산이 되려면 정부는 감성적 메시지보다 더 집요한 실행 계획을 보여줘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국가 리스크 관리로 설계하려는 시도는 남북 대화 복원보다 먼저, 충돌 가능성을 낮추는 실질 장치를 마련하는 데서 평가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