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116.8cm 아크릴 회화… 분홍 하늘 아래 물·암석·수목이 만든 수변의 밀도
[KtN 박준식기자]푸른 물은 캔버스 아래쪽에 넓게 깔리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물길을 끊어 세운다. 뒤편에는 초록 수목과 황갈색 식생이 빽빽하게 올라오고, 위쪽에는 분홍빛 하늘이 번져 있다. 박희열(Hee Yeol, Park)의 ‘A Museum Pond’는 연못을 고요하게 비워진 장소로 그리지 않는다. 물은 넓고, 바위는 거칠며, 수목은 뒤편을 촘촘하게 채운다. 작품의 중심은 연못의 평온보다 물과 돌이 서로의 무게를 견디는 구조에 놓인다.
‘A Museum Pond’는 97×116.8cm 크기의 캔버스에 아크릴로 제작된 작품이다. 박희열 회화에서 반복되는 초록 자연과 강한 색채가 이 작품에서도 이어지지만, 산이나 들판보다 수변의 구조가 앞선다. 아래쪽 물, 중앙의 바위, 뒤쪽 수목과 갈대, 위쪽 하늘이 층을 이루며 자연을 구성한다. 연못은 멀리 열린 풍경보다 가까이 압축된 장소처럼 다가온다.
푸른 물은 한 가지 색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짙은 파랑, 청록, 녹색이 섞이며 깊이를 만든다. 물은 투명하게 비치는 수면이라기보다 두꺼운 색의 덩어리에 가깝다. 연못이라는 소재가 주는 고요함은 남아 있지만, 색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푸른 물은 넓게 퍼지면서도 곳곳의 바위에 막혀 흐름을 멈춘다.
바위는 작품의 무게를 잡는 핵심 요소다. 아래쪽과 중앙, 오른쪽에 놓인 암석들은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흩어져 있다. 중앙 아래쪽의 큰 바위 무리는 시선을 붙잡고, 오른쪽의 바위들은 물의 흐름을 끊는다. 갈색과 황토색, 검은 선으로 처리된 암석은 푸른 물과 강하게 부딪힌다. 물이 낮게 퍼질수록 바위의 무게는 더 두드러진다.
중앙의 큰 암석군은 매끈한 자연물로 처리되지 않았다. 여러 조각으로 갈라진 듯한 선과 거친 색의 겹침이 바위의 단단함을 드러낸다. 푸른 물이 부드러운 면으로 놓인다면, 바위는 날카로운 경계와 불규칙한 면을 만든다. 연못은 장식적인 수변 풍경으로만 남지 않는다. 물의 확장과 바위의 저항이 한 자리에서 맞물린다.
뒤편의 초록 수목은 수면과 바위 위로 빽빽하게 올라온다. 나무는 잎과 가지를 세밀하게 분리하기보다 강한 윤곽과 반복된 붓질로 세워졌다. 초록은 생명감을 만들지만 가볍게 퍼지지 않는다. 황갈색 식생은 초록 사이에 넓게 끼어들며 계절의 건조한 결을 남긴다. 물과 바위가 아래쪽을 붙잡는다면, 수목과 식생은 뒤편에서 자연의 밀도를 세운다.
위쪽의 분홍 하늘은 물가의 실제 시간보다 기억 속 색에 가깝게 번진다. 아래쪽의 짙은 물과 갈색 바위가 무게를 만들고, 분홍 하늘은 그 무게 위에 다른 온도를 얹는다. 하늘의 색은 수변을 밝히지만, 아래쪽 물과 암석이 그 밝음을 쉽게 띄워 보내지 않는다. 분홍빛은 가볍게 열리지 않고, 바위와 식생의 밀도 위에 얹혀 있다.
작품 안의 자연 요소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인다. 물은 아래로 깔리고, 바위는 그 위에 솟으며, 수목은 뒤편에서 수직으로 오른다. 황갈색 식생은 옆으로 번지고, 분홍 하늘은 위쪽을 덮는다. 방향이 다른 요소들이 한 캔버스에 모이면서 연못은 단순한 휴식의 장소가 아니라 여러 힘이 맞물린 장소로 바뀐다.
박희열 회화에서 초록은 자연의 생명감을 만드는 색으로 자주 쓰인다. ‘A Museum Pond’에서도 초록은 수목과 풀을 통해 자연의 밀도를 만든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초록이 단독으로 풍경을 지배하지 않는다. 푸른 물과 갈색 바위, 황갈색 식생, 분홍 하늘이 함께 작동한다. 색은 자연의 외형을 설명하기보다 물가의 온도와 무게를 조절한다.
‘A Museum Pond’라는 이름은 연못을 특정 장소처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캔버스에서 먼저 읽히는 것은 장소의 정보보다 물가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관계다. 어느 연못인지, 어떤 식생인지보다 물과 바위, 나무와 하늘이 서로를 어떻게 붙잡는지가 더 크게 다가온다. 박희열은 연못을 풍경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 속 수변의 구조로 다룬다.
작품의 밝은 하늘은 연못을 가볍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짙은 물과 바위가 그 가벼움을 붙잡는다. 물은 깊고, 바위는 무겁고, 나무는 빽빽하다. 하늘이 밝을수록 아래쪽의 색은 더 짙게 느껴진다. 박희열은 이 작품에서 분홍 하늘만으로 풍경을 열어두지 않는다. 수면과 암석의 무게를 함께 배치해 연못의 정서를 한쪽으로 흐르지 않게 만든다.
구성의 밀도는 장점이면서 검토 지점이기도 하다. 바위, 물, 나무, 식생, 하늘이 모두 강한 색과 형태를 갖고 있어 풍경은 풍부하게 보인다. 반대로 각 요소가 고르게 강해질 때 시선이 쉴 공간은 줄어든다. 연못의 고요함보다 색과 형태의 밀집이 먼저 다가오는 부분도 있다. 작품의 설득력은 자연 요소를 많이 배치한 데 있지 않고, 물과 바위가 만든 무게가 수목과 하늘의 색을 얼마나 붙잡아 주는가에 달려 있다.
박희열의 다른 풍경 작품들이 산과 들판, 설경을 통해 자연을 다뤘다면, ‘A Museum Pond’는 수변을 통해 자연의 작은 단위를 확대한다. 물은 시선을 낮추고, 바위는 흐름을 멈추게 하며, 나무와 황갈색 식생은 뒤편에 계절의 밀도를 만든다. 분홍 하늘은 실제 풍경의 시간보다 기억의 색에 가깝다. 연못은 단순한 자연 소재가 아니라 물성, 시간, 정서가 겹치는 장소로 바뀐다.
‘A Museum Pond’의 연못은 고요하게 비어 있지 않다. 푸른 물은 넓게 깔리고, 바위는 그 위를 끊어 세우며, 초록 수목과 황갈색 식생은 뒤편을 빽빽하게 채운다. 분홍 하늘은 수변을 밝히지만, 아래쪽의 물과 암석은 그 밝음을 쉽게 띄워 보내지 않는다. 박희열이 그린 연못은 평온한 풍경이라기보다, 물과 돌과 식생이 서로의 무게를 견디는 장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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