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에는 100년 넘은 떡집이 그렇게 많을까
[KtN 임우경기자] 도쿄상공리서치(TSR)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창업 100년 이상 된 일본 기업은 4만 2,966개사에 달한다. 전년 대비 2,197개사가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창업 200~300년 미만이 869개사, 500년 이상은 228개사로 집계됐다. 제국데이터뱅크((帝国データバンク,TDB)의 2024년 9월 기준 조사에서는 이 숫자가 4만 5,284개사까지 늘었다. 200년 이상 기업이 1,813개사, 300년 이상이 889개사, 500년 이상이 47개사이며, 심지어 1000년 이상 이어온 기업도 11개사나 된다. 세계 최고령 기업으로 알려진 곤고구미(金剛組, 오사카)는 서기 578년에 창업해 무려 1,400년 넘게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해외 기관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 창업 100년 이상 된 기업은 약 7만 5,000개사로 추정되는데, 이 중 일본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전 세계 장수기업의 절반을 훌쩍 넘는 수가 일본에 몰려 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들 기업의 성격이다. 매출 규모가 확인된 노포 기업 약 4만 개사 중 42.7%가 매출 1억 엔(약 9억 원) 미만의 소규모 사업체다. 화려한 대기업이 아니라, 동네 규모의 작은 업체들이 몇백 년을 버텨왔다는 뜻이다.
학창시절의 의구심, 그리고 일본 답사
이 격차를 직접 확인하러 나선 사람이 있다. 경북 고령의 떡본가를 3대째 이끌고 있는 홍인열 대표다. 그는 학창시절 "다른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앞선 곳도 많은데, 왜 유독 장수기업 분야만 이렇게 저조할까"라는 의구심을 품었다고 한다. 그 의구심은 곧 진로가 됐다. 가업승계를 염두에 두고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곧바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일본을 직접 찾아 떡 산업 전반을 조사하고 인기 품목 20여 종을 분석하며, 400년 전통의 재래시장과 화과자류 진열대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가 마주한 것은 화려한 대기업이 아니라, TSR·TDB 통계가 보여주듯 매출 1억 엔 미만의 작은 가게들이 대를 이어 지켜온 풍경이었다. 급격한 성장을 추구하는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오히려 장수기업이 드문 이유일 수 있다는 게 그가 내린 잠정적 결론이다.
왜 일본에는 이렇게 오래된 가게가 많을까
이 통계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식품업, 그중에서도 전통 식품업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답은 뜻밖에도 최신 트렌드에서 찾을 수 있다. 2026년 식품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건강'이다.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 문정훈 교수는 2026 식품외식산업 전망에서 2026년 한국인의 식탁을 주도할 키워드로 '건강'과 '편리미엄'을 꼽으며, 소비자의 건강 지향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래 살아남는 식품업체와 오래 살아남는 사람의 조건이 비슷하다면, 그 답은 결국 '몸에 무리 없는 방식'을 얼마나 꾸준히 지켰느냐에 있다.
떡본가의 무첨가 원칙, 곧 장수의 조건
떡 산업이 처한 상황이 이 흐름과 겹친다. 앞서 2회에서 짚었듯, 떡은 혈당지수(GI)가 높은 편에 속해 '탄수화물 폭탄'이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식품업계에서는 백미 대신 현미·보리·귀리 등 저GI 곡물을 쓰고, 설탕 대신 무화과·대추·호박 같은 천연 재료로 단맛을 내는 저당 떡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 흐름이 완전히 새로운 유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떡본가가 50여 년간 고수해온 무첨가·당일생산 원칙과 방향이 같다. "굳을 때가 되면 굳고, 상할 때가 되면 상해야 한다"는 홍 대표의 원칙, 판매되지 않은 떡을 다음 날 재판매하지 않는 방침은 애초에 '오래 팔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오래 신뢰받기 위한' 기술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오래된 원칙이, 지금 소비자들이 새삼 찾고 있는 클린 라벨·저당 트렌드와 정확히 만나고 있는 셈이다.
개인의 대물림에서 산업의 생존 조건으로
이런 시각에서 보면 떡본가의 가업승계는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통 식품업 전체가 마주한 생존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장수기업 상당수가 몇백, 몇천 년째 작은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살아남은 이유는 급격한 확장이 아니라, 매일 같은 원칙을 반복하며 신뢰를 쌓아온 데 있었다. 실제로 매년 일본에서는 약 2,000개사가 새롭게 창업 100주년을 맞이하고 있으며, 이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떡본가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려왔다. 1970년대 조부모가 창업한 이래 1983년 어머니가 2대를 잇고, 현재 3대인 홍 대표가 대구 직영점을, 딸이 고령 본점을 각각 맡고 있다. 화려한 마케팅보다 재료와 공정을 지키는 일이 결국 브랜드의 수명을 결정한다는 걸, 3대째 몸으로 증명해온 셈이다. 손님이 직접 지어준 이름 '문떡' 역시 화려한 캠페인이 아니라 매일 같은 정직함을 반복한 결과 얻어진 자산이라는 점에서, 일본 장수기업들의 생존 방식과 결이 다르지 않다.
실제로 국내 떡집 업계는 대부분 재래시장이나 골목 안에 숨어 있어 대중적 인지도가 빵집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실제 점포 수는 떡집이 빵집보다 많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전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지고 있을 뿐이며, 이 '숨은 전통'이 건강 트렌드와 만나 재조명될 여지는 충분하다는 진단이다.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방식
디지털 전환 역시 이 맥락에서 다시 읽을 수 있다. 대구한의대 소상공인 디지털 특성화대학의 AI 마케팅·라이브커머스 교육을 통해 온라인 채널을 구축하려는 떡본가의 시도는, 결국 '건강한 전통'을 더 많은 소비자에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도구다. 무첨가·저당·당일생산이라는 원칙이 아무리 탄탄해도, 이를 소비자가 알아볼 수 있는 언어와 채널로 옮기지 못하면 그 가치는 묻힌다.
2대를 이어가는 떡본가 홍인열 대표는 "자식이든 누구든, 앞으로 이 가게를 이어받을 사람이 나오면 내가 있는 동안 인프라를 다 구축해놓고 싶다"고 말한다.
일본의 4만 5,000여 개 노포 기업이 증명하듯, 100년을 잇는 기업의 절반 가까이는 매출 1억 엔 미만의 작은 규모다. 크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신뢰받는 것—그것이 장수기업의 진짜 조건이라면, 2대에서 3대로 착실히 이어지고 있는 떡본가의 승계 방식이야말로 그 조건에 가장 가까이 있는 셈이다. 떡본가가 준비하는 다음 100년 역시 '얼마나 건강하게 만들었는가'와 '그것을 얼마나 정확히 알렸는가', 이 두 축이 함께 갖춰질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이 이번 시리즈가 던지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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