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칼, 전철 소음, 노인의 걸음, 안경 자국…결정적 증거에서 합리적 의심으로
영화는 클로즈업과 편집으로 검증 순서를 통제하고 연극은 실제 시간과 몸으로 재연
목격자의 거짓보다 지각과 기억의 한계…증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오류
[KtN 박준식기자]칼은 독특했고 목격자는 두 명이었다. 아래층 노인은 소년의 외침과 쓰러지는 소리를 들은 뒤 계단으로 달아나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 길 건너편에 살던 여성은 전철의 차창 사이로 소년이 아버지를 찌르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소년은 사건 시각에 영화관에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영화 제목과 출연 배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각각의 증거는 유죄를 향하고 있었다. 한 줄로 연결하면 빈틈도 거의 없어 보인다. 아버지와 다툰 소년이 독특한 칼을 구입했고, 살인을 예고하는 말을 한 뒤 같은 모양의 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두 목격자가 소리와 장면을 확인했다는 서사다. 첫 표결에서 열한 명이 유죄를 선택한 배경에는 증거의 수뿐 아니라 증거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돼 있다는 인상이 작용했다.
토론이 시작되자 증거 자체보다 증거가 성립한 조건이 앞으로 나온다. 칼의 유통 가능성, 고가전철의 소음, 노인의 불편한 다리, 침대와 현관 사이의 거리, 목격자와 사건 현장의 간격, 안경 착용 여부가 차례로 검토된다. 법정에서 단단해 보였던 사실은 시간과 거리, 소리와 신체의 조건을 되찾으면서 확신의 강도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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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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