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의 “모릅니다”가 연 토론…무죄 확신보다 강했던 오류 가능성
희귀한 흉기 논리를 무너뜨린 같은 칼, 법정 밖 독자 조사라는 절차적 균열
영화는 헨리 폰다를 도덕적 중심에 세우고 연극은 8번도 열두 명 속에 남겨
[KtN 박준식기자]8번 배심원이 주머니에서 접이식 칼을 꺼내 테이블에 꽂는다. 법정에 제출된 살인 흉기와 매우 비슷한 칼이다. 배심원실에는 한동안 두 자루가 나란히 서 있다. 검찰이 강조했던 ‘유일한 칼’의 전제는 몇 초 만에 무너진다.
장면의 통쾌함 뒤에는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 균열이 남는다. 두 번째 칼은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증거가 아니다. 8번이 법정 밖에서 직접 구했고, 검사와 변호인의 검증도 거치지 않았다. 합리적 의심을 넓힌 물건이 정작 배심원이 지켜야 할 증거의 경계를 넘어 들어온 셈이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8번을 무오류의 영웅으로 세울 때보다 모순을 지닌 판단자로 읽을 때 더 깊어진다. 그는 한 사람을 성급하게 사형대로 보내지 않으려 토론을 시작했다. 동시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배심원의 역할을 넘어 조사자와 증인의 자리까지 차지했다. 두 번째 칼은 8번의 정의감을 입증하는 상징이면서 그 정의의 절차를 흔드는 물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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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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