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벌리힐스에 의자 50점 집결…전통 경매회사 공간과 디지털 판매 플랫폼 결합, Design Miami까지 확보한 Basic.Space가 ‘다음 세대 컬렉터’ 공략
[KtN 임민정기자]크리스티(Christie’s) 베벌리힐스 전시장에 오는 9월 25일부터 의자 50점이 들어선다. 전시장은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제공하지만 판매 창구는 Basic.Space다. ‘50 Chairs at Christie’s’에 나온 작품들은 전시 기간 Basic.Space 플랫폼을 통해 거래된다. 실물을 경험하는 장소와 실제 판매가 이뤄지는 플랫폼을 분리한 구조다.
9월 24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3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찰스와 레이 임스(Charles and Ray Eames)의 LCW부터 구프람(Gufram)의 대형 Pratone 라운지 체어, 1963년 제작된 조 콜롬보(Joe Colombo)의 Elda Chair, 1970년대 필리프 이킬리(Philippe Hiquily)의 해머드 브라스 체어가 포함된다. 릭 오웬스(Rick Owens), 승진 양(SeungJin Yang), 샘 클레믹(Sam Klemick) 등 현재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의 작품도 같은 공간에 놓인다.
역사적인 디자인과 동시대 작품을 한곳에 모은 전시 자체보다 디자인경제 측면에서 더 눈에 띄는 대목은 판매 구조다. 크리스티라는 전통적인 거래 공간에서 작품을 보고, Basic.Space라는 별도의 플랫폼에서 구매하는 방식은 컬렉터블 디자인 시장에서 전시와 거래가 반드시 하나의 사업자 안에서 끝날 필요가 없다는 흐름을 보여준다.
Basic.Space 창업자 제시 리(Jesse Lee)가 이번 프로젝트의 대상으로 내세운 것도 기존 컬렉터가 아니라 ‘다음 세대 컬렉터(next generation of collectors)’다. 2020년 플랫폼을 설립한 뒤 온라인에 머물지 않고 오프라인 행사를 확대했고, 최근에는 디자인 시장의 주요 행사 가운데 하나인 Design Miami를 인수했다. 디지털 플랫폼과 실제 전시, 디자인페어를 하나의 생태계 안에 묶는 움직임이 ‘50 Chairs at Christie’s’에서 다시 나타난다.
의자는 디자인 수집 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품목으로도 독특하다. 회화처럼 벽에 걸어 감상하는 작품이 아니고 조각처럼 기능을 완전히 내려놓은 오브제도 아니다. 앉는다는 기능을 유지하면서 제작 연대와 재료, 구조, 디자이너의 이름에 따라 수집 가치가 달라진다.
‘50 Chairs at Christie’s’는 바로 이 특성을 이용한다. 50점을 모두 같은 종류의 가구로 묶어놓고 시대와 재료, 제작 방식을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에서는 목재를 중심으로 한 오래된 디자인부터 금속 구조를 드러낸 의자, 동물의 뿔을 사용한 스툴, 풍선의 형태를 레진으로 굳힌 동시대 작품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의자’라는 공통된 기능이 있기 때문에 디자인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형태와 재료의 차이를 비교하기 쉽다.
새 컬렉터를 끌어들이려는 프로젝트에 의자가 놓인 배경을 이런 특성에서 읽을 수 있다. 다만 Basic.Space가 50점을 모두 의자로 정한 구체적인 이유는 공개된 설명에 제시되지 않았다. 의자가 신규 컬렉터 진입을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됐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실제 전시 구조에서 그런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정도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Basic.Space가 제시한 작품 구성도 한 시대에 집중되지 않는다.
찰스와 레이 임스의 LCW는 희귀한 카프스킨 버전으로 소개된다. 조 콜롬보가 1963년 제작한 몰드 파이버글라스 Elda Chair와 필리프 이킬리의 1970년대 해머드 브라스 체어가 역사적 축에 놓인다. 구프람의 대형 Pratone 라운지 체어처럼 이미 디자인 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작품도 포함된다.
반대편에는 현재의 컬렉터블 디자인 시장을 구성하는 작품들이 있다. Carpenters Workshop Gallery는 릭 오웬스의 Stag Stool을 내놓는다. 검은 합판과 천연 무스 뿔을 사용한 한정판이다. The Future Perfect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승진 양의 ‘Lounge Chair 01 – Transparent Blue’를 공급한다. 풍선 형태를 레진으로 굳혀 제작한 의자다.
샘 클레믹의 Trumpet Dining Chair는 직물의 유연한 흐름을 단단한 목재로 옮기고, JF Chen은 데번 턴불(Devon Turnbull), 빈스 스켈리(Vince Skelly), 맥스 램(Max Lamb)의 작품을 내놓는다.
50개의 의자가 단순히 오래된 디자인과 새 디자인으로 양분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시장에서 명성을 쌓은 작품, 유명 컬렉터가 소장했던 작품, 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가 공급하는 동시대 작품이 같은 판매 환경 안에 들어온다.
이렇게 구성된 전시는 디자인을 처음 사는 사람에게 일종의 비교표 역할을 한다. 1960~1970년대 디자인과 최근 작품의 재료가 어떻게 다른지, 산업생산과 수공적 제작이 어떤 형태로 갈리는지, 기능적인 가구가 어느 순간부터 수집 대상으로 인식되는지를 같은 공간에서 직접 비교할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경험이다.
컬렉터블 디자인은 사진 몇 장만 보고 구매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의자는 규모와 높이, 등받이와 좌판의 각도, 목재와 금속의 표면, 제작 과정에서 남은 흔적까지 실제 물체에서 느껴지는 정보가 많다. 조각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일수록 정면 이미지 한 장으로 전체 구조를 판단하기 어렵다.
크리스티 베벌리힐스라는 물리적 장소는 이 부분을 채운다. 작품 50점을 실제 공간에서 비교할 수 있고, 판매는 Basic.Space로 이어진다.
전통적인 경매회사가 작품을 모집하고 카탈로그를 만들고 경매를 진행해 낙찰까지 맡는 구조와는 다른 접점이다. ‘50 Chairs at Christie’s’에서는 전시 장소와 판매 플랫폼의 역할이 나뉘어 있다. 크리스티의 공간이 제공하는 오프라인 경험과 Basic.Space가 가진 디지털 거래 기능이 하나의 행사 안에서 연결된다.
이런 조합은 ‘어디에서 작품을 사느냐’보다 ‘어디에서 작품을 발견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는 디자인 시장의 변화를 보여준다.
제시 리가 Basic.Space의 중심에 ‘발견(discovery)’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플랫폼 안에서 알고리즘이나 목록으로 작품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이너, 아티스트, 크리에이터가 참여하는 실제 공간으로 경험을 확대해왔다.
Design Miami 인수는 이런 방향을 더 선명하게 했다. 디자인페어는 작품을 사고파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갤러리와 디자이너, 컬렉터가 새 작품을 접하는 현장이다. Basic.Space가 온라인 플랫폼에 Design Miami라는 물리적 행사를 더하면서 콘텐츠를 보여주는 기능과 판매 기능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50 Chairs at Christie’s’에서는 여기에 크리스티 베벌리힐스라는 장소가 추가된다.
온라인 플랫폼, 디자인페어, 전통 경매회사 공간이 같은 사업 구조에 속한다는 뜻은 아니다. 크리스티는 이번 전시 장소이고 작품 판매는 Basic.Space 플랫폼을 통해 진행된다. 다만 컬렉터 입장에서는 작품을 발견하고 직접 본 뒤 구매까지 이어지는 경로가 여러 사업자의 영역을 넘나들게 된다.
디자인 시장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별개로 나누던 구분이 약해지는 대목이다.
Basic.Space가 강조하는 ‘다음 세대 컬렉터’도 이 구조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기존 컬렉터블 디자인 시장은 작품의 제작 연도와 에디션, 생산자, 디자이너의 경력, 갤러리와 소장 이력 등 상당한 정보를 요구한다. 잘 알려진 역사적 작품이라도 동일한 디자인 안에서 생산 시기와 재료, 버전에 따라 시장에서 다르게 취급된다.
새로 시장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런 정보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50 Chairs at Christie’s’는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을 ‘의자’라는 익숙한 유형 안에 묶는다. 임스의 LCW와 릭 오웬스의 Stag Stool, 승진 양의 레진 의자를 한 번에 비교할 수 있게 하면서 디자인사의 연대기를 먼저 공부하지 않아도 형태와 재료의 차이에서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전시 경험 자체가 판매 이전의 교육 기능을 갖는 구조다.
Basic.Space가 과거의 아이코닉 디자인과 현재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함께 배치한 이유도 신규 수요와 연결된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축적된 작품만 제시하면 시장은 기존 컬렉터의 취향과 지식에 가까워진다. 반대로 새로운 디자인만 다루면 작품의 장기적인 수집 가치와 디자인사의 흐름을 비교하기 어렵다.
과거와 현재를 한 판매 목록 안에 넣으면 두 시장이 서로를 설명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럭셔리’의 범위도 달라진다. 제시 리는 Basic.Space가 다음 세대 컬렉터를 위해 럭셔리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 럭셔리는 특정 브랜드나 고가 소재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1963년의 몰드 파이버글라스 의자와 1970년대 황동 의자, 희귀한 카프스킨 LCW, 검은 합판과 무스 뿔을 결합한 스툴, 풍선과 레진으로 만든 투명한 블루 의자가 모두 수집 대상으로 제시된다.
값비싼 소재를 많이 사용했다는 기준보다 디자인의 역사와 희소성, 제작 방식, 재료 실험, 디자이너의 위치를 함께 거래하는 시장에 가깝다.
작품별 판매가격과 거래액은 공개된 자료에 제시되지 않았다. 이번 전시가 실제로 어떤 가격대의 신규 컬렉터를 끌어들이는지, 판매 성과가 기존 디자인 경매와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는 행사 이후 거래 결과가 나와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분명한 것은 Basic.Space가 신규 컬렉터를 확보하는 방법으로 온라인 판매만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20년 플랫폼 설립 이후 실제 행사를 확대했고 Design Miami를 인수했으며, 이번에는 크리스티 베벌리힐스에 50개의 의자를 가져온다. 작품은 직접 보고 비교할 수 있도록 물리적인 공간에 펼치지만 거래는 Basic.Space 플랫폼에서 이어간다.
디자인 수집 시장에서 디지털 플랫폼의 경쟁력도 결국 화면 안의 상품 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방향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어떤 작품을 선별하고, 어떤 작품과 나란히 놓으며, 어느 공간에서 처음 만나게 하는지가 거래 과정의 일부가 되고 있다.
9월 24일 VIP 프리뷰를 거쳐 25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50 Chairs at Christie’s’는 베벌리힐스 336 North Camden Drive에서 진행된다. 전시 기간 작품 판매는 Basic.Space 플랫폼을 통해 이어진다.
의자 50점을 모았다는 숫자보다 주목할 변화는 작품을 발견하고 구매하는 경로다. 크리스티의 공간에서 실물을 접하고, Basic.Space에서 거래하며, 그 뒤에는 Design Miami까지 확보한 플랫폼의 오프라인 확장이 놓여 있다. 오래된 디자인과 현재의 작품을 같은 공간에 세운 ‘50 Chairs at Christie’s’는 다음 세대 컬렉터를 확보하려는 디자인 시장의 경쟁이 작품 판매를 넘어 발견과 경험의 단계까지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