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홀린 '일월오악도'부터 백남준까지…영국박물관 덮친 2000년 한국미술의 힘
2만 3천점 중 국보급만 추렸다…이건희 컬렉션, 미국 찍고 영국서 완성하는 '역대급 대미'
[KtN 신미희기자] 국보 '인왕제색도'부터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 '브람스'까지 한국 미술 2000년의 역사를 집대성한 걸작들이 영국 런던 중심부에 입성한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기증품을 주축으로 구성한 국외 순회전의 마지막 무대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10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에서 특별전 '한국: 2000년 창의의 여정'을 영국박물관과 공동 주최로 연다고 21일 밝혔다. 2021년 유족의 국가 기증을 계기로 기획된 '어느 수집가의 초대'(2022)를 모태로 한 전시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올해 3월 시카고미술관에 이어 3개 도시 국외 순회의 대미를 장식한다.
◻︎ 국보·보물 대거 집결…2만 3000여 기증품 중 100건 엄선
이번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79건(164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5건, 영국박물관 소장품 6건 등 총 100건이 관람객을 맞는다. 국보 10건(27점)과 보물 13건(23점)이 포함됐다. 국보 '대구 비산동 청동기'도 이번 런던 무대에서 새롭게 공개된다.
영국박물관은 전시의 연대기적 범위를 기원전 300년경부터 현대까지로 규정했다. 출품작 대다수는 2021년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2만 3000여 점의 '이건희 컬렉션' 중 엄선된 명작들로 채워졌다.
전시 동선은 영국박물관의 중앙 중정인 그레이트 코트와 면한 전시실에 '타임 터널'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연출된다. 관람객은 유물을 따라 걸으며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시공간을 유기적으로 이동하게 된다.
◻︎ 고대 고고 유물부터 조선 진경산수화까지 망라
도입부인 1부 '부와 권력'은 초기 철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고고 유물과 삼국시대 불교미술을 집중 조명한다. 미국 전시보다 고고 유물 비중을 대폭 강화해 '날개 모양 관꾸미개', '금동신발', '토우 장식 토기' 등을 전면에 배치했다.
이어지는 2부 '지혜와 아름다움'에서는 정교한 고려 불화와 사경, 비색 청자와 금속공예를 소개한다. 3부 '배움과 즐거움'은 조선 유학자의 학문적 이상과 생활상을 조명하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 조선 회화의 정수를 펼쳐 보인다.
◻︎ K-컬처 원류 '일월오악도'와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확장
최근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을 통해 해외 대중문화계에서도 주목받은 전통 회화 소재 '일월오악도'와 '까치와 호랑이'도 현지에 선보인다. '일월오악도'는 전시 공식 포스터를 장식하며, 민화 '까치와 호랑이'는 미국 순회전에는 없던 신규 출품작이다.
마지막 4부 '개성과 사회'는 대한제국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근현대미술로 추적한다. 백남순의 8폭 병풍 유화 '낙원', 박수근과 장욱진의 회화, 신학철의 '한국근대사-종합',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 '브람스'가 나란히 걸린다.
전통 병풍 포맷에 서양 유화를 접목한 '낙원'과 클래식 음악을 전자 영상 조각으로 해체·재해석한 '브람스'는 외래 양식을 흡수해 독자적 형식으로 승화해 온 한국 미술 특유의 통섭적 미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영국박물관 소장품인 고려 '나전 국화 당초무늬 경전함'과 조선 후기 이명기의 '채제공 초상', 강익중·이수경·서도호의 현대미술 작업도 궤를 맞춘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영국에서는 더 많은 국보와 보물이 포함된 옹골찬 구성으로 새로운 한국의 이야기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최근 K팝과 K드라마 등 동시대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를 넘어, 이를 태동시킨 2000년의 조형 언어와 미학적 뿌리를 서구 문화 중심지에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외래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융합해 온 우리 예술의 복합성이 런던 한복판에서 글로벌 관람객과 호흡하며 K-컬처의 지적 외연을 확장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