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LA로 떠나…고향 묵호 바다와 어린 시절 화폭에 담아

미국에서 잠깐 귀국하여 개인전을 오픈한 이순천 화가 (사진=조영식 기자)
미국에서 잠깐 귀국하여 개인전을 오픈한 이순천 화가 (사진=조영식 기자)

[KtN 조영식기자] 낯선 이국에 살면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단순히 ‘고향이 보고 싶다’는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낯선 현재와 익숙했던 과거를 이어주는 다리이자, 그 시간 속에 머물렀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청춘의 문턱 서른 살에 한국을 떠나 지금까지 미국 LA에 살아온 이순천 화가에게 고향은 그렇게 오랜 세월 가슴속에 남아 있다.

강원도 묵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세월이 흐를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을 통해 되살아났다.

이순천 한국 개인전이 18일 경기도 포천시 고모리 프로방스 ‘갤러리 뮤’에서 막이 올랐다. 이날 전시장에는 오랜 한국 지인들이 찾아와 작품을 감상하며 이순천 화가가 고향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 찬사를 보냈다.

이순천 한국 개인전이 18일 경기도 포천시 고모리 프로방스 ‘갤러리 뮤’에서 막이 올랐다. 지인들과 함께 기념사진 (사진=조영식 기자)
이순천 한국 개인전이 18일 경기도 포천시 고모리 프로방스 ‘갤러리 뮤’에서 막이 올랐다. 지인들과 함께 기념사진 (사진=조영식 기자)

이순천 화가의 예술적 출발은 의외로 그림이 아니었다. 그는 기독음대와 신학대에서 주로 기악과 피아노를 전공하며 음악의 길을 걸었다. 이후 성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고, 목사 남편을 도와 찬양사역에 열중하며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과 소통했다.

그러던 중 2004년 LA에서 독도화가로 잘 알려진 권용섭 화백을 만나면서 그의 삶에 새로운 예술의 길이 열렸다. 권 화백의 지도를 받으며 붓을 잡기 시작했고, 꾸준한 습작과 창작활동을 이어가면서 음악가에서 화가로 자신의 지평을을 넓혀갔다.

권용섭 화백은 이순천 화가의 작품에 대해 “음악을 했던 경험이 그림의 예술성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있다”며 “많은 습작을 통해 탄탄한 기본기를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창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순천의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고향 묵호’​다.

어린 시절 집 앞 까막바위에서 자맥질하던 기억,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던 성장기 해녀 친구들, 그리고 시골 초가집 풍경까지 오랜 세월 가슴 한편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화폭 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스승 권용섭 화백이 작품의 우수성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사진=조영식 기자)
스승 권용섭 화백이 작품의 우수성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사진=조영식 기자)

그의 그림 속 묵호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곳에는 어린 이순천이 있고, 다감했던 친구가 있으며, 바다가 있고,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이 있다.

그래서 그의 고향 그림을 바라보는 일은 한 사람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는 일이면서, 동시에 타향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긴 세월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림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해’​도 이순천 화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어떤 그림에는 막 떠오르는 해가 있고, 어떤 그림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수평선 너머로 저무는 해가 있다.

이순천 화가는 “제 그림에 해 몰입이 강한 것은 제가 태어날 때 태몽이 ‘해’였기 때문입니다.”라면서 “제 이름 ‘순천(侚天)’은 하늘(해)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에게 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바로 저의 또 다른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순천 화가의 작품은 모두 수묵담채화다. 수묵화가 먹의 농담과 여백을 중심으로 흑과 백의 깊이를 표현한다면, 수묵담채화는 먹을 중심으로 하면서 엷은 색채를 더해 대상의 정서와 분위기를 한층 새롭게 한다.

그의 작품에서도 먹의 담백함 위에 은은하게 얹힌 색채가 바다와 산, 초가집, 사람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감싼다. 강렬한 색으로 고향을 재현하기보다 엷은 색과 먹의 농담으로 기억 속 고향을 그려내기에, 오히려 작품에서는 오래된 사진처럼 아련한 향수가 배어난다.

30대에 LA로 떠난 한 여성이 이제 세월을 훌쩍 넘어 다시 고향 땅에 자신의 그림을 펼쳐놓았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속 고향은 단순히 돌아가 보고 싶은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타국에서 살아온 긴 시간 동안 마음 속에서 한 번도 떠나보내지 않았던 ‘마음의 뿌리’​다.

고향은 멀어졌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그림 속 고향은 더욱 가까워졌다. 묵호의 바다와 까막바위, 어린 시절의 친구들, 초가집 그리고 그 위로 떠오르고 지는 해.

그 모든 풍경은 이제 실제의 고향을 넘어 기억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익어가는 고향이 됐다.

이순천은 고향 묵호만이 아니라 고향을 느끼게 하는 산정호수 등도 화폭에 담았다.  

먼 타국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시간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리움 속에서 지켜온 자신의 뿌리가 은은한 먹빛과 색채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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