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설산과 따뜻한 석양의 대비…정상으로 향하는 인간의 이동을 수채화의 색과 선으로 풀어

조운호, ‘스위스 마테호른 고르너그라트역’, 2025.09.28, 수채화, 39×52cm. 고르너그라트역 해발 3,089m.
조운호, ‘스위스 마테호른 고르너그라트역’, 2025.09.28, 수채화, 39×52cm. 고르너그라트역 해발 3,089m.

[KtN 박준식기자]설원 한가운데 붉은 열차가 길게 놓였다. 철로는 오른쪽 아래에서 건물을 지나 마테호른 쪽으로 이어지고, 멀리 솟은 봉우리는 노란빛과 주황빛이 번지는 하늘을 등지고 서 있다. 조운호 작가가 2025년 9월 스위스 고르너그라트역과 마테호른을 그린 수채화는 거대한 산의 위용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눈 덮인 산과 철도, 역 건물, 사람의 크기를 한 작품 안에 함께 두면서 자연과 인간의 이동을 나란히 펼친다.

가장 강한 대비는 색에서 나온다. 설원에는 청색과 회청색이 넓게 깔리고, 마테호른 뒤편 하늘에는 노랑과 주황, 분홍이 겹친다. 차가운 지상과 따뜻한 하늘이 봉우리를 사이에 두고 갈린다. 산 정상에는 짙은 청색과 갈색이 겹쳐져 주변의 눈보다 강한 윤곽을 만든다.

하늘의 노란빛은 산 뒤에서 넓게 번진다. 일정한 색면으로 채우지 않고 물감의 농도를 달리하면서 밝은 부분과 흐린 부분을 함께 남겼다. 분홍빛 구름도 명확한 테두리를 갖지 않는다. 수채화 특유의 번짐이 석양의 색을 부드럽게 이어주고, 마테호른의 뾰족한 형태는 그 사이에서 한층 또렷해진다.

설산에서는 붓질이 달라진다. 넓게 비워둔 흰 부분 사이로 청색과 회색이 끊어지듯 놓인다. 눈의 표면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능선과 골짜기의 방향을 짧은 붓질로 짚었다. 흰 종이가 그대로 눈이 되고, 청색은 지형의 굴곡과 그림자를 맡는다.

마테호른은 작품의 가장 높은 곳에 있지만 정중앙에 완전히 고정되지 않는다. 오른쪽 아래에는 고르너그라트역과 철도가 자리하고, 붉은 열차가 비스듬한 방향으로 길게 들어온다. 산을 바라보는 시선과 철도를 따라 움직이는 시선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만나도록 짜인 구성이다.

붉은 열차는 설원의 흰색과 가장 강하게 맞서는 색이다. 산과 하늘의 넓은 색면 사이에서 열차의 붉은색은 작은 면적만 차지하지만 시선을 빠르게 붙든다. 자연의 규모와 비교하면 작지만 작품 안에서는 인간의 이동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요소가 된다.

역 건물의 갈색과 열차의 붉은색도 차가운 설경 안에 따뜻한 온도를 더한다. 마테호른 뒤편의 주황빛 하늘과 열차의 붉은색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비슷한 온도의 색을 공유한다. 하늘의 빛과 지상의 철도가 색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설원 한가운데 작게 들어간 두 사람도 눈에 남는다. 인물은 세부 묘사를 줄이고 어두운 실루엣에 가깝게 처리됐다. 거대한 설산과 비교하면 크기는 극히 작다. 자연의 압도적인 규모를 설명하기 위한 수치 대신 산과 사람의 크기 차이를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다.

조운호는 이 작업에 “고요한 설원 위에 작은 열차 한 줄기 빛, 그 길 따라 인간의 꿈도 함께 달린다”는 언어를 더했다. 그림에서도 자연과 인간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철도는 산을 가리거나 밀어내지 않고 설원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산의 규모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흔적을 작게 배치했다.

마테호른을 감싸는 노란빛과 주황빛은 작품의 정서를 결정한다. 눈 덮인 산을 차갑고 고립된 풍경으로만 처리하지 않고, 따뜻한 하늘을 크게 펼치면서 설경의 분위기를 바꿨다. “불타는 봉우리, 눈부신 약속이 하늘 물들인다”는 조운호의 언어도 봉우리 자체보다 산 뒤로 번지는 색과 맞닿아 있다.

자연 풍경을 다뤄온 조운호의 수채화에서 산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다. 설악산과 아이거봉 등 앞선 산악 작업에서도 산의 규모와 빛의 변화를 함께 다뤘다. 이번 마테호른 작업에서는 철도와 역, 사람까지 풍경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고르너그라트역이라는 장소가 작품의 성격을 바꾼다. 봉우리만 그렸다면 거대한 자연을 바라보는 풍경화에 가까웠겠지만, 철도와 역이 들어오면서 이동의 시간이 생긴다. 열차는 산 아래에 정지해 있으면서도 철로의 사선 때문에 곧 움직일 듯한 흐름을 갖는다.

철로와 설산의 능선도 서로 다른 선을 만든다. 산의 능선은 불규칙하게 이어지고, 철도는 인간이 만든 일정한 방향을 따라간다. 자연의 선과 인공의 선이 한 작품 안에서 겹치면서 마테호른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한 감상에서 이동의 경험으로 넓어진다.

조운호 작가가 경영과 글쓰기에서 꾸준히 다뤄온 목표와 실행의 언어도 이 작품에서는 비교적 절제된 형태로 이어진다. 정상에 도달했다는 성취를 직접 강조하기보다 설원을 통과하는 철도와 그 위의 열차를 배치했다. 결과보다 이동하는 과정이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최근 작품에서 반복되는 ‘방향’의 의미도 여기서 확인된다. 독수리가 하늘에서 몸의 방향을 잡았다면 마테호른 작업에서는 철로가 산을 향해 길을 만든다. 하늘을 나는 존재와 설원을 달리는 열차라는 차이가 있지만, 한곳에 머물기보다 이동하는 대상이 작품 속에서 계속 등장한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풍경화와 구상회화는 디지털 매체와 새로운 형식이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꾸준히 거래되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작가 개인의 경험과 장소의 기억, 작품군 사이의 연결성이 함께 읽히는 흐름도 강해졌다. 한 점의 풍경만으로 시장적 의미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동일한 작가가 자연과 이동을 여러 작품에 걸쳐 축적한다는 점은 작업의 흐름을 살피는 단서가 된다.

조운호의 마테호른은 극적인 자연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거대한 봉우리 아래 작은 역이 있고, 열차가 있으며, 설원에는 사람이 서 있다. 눈 덮인 산은 변하지 않는 자연의 규모를 보여주고 철도는 그 안을 이동하는 인간의 시간을 끌어들인다.

차가운 청색과 따뜻한 황금빛, 자연의 능선과 철도의 직선, 거대한 산과 작은 사람이 한 작품 안에서 서로 다른 크기와 속도로 놓였다. 마테호른의 높이보다 설원을 지나 그곳에 다가가는 시간이 더 오래 남는 이유다.

조운호 작가의 이번 수채화는 산 정상의 장엄함만을 그린 풍경화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설산을 가로지르는 붉은 열차와 고르너그라트역을 함께 배치하면서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이동까지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황금빛 하늘 아래 솟은 마테호른과 설원을 지나는 철도는 서로 다른 규모로 존재하지만, 한 방향을 따라 이어지는 풍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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