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멕시코시티 공동전, 1982년 사진부터 2026년 신작까지 17명·팀 참여
피부를 기록한 사진과 금속·종이·직물 작업 병치…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다른 공간 구성
[KtN 김성은기자]흰 벽에 작은 사진 다섯 점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렸다. 피부를 가까이 촬영한 사진마다 붉고 보랏빛이 도는 자국이 남아 있다. 다른 벽에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작품 두 점이 넓은 간격을 두고 놓였고, 바닥에는 둥근 입체물들이 흩어져 있다. 작품의 크기와 재료, 설치 높이가 서로 다른 전시장이다.
미국 뉴욕의 마켓 갤러리(Market Gallery)와 멕시코시티의 서드 본(THIRD BORN)이 공동 개최한 전시에서 사진가 조라 시허(Zora Sicher)가 처음으로 큐레이션을 맡았다. 1982년 세라 민터(Sarah Minter)의 사진부터 2026년 실비아 그루너(Silvia Gruner)의 신작까지 44년에 걸쳐 제작된 작품을 선정했다. 회화와 사진, 조각, 영상 등 여러 매체를 한 공간에 배치했다.
전시는 10월 1일 멕시코시티 로마 노르테(Roma Norte)에서 개막했다. 제목은 'till the body becomes the city, it always is / hasta que el cuerpo se convierte en la ciudad, siempre lo es'다. 17명의 작가 또는 작가팀이 참여했으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과 기억, 이주와 사회적 현실을 다룬다.
서로 다른 세대의 작품을 한 전시에 모으면서 작품의 크기와 배치에도 차이를 뒀다. 오래된 사진과 최근 제작한 회화가 같은 벽에 놓이고, 종이와 금속을 결합한 작품은 바닥의 입체물과 함께 소개된다. 전시장에서는 작품에 담긴 이미지뿐 아니라 제작 연도와 재료, 관람 거리까지 살펴볼 수 있다.
시허는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다. 10대부터 친구와 가족, 가까운 사람들을 촬영했고, 인물 사이의 관계와 개인적인 기억을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2011년부터 제작한 사진을 모아 2025년 첫 사진집 'Geography'를 출간했다.
'Geography'에는 오랜 시간 촬영한 친구들의 모습과 생활의 변화가 담겼다. 시허는 사진을 촬영한 순서대로 배열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기의 이미지를 함께 엮었다. 개인적인 관계와 시간이 사진집의 구성을 결정한 것이다.
2024년 뉴욕 마켓 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 'Futurephobia'에서도 사진과 문자, 수집한 물건을 결합했다. 아날로그 사진 작업에 디지털 이미지 제작 방식을 더하고, 사진과 문자를 함께 배치해 이미지가 기록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다뤘다.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선택하고 배열하던 시허는 이번 공동전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게 됐다. 사진 한 장이나 개인의 기록을 편집하던 작업에서 여러 작가의 제작 이력과 작품을 선정하는 역할로 활동을 넓힌 것이다.
작품을 제작한 시기와 사용한 재료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전시에서는 개별 작업의 역사와 설치 방식이 함께 고려됐다. 1980년대 사진을 최근의 조각과 나란히 놓을 때에는 작품이 만들어진 사회적 환경과 지금의 관람 조건이 달라진다는 점도 중요해진다.
다섯 점의 사진에는 피부 표면의 붉고 보랏빛이 도는 자국이 서로 다른 크기로 나타난다. 일부는 한 부분에 색이 짙게 모여 있고, 다른 사진에서는 여러 자국이 떨어져 있다. 피부의 옅은 색과 어두운 자국이 대비되며 세부적인 형태가 드러난다.
인물의 얼굴이나 전신을 보여주지 않고 피부의 일부분을 크게 촬영했다. 몸의 어느 부위인지보다 피부에 남은 색과 윤곽이 두드러진다. 서로 비슷한 크기의 사진을 반복하면서 자국의 형태와 분포를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피부는 살아 있는 몸의 표면이면서 외부의 접촉과 시간이 흔적을 남기는 곳이다. 몸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사진에서는 개인의 신원을 구별하는 요소가 줄어들고, 피부에 남은 물리적인 변화가 중심을 차지한다.
사진 다섯 점을 같은 높이로 나란히 배치한 구성도 작품의 성격에 영향을 준다. 개별 사진에서는 자국의 모양이 강조되지만, 전체를 함께 살펴보면 사진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가 드러난다. 같은 크기의 액자와 일정한 간격이 비교의 기준이 된다.
도시의 기억을 다루는 전시에서 사람의 몸을 기록한 사진을 선택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도시를 건물과 도로, 교통시설로 묘사하는 대신 몸에 남은 흔적을 통해 개인의 경험을 다룬 작업이다. 사진에 담긴 자국의 원인을 임의로 해석하기보다 신체의 일부를 선택하고 반복해 제시한 표현 방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조라 시허는 자신의 사진에서도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몸과 정체성을 다뤄왔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선정하는 이번 전시에서도 도시의 경험을 건축물과 지리적 공간에 한정하지 않고 사람의 신체와 기억까지 연결하는 구성이 나타난다.
사진의 반복적인 배열은 오래된 사진 기록이나 의학적 표본을 떠올리게도 한다. 같은 크기의 이미지를 일정한 간격으로 놓으면 개별 대상의 차이를 살펴보기 쉬워진다. 작품에서는 피부에 남은 자국들이 이러한 배열 안에 들어가면서 사적인 신체의 일부가 공개적인 관찰의 대상이 된다.
전시의 다른 공간에서는 작품을 배치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흰 벽에는 작은 평면 작품 두 점이 떨어져 걸려 있다. 왼쪽의 작품은 세로로 좁고, 오른쪽의 작품은 가로로 넓다. 오른쪽 끝의 흰색 받침대에는 작은 입체물이 놓였다. 작품 사이에 빈 벽이 넓게 남아 있어 각각의 크기와 위치가 분명하게 구별된다.
작품을 촘촘히 걸지 않은 전시장에서는 작은 물건도 주변 공간과의 비율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두 평면 작품 사이의 간격이 넓어 관람자는 한 작품을 가까이 살펴본 뒤 다른 작품으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받침대 위의 입체물은 평면 작품과 다른 높이에서 관찰하도록 배치됐다.
작품을 전시하는 높이와 간격은 관람자가 이동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눈높이에 걸린 작은 작품은 가까이에서 세부를 살펴보게 하고, 낮은 받침대 위의 입체물은 위치를 옮기면서 형태를 확인하게 한다.
넓은 벽을 가득 채우는 대형 회화와 작은 작품 몇 점을 배치하는 전시는 관람 방식이 다르다. 대형 회화에서는 전체적인 색상과 구성이 먼저 나타나지만, 작은 작품에서는 재료와 표면, 세부적인 형태를 살펴보는 거리가 중요해진다.
이번 공동전에는 이러한 설치 방식이 함께 사용됐다. 작가별 작품의 크기를 동일하게 맞추지 않고 각각의 재료와 표현 방식에 따라 설치 위치를 달리했다. 서로 다른 규모의 작품을 하나의 전시에서 다루는 큐레이션의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사진과 회화, 조각을 함께 전시할 때 작품마다 필요한 공간도 달라진다. 사진은 보존과 조명 조건을 고려해야 하고, 입체 작품은 관람자의 이동과 작품 사이의 거리가 필요하다. 종이나 직물처럼 재료가 약한 작품은 설치 방식에 따라 보존 상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서드 본 공동전에는 이러한 재료의 차이가 분명한 작업들이 포함됐다. 오래된 사진과 최근의 회화, 금속과 종이, 직물과 라텍스가 한 공간에 놓였으며, 작품의 제작 방식도 각기 다르다.
안나 벨라 가이거(Anna Bella Geiger)의 'Sobre Nácar'(2003)는 조개껍데기와 금속을 결합한 입체 작품이다. 가로 12㎝, 세로 6㎝, 깊이 8㎝의 작은 크기다. 2003년 제작된 작품을 현재의 전시장에 놓으면서 조개껍데기와 금속이 지닌 서로 다른 표면과 물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알릭스 베르네(Alix Vernet)의 'Veil, 3B, East Broadway'(2021)는 거즈에 라텍스와 물감을 사용했다. 가로 60.96㎝, 세로 91.44㎝로 제작됐으며, 얇은 직물의 성질을 활용한 작업이다. 단단한 금속과 조개껍데기로 제작한 가이거의 조각과 달리 유연한 천과 표면 처리가 작품의 형태를 결정한다.
프란시스세 G. 핀손 삼페르(Francisce G. Pinzón Samper)의 'Manuport'(2026)는 나무에 부착한 리넨에 수채화로 제작했다. 종이 대신 직물을 바탕으로 사용했고, 나무가 형태를 지탱한다. 같은 평면 작업이라도 물감이 스며드는 재료와 표면의 성질에 따라 제작 방식이 달라진다.
작은 조개껍데기와 금속 조각, 거즈와 라텍스, 리넨과 수채화는 각각 다른 제작 기술을 요구한다. 작가들이 선택한 재료의 성질이 작품의 형태와 설치 조건에 직접 영향을 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재료의 차이가 전시공간에서 작품을 구별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흰색 타일 바닥에는 표면에 인쇄 이미지와 문자가 겹쳐진 둥근 입체물들이 놓여 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 구형 물체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정렬되지 않았다. 중앙에는 둥근 이미지가 부착된 흰색 구조물이 서 있고, 위쪽으로 가느다란 금속 선이 올라간다.
바닥의 정사각형 타일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지만 그 위의 입체물은 크기와 위치가 제각각이다. 물체를 일정한 선에 맞춰 배열하지 않아 바닥의 규칙적인 구조와 불규칙한 설치 방식이 구별된다.
구형 물체의 표면에는 여러 이미지와 문자가 조각처럼 겹쳐져 있다. 인쇄된 정보가 물체의 곡면을 따라 이어지고, 일부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평평한 종이에 인쇄된 이미지와 달리 입체물에서는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보이는 부분이 바뀐다.
작품을 정면에서만 감상하기보다 주변을 이동하며 살펴봐야 하는 설치다. 구형 물체의 둥근 표면과 바닥에 닿는 부분, 중앙 구조물의 가느다란 금속 선이 서로 다른 높이와 방향으로 놓였다.
작품이 전시장 바닥에 놓이면서 주변 공간도 구성에 영향을 준다. 흰 벽에 걸린 사진은 액자 안의 이미지와 벽면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바닥의 입체 작업에서는 타일의 선과 관람자가 이동하는 공간까지 함께 고려하게 된다.
전시의 제목에 포함된 도시와 몸의 관계도 작품을 바라보는 거리와 움직임에서 살펴볼 수 있다. 관람자는 걸음을 옮기면서 물체 사이의 간격을 확인하고, 다른 방향에서 곡면과 문자들을 본다. 작품의 위치가 관람자의 이동 경로와 맞물리는 구성이다.
조라 시허가 선정한 작품 가운데에는 금속과 종이처럼 서로 다른 재료를 결합한 작업도 있다.
조라 모니즈의 'Biggest Secret of Them All'은 알루미늄과 종이, 못, 접착제를 사용한 작품이다. 가로 27.94㎝, 세로 35.56㎝의 패널 위에 여러 재료를 결합했다.
누런 바탕에는 가로로 긴 띠들이 겹쳐 있고, 곳곳에 은색 금속 조각이 붙어 있다. 표면에는 작은 못과 둥근 금속성 자국이 흩어져 있으며, 아래쪽에는 색이 남은 인쇄 이미지의 일부가 드러난다.
매끄럽게 채색한 회화보다 서로 다른 재료를 덧붙이고 고정한 구조가 두드러진다. 일부 금속 조각에는 작은 돌출부와 주름이 남아 있고, 누런 바탕에는 마모된 듯한 흔적과 여러 겹의 층이 나타난다.
종이는 인쇄와 기록에 사용되는 재료이고, 알루미늄과 못은 물건을 제작하거나 결합하는 데 쓰인다. 모니즈는 성질이 다른 재료를 하나의 패널에 고정하면서 평면과 입체의 특징을 함께 활용했다.
작품의 아래쪽에는 원래 다른 용도로 제작됐던 인쇄물의 일부를 연상시키는 색과 문양이 남아 있다. 덧붙인 재료들이 아래의 흔적을 가리면서도 일부를 드러내는 구성이다.
도시에서 발견되는 광고와 안내문, 오래된 건물의 표면에도 서로 다른 재료와 흔적이 겹친다. 페인트와 종이, 금속, 접착제 등이 오랜 시간 쌓이면서 처음의 형태가 달라진다. 모니즈의 작품은 이러한 물질적 축적을 떠올리게 하는 조형을 갖췄다.
모니즈의 작업은 완성된 이미지뿐 아니라 재료가 붙어 있는 방식과 표면의 두께까지 관찰하게 한다. 종이와 알루미늄의 질감이 서로 다르고, 못과 접착제로 고정한 부분은 패널 위에 물리적인 높낮이를 만든다.
작품의 규모는 작지만 재료의 구성이 복잡하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대형 회화와 달리 작은 패널 안에서 서로 다른 물질의 관계를 살펴보게 하는 작업이다.
조라 시허는 모니즈의 작품과 함께 다른 형태의 평면 작업도 선정했다.
녹색 바탕 위에는 분홍색 선들이 여러 줄로 겹쳐 있다. 문자를 닮은 형태가 가로로 이어지지만 선들이 중첩돼 내용을 읽기는 어렵다. 아래쪽에는 노랑과 파랑, 붉은색 계열의 가로줄이 좁은 간격으로 놓였다.
녹색과 분홍색은 강한 대비를 이루고, 아래쪽의 여러 색은 작품의 하단에 시선을 모은다. 작은 작품을 넓은 흰색 매트 안에 배치하고 은색 액자로 둘러싸면서 색상이 더욱 선명하게 구분된다.
문자를 연상시키는 선들은 글을 읽는 행위와 그림을 보는 행위 사이에 놓여 있다. 글자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지만 일정한 문장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문자의 내용보다 선이 겹치는 방식과 색상의 관계가 두드러진다.
문자와 이미지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은 시허의 기존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2024년 'Futurephobia'에서는 사진에 글을 결합하거나 이미지를 훼손하고, 서로 다른 기록물을 함께 배치했다. 문자와 이미지가 반드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두 작업을 비교할 수 있다.
사진가 출신 기획자가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선정하면서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이미지의 기록성과 물질성이다. 사진은 어떤 대상을 촬영한 기록이고, 회화는 물감과 표면을 통해 형태를 만든다. 문자를 활용한 작품은 언어의 형식과 시각적 구성을 함께 사용한다.
세대가 다른 작품들을 한곳에 놓으면 제작 당시의 기술과 관습도 함께 나타난다. 세라 민터가 1982년 제작한 사진과 모니즈의 2023년 패널 작업, 2026년에 제작된 회화는 서로 다른 재료와 제작 환경에서 만들어졌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도 다르다. 사진은 촬영 대상과 시기, 기록된 장소가 중요하고, 금속과 종이를 결합한 작업에서는 재료의 출처와 제작 방식이 중요해진다. 작가의 작업 이력과 시대적 배경을 함께 고려해야 전시의 구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2003년의 조개껍데기 조각과 2021년의 거즈 작업, 2023년의 금속·종이 작업을 하나의 도시라는 주제로 연결한 선택은 전시 기획자의 판단에 속한다. 작품마다 독립적인 제작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통된 전시 제목 아래에서도 각각의 차이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전시 기획자는 어떤 작품을 선택하고 어디에 놓을지 결정한다. 서로 다른 매체와 세대의 작품을 묶는 과정에서 관람자가 작품을 읽는 순서와 주변 작업과의 관계도 달라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형 사진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한 벽과 작은 평면 작품을 넓게 떨어뜨려 놓은 공간, 바닥에 입체물을 설치한 공간이 구별된다. 같은 갤러리 안에서도 작품의 크기와 설치 방식에 따라 관람하는 거리가 달라진다.
참여 작가들의 출신 국가와 활동 지역도 다양하다. 팔레스타인 작가 라에다 사아데(Raeda Saadeh)와 브라질 출신 안나 벨라 가이거, 미국의 밍 스미스(Ming Smith), 멕시코의 미겔 칼데론(Miguel Calderón)과 실비아 그루너 등이 참여했다.
여러 국가의 작가를 한 전시에 모았을 때에는 개별 작품의 사회적·역사적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지역마다 도시가 형성된 과정과 정치적 현실, 이주 경험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라에다 사아데의 'Who Will Make Me Real?'(2005)은 컬러 사진 작업이고, 가이거의 'Sobre Nácar'는 조개껍데기와 금속으로 제작한 조각이다. 두 작품은 제작 지역과 매체, 다루는 대상이 서로 다르다. 공통의 전시 주제가 개별 작업을 설명하는 데 활용되더라도 작가의 독립적인 창작 이력과 구별해야 한다.
전시의 기획적 성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참여 작가의 유명세나 국적의 다양성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작업을 어떤 관계로 배치하고, 관람자가 작품의 제작 배경과 형태를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는지가 중요하다.
이번 공동전의 전시 글을 작성한 가비 세페다(Gaby Cepeda)는 미술비평가 핼 포스터(Hal Foster)의 '아카이브 충동(An Archival Impulse)'을 인용했다. 2004년 발표된 포스터의 글은 과거의 자료와 이미지를 수집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현대미술의 움직임을 다룬다.
세페다는 기록이 계속 쌓이고 서로 다른 자료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도시의 변화와 연결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이 이동하고 건물이 바뀌며 새로운 기록이 더해지는 도시의 성격을 전시의 구성과 연결한 것이다.
1982년 사진과 2026년 회화, 인쇄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과 바닥의 입체 작업은 서로 다른 기록과 경험을 담고 있다. 작품들은 각자의 제작 시기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현재의 전시공간에서 함께 소개된다.
한국에서도 사진과 영상, 회화와 설치를 함께 구성하고 전시 장소를 달리하는 방식이 이어져 왔다.
2025년 8월 26일부터 11월 23일까지 열린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낙원상가, 서울아트시네마, 서울청년예술공간을 활용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전시를 개최하고, 낙원상가에서는 사운드 작업을 소개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별도의 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전시와 상영, 공연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진행됐다.
멕시코시티의 공동전은 하나의 갤러리 안에 여러 세대와 매체의 작품을 모았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작품과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도시의 여러 장소를 활용했다. 전시의 규모와 주제는 다르지만 작품을 어디에 배치하고 어떤 방식으로 관람하게 할지 결정하는 기획의 역할을 비교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미술관과 상가, 영화관이라는 기존 공간의 용도를 활용했고, 멕시코시티에서는 갤러리 안의 벽과 바닥, 작은 전시실의 크기와 구조를 활용했다.
서로 다른 재료와 매체를 사용하는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전시 기획에서도 작품의 설치 조건과 관람자의 이동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진과 회화, 영상과 입체 작업은 같은 공간에 놓일 수 있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거리와 시간은 다르다.
조라 시허의 첫 기획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작품의 배치로 나타난다. 작게 인화한 사진을 여러 점 나란히 걸고, 넓은 벽에는 작은 작품을 떨어뜨려 배치했으며, 바닥에는 구형 입체물들을 놓았다. 금속과 종이, 거즈와 라텍스, 조개껍데기 같은 서로 다른 재료도 전시의 일부를 이룬다.
17명·팀의 작품은 1982년부터 2026년까지 44년에 걸쳐 제작됐다. 세대가 다른 작가의 작품이 같은 공간에 놓였다는 사실은 작품마다 다른 역사와 제작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든다.
시허는 오랫동안 가까운 사람들의 사진을 촬영하고 개인적인 기억을 편집해 온 작가다. 'Geography'에서는 여러 해 동안 촬영한 사진을 모았고, 'Futurephobia'에서는 사진과 문자, 수집품을 결합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선정해 하나의 전시로 구성했다.
마켓 갤러리와 서드 본의 공동전은 1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1982년의 사진과 2003년 조개껍데기 조각, 2021년 거즈 작업, 2023년 금속·종이 작품, 2026년 신작이 한 전시장에 놓였다. 작품의 제작 시기와 재료를 서로 다르게 유지하면서 사진가 조라 시허가 첫 큐레이션을 맡은 전시가 멕시코시티에서 진행되고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