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전통과 현대 패션 결합한 'From Earth to Sky'…열기구 3개·착장 10개로 꾸민 대형 무대, 아나톨리아 문화의 재해석과 디자인의 완성도
[KtN 임우경기자]튀르키예 카파도키아의 붉은 협곡에 초록색과 노란색, 분홍색 열기구 세 개가 떠올랐다. 거대한 열기구 아래로 모델들이 걸어 나왔다. 노란색 드레스의 긴 치맛자락이 흙길 위로 흩날렸고, 검은색 문양을 새긴 카프탄과 분홍색 의상들이 뒤를 이었다. 자연경관과 원색의 열기구가 어우러진 야외 패션쇼였지만 관객의 시선을 먼저 끌어당긴 것은 모델의 옷보다 열기구의 크기와 색상이었다.
이스탄불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패션 브랜드 레 벤자민스(Les Benjamins)가 창립 15주년을 맞아 카파도키아 귈뤼데레 계곡(Güllüdere Valley)에서 'From Earth to Sky' 컬렉션을 선보였다. 독일에서 태어난 튀르키예계 디자이너 뷔냐민 아이든(Bünyamin Aydın)은 아나톨리아의 자연과 전통 직물, 실크로드를 따라 형성된 문화적 교류, 1970년대 튀르키예 록 음악을 디자인에 반영했다. 발표된 착장은 모두 10개다. 패션쇼를 위해 별도로 제작한 열기구는 세 개였다.
애플(Apple)은 디자인 작업과 영상 제작에 사용된 자사 기기를 앞세워 행사에 참여했다. 아이든은 iPad Pro와 Apple Pencil Pro로 의상과 열기구 디자인을 구상했고, 프랑스 영화감독 닐스 카스티용(Neels Castillon)은 iPhone 18 Pro Max로 패션쇼를 촬영했다. 행사 영상은 애플의 글로벌 홍보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창립 15주년 패션쇼가 기술기업의 제품 성능을 알리는 콘텐츠로도 사용된 것이다.
카파도키아의 거대한 열기구는 영상의 규모를 키웠지만 옷의 형태와 재단, 전통문화의 표현 방식까지 선명하게 전달하지는 못했다. 발표된 의상 가운데 드레스와 카프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나톨리아의 문화적 배경을 활용했다. 그러나 자연에서 가져온 색채나 전통 의상의 외형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현대 패션의 독창성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노란색 드레스는 몸통을 비교적 좁게 감싸고 허리 아래에 여러 겹의 원단을 겹쳐 부피를 만들었다. 가슴부터 허리까지 주름이 이어지고, 치맛자락은 길이를 달리한 천이 불규칙하게 내려오는 형태다. 스커트 한쪽에는 높은 트임을 넣어 다리가 드러나도록 했다. 원단이 걸음에 따라 흔들리면서 치맛자락의 길이와 겹침이 달라 보인다. 짙은 색상의 신발과 뒤로 넘긴 머리카락은 의상의 밝은 색채를 강조하는 구성이다.
허리 아래에 부피를 집중시킨 재단은 상체와 하체의 비례에 차이를 만든다. 길게 내려오는 치맛자락은 몸의 세로선을 강조하면서도 여러 겹의 원단으로 곡선적인 형태를 더한다. 높은 트임은 원단이 한쪽으로 몰리는 것을 줄이고 걸을 때 다리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비교적 단순한 상체와 복잡한 치맛자락을 결합해 하체의 움직임에 시선을 모은 디자인이다.
그러나 주름을 여러 겹 겹치거나 스커트의 길이를 불규칙하게 처리하는 방식은 현대 이브닝웨어에서 널리 사용된다. 이번 드레스 역시 익숙한 재단과 장식 기법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카파도키아에서 관찰한 노란 튤립을 색채의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꽃의 형태가 의복의 구조에 구체적으로 반영된 부분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자연에서 가져온 색상과 원단의 움직임이 결합했을 뿐 아나톨리아의 전통복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요소도 많지 않다.
노란색 원단은 붉은 암석을 배경으로 강하게 드러난다. 갈색과 옅은 분홍색이 섞인 계곡에서 밝은 노란색은 뚜렷한 대비를 만들고, 자연광을 받은 주름에는 밝고 어두운 부분이 교차한다. 모델이 걷는 동안 긴 치맛자락이 움직이면서 색과 형태가 계속 달라진다. 카파도키아의 야외 환경은 이러한 효과를 강조하기에 적합했다.
반면 거친 흙길을 따라 걷는 모델에게 긴 치맛자락과 높은 트임은 활동상의 부담이 될 수 있다. 가벼운 원단은 바람에 흔들리고,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부분은 지면에 닿기 쉽다. 드레스의 움직임은 야외 런웨이에서 강한 시각적 효과를 냈지만 실제 착용에서는 원단의 길이와 안감, 트임의 위치, 움직일 때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패션쇼의 연출 효과와 의복 자체의 착용성에는 차이가 있다.
열기구가 차지하는 공간도 의상을 감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거대한 원색의 열기구와 협곡이 모델을 둘러싸면서 전체 구도에서 옷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졌다. 멀리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에서는 드레스의 색상이 먼저 드러나지만 원단의 조직이나 재단, 세부적인 마감은 구별하기 어렵다. 패션쇼의 규모가 커질수록 의상의 디자인을 보여주는 방식에도 더 세심한 구성이 필요해진다.
레 벤자민스는 2011년 아이든이 이스탄불에서 설립했다. 프린트 티셔츠에서 출발해 남성복과 여성복, 신발과 액세서리로 상품군을 넓혔으며, 튀르키예 카펫의 기하학적 문양과 전통적인 장식을 현대 스트리트웨어에 적용해 왔다. 유럽에서 성장한 아이든의 경험은 브랜드가 서구의 일상복과 아나톨리아의 장식문화를 결합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전통 카펫의 무늬를 티셔츠와 신발에 옮기는 방식은 브랜드의 초기 디자인에서도 나타났다. 익숙한 스트리트웨어의 형태에 지역적인 문양을 사용하면서 다른 브랜드와 구별되는 특징을 만들었다. 이후 해외 스포츠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소비자층을 넓혔다. 이번 15주년 컬렉션에서도 전통 문양과 현대적인 실루엣의 결합은 이어졌지만, 이전보다 긴 겉옷과 드레스처럼 조형적인 의상이 강조됐다.
노란색 카프탄은 드레스보다 튀르키예 전통 의복의 특징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어깨에서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넉넉한 겉옷에 검은색 기하학적 문양을 넣고, 앞섶을 열어 밝은 상의와 어두운 팬츠가 보이도록 했다. 소매는 넓고 옷자락은 길게 떨어진다. 여러 겹의 장신구와 긴 머리, 손에 든 나뭇가지가 더해져 1970년대 록 음악가의 무대의상을 연상시킨다.
카프탄은 오스만 제국을 비롯해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사용된 겉옷이다. 길이와 소매, 여밈 방식, 직물의 종류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으며, 의복의 형태와 장식에는 사회적 지위와 생활문화가 반영되기도 했다. 레 벤자민스는 긴 겉옷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안쪽에 현대적인 상의와 팬츠를 입혔다. 전통복에서 가져온 형태를 일상적인 남성복과 함께 사용한 구성이다.
검은색 문양은 밝은 노란 바탕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앞섶을 따라 이어지는 장식은 겉옷의 길이를 강조하고, 넓은 소매와 여유로운 몸통은 상체를 크게 감싼다. 안쪽의 밝은 상의는 노란색 겉옷과 색채의 차이를 만들고, 어두운 팬츠는 전체적인 부피를 아래쪽에서 정리한다. 목걸이와 머리 장식까지 더해지면서 상체에 장식이 집중됐다.
장식의 양은 적지 않다. 카프탄의 문양과 목걸이, 긴 머리와 손에 든 소품이 함께 강조되면서 옷의 재단보다 인물의 전체적인 모습에 시선이 쏠린다. 문양을 조금 덜어내거나 장신구의 크기를 조절했다면 겉옷의 길이와 형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현재의 구성은 전통적인 의복의 구조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보다 특정 인물의 인상을 재현하는 데 가까운 부분이 있다.
모델의 착장은 튀르키예 록 음악가 바르쉬 만초(Barış Manço)에게 바친 것이다. 만초는 튀르키예의 민속음악과 서구 록을 결합한 아나톨리아 록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긴 머리와 콧수염, 화려한 장신구와 겉옷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레 벤자민스는 만초의 외형적인 특징을 카프탄과 장신구, 나뭇가지를 활용해 표현했다.
만초가 활동하던 1970년대 튀르키예에서는 전통 음악과 서구 대중음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아나톨리아 록은 민속적인 선율과 현대적인 악기, 당대의 사회문화를 결합하며 독자적인 음악적 흐름을 형성했다. 만초의 복식은 이러한 문화적 교류가 무대에서 드러나는 방식 가운데 하나였다.
이번 카프탄에는 긴 겉옷과 장신구를 중심으로 만초의 스타일이 반영됐다. 음악가의 외형을 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지만 그 시대의 음악적 실험이 새로운 의복의 재단이나 소재로 발전한 흔적은 제한적이다. 튀르키예 전통복과 1970년대 록 음악의 연결은 흥미로운 소재인 만큼 의복의 구조에서도 한층 구체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노란 드레스와 카프탄은 같은 컬렉션에 속하지만 문화적 소재를 사용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드레스는 자연의 색채와 원단의 움직임을 강조했고, 카프탄은 전통복의 형태와 음악가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활용했다. 하나의 컬렉션에 아나톨리아의 자연과 복식, 대중음악을 함께 담았지만 의상별로 전통문화가 반영된 깊이와 표현 방식은 일정하지 않았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는 이러한 차이를 더욱 크게 드러냈다. 세 개의 대형 열기구는 초록색 에키놉스와 분홍색 꽃, 노란 튤립 등 지역의 식물에서 색채를 가져왔다. 디자인은 아이든과 제작팀이 구상했고, 현지 업체 파샤 벌룬스(Pasha Balloons)가 실제 비행에 필요한 기술을 맡았다. 열기구는 주변 암석과 대비되는 강렬한 색상으로 행사 전체의 인상을 결정했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는 이미 관광산업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계곡과 암석 지형 위로 떠오르는 열기구는 지역을 알리는 사진과 영상에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레 벤자민스는 관광지의 상징을 패션쇼의 중심 요소로 가져오고, 세 개의 열기구를 별도로 제작해 행사 규모를 확대했다. 자연경관과 지역 관광산업의 인지도를 패션 브랜드의 창립 기념행사에 활용한 방식이다.
거대한 열기구를 설치하려면 디자인뿐 아니라 비행과 안전을 담당하는 전문업체의 기술이 필요하다. 현장에는 의상을 제작하는 인력과 모델, 촬영진, 열기구 운영진이 함께 참여했다. 카파도키아의 야외 환경에서는 날씨와 바람, 자연광의 변화도 행사 운영에 영향을 준다. 패션쇼는 의상을 발표하는 무대이면서 여러 분야의 제작 기술이 투입된 대규모 행사로 진행됐다.
애플은 열기구 디자인부터 런웨이 촬영까지 자사 제품이 사용된 과정을 홍보에 활용했다. 아이든은 카파도키아에서 촬영한 자료를 바탕으로 iPad Pro에서 디자인을 구상했고, 열기구 형태도 디지털 도구로 수정했다. 닐스 카스티용은 iPhone 18 Pro Max를 장착한 촬영 장비와 드론을 사용해 행사 영상을 제작했다. 애플의 홍보에서는 아이패드의 디자인 기능과 아이폰의 전문 영상 촬영 성능이 상세하게 소개됐다.
영상 제작에 사용된 기기는 분명하지만 행사 전체는 패션 디자이너와 의상 제작자, 열기구 기술자, 촬영 감독과 현장 인력이 함께 완성했다. 드레스의 재단과 카프탄의 문양, 열기구의 제작과 비행은 각각 다른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애플의 기기가 제작 과정에 활용됐다는 사실만으로 현장의 창작과 기술을 설명할 수는 없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와 암석 지형은 아이폰의 촬영 성능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소재이기도 했다. 큰 구조물과 움직이는 모델, 빠르게 달라지는 자연광, 선명한 원색을 하나의 영상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론으로 촬영한 넓은 풍경에서는 열기구의 크기와 계곡의 지형이 두드러진다. 반면 의상의 문양과 원단, 정교한 재단을 살피는 데에는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필요하다.
애플은 레 벤자민스의 창립 기념행사를 자사 기기의 활용 범위를 보여주는 콘텐츠로 만들었다. 레 벤자민스도 애플의 글로벌 홍보 채널을 통해 더 넓은 소비자에게 소개되는 기회를 얻었다. 이러한 협업은 브랜드를 알리는 데 효과적일 수 있지만 패션쇼에서 가장 중요한 의상의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질 위험도 따른다.
아이든이 내세운 아나톨리아의 문화적 배경은 이번 컬렉션에서 색상과 문양, 전통복의 형태, 음악가의 이미지를 통해 나타났다. 다만 두 착장에서 두드러지는 디자인은 겹쳐진 원단을 이용한 이브닝드레스와 장식적인 카프탄이다. 현대 패션에서 이미 사용해 온 형태를 지역의 색채와 문화적 상징으로 다시 구성한 접근이다. 카파도키아의 풍경과 거대한 열기구가 더해지면서 의상의 시각적 효과는 커졌지만 재단과 제작 방식에서의 새로운 변화는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레 벤자민스는 15주년 컬렉션에 10개 착장을 준비했고, 행사를 위해 맞춤 제작한 열기구 세 개를 띄웠다. 노란 드레스와 카프탄에는 각각 자연의 색채와 아나톨리아의 복식, 1970년대 대중음악이 반영됐다. 패션쇼 영상은 애플의 글로벌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카파도키아의 거대한 열기구는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의상에 담긴 문양과 재단의 변화는 그만큼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와 별개로 레 벤자민스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아나톨리아의 문화적 소재는 앞으로도 실제 옷의 형태와 제작 기술 안에서 평가받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