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초기 구상에서 1997년 영화까지…미공개 이미지보드 90점으로 살펴보는 창작의 변화와 생명·문명에 관한 깊어진 성찰
[KtN 윤상길주필]1997년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Hayao Miyazaki)의 '원령공주(もののけ姫·Princess Mononoke)'는 숲을 지키는 신들과 철을 생산하는 인간들의 충돌을 그린 작품이다. 늑대에게 길러진 소녀 산(San)은 인간을 증오하고, 철 생산 공동체를 운영하는 에보시(Eboshi)는 숲을 개척해 사람들의 삶을 지탱한다. 저주를 풀기 위해 고향을 떠난 청년 아시타카(Ashitaka)는 두 세계를 오가며 서로 다른 생존의 이유를 마주한다.
자연을 지키는 일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인간의 생존을 위한 노동은 다시 자연을 훼손한다. 미야자키는 어느 한쪽의 승리를 결말로 삼지 않았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에게 의존하면서도 충돌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 속에 담았다. '원령공주'가 개봉 이후에도 꾸준히 논의되는 배경에는 선과 악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생존의 문제가 놓여 있다.
미야자키가 영화 제작 이전에 그린 이미지보드 258점이 새롭게 정리된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책임 편집하고 일본 이와나미쇼텐(Iwanami Shoten)이 오는 12월 3일 펴내는 '미야자키 하야오 이미지보드 전집 7 원령공주'다. 184쪽 분량으로, 처음 공개되는 그림 90점과 영화에 사용되지 않은 초기 설정, 1993년 출간된 그림책 '원령공주'의 본문이 포함된다.
1980년부터 이어진 초기 구상은 1997년 완성된 영화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인간 소녀와 기이한 존재의 관계를 중심으로 했던 이야기가 숲의 신들과 철 생산 공동체의 대립으로 바뀌었고, 인물의 성격과 외형도 새롭게 구성됐다. 미야자키가 남긴 그림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달라지는 과정이 담겨 있다.
미야자키의 이미지보드는 영화 제작에 필요한 단순한 참고 그림과 성격이 다르다. 인물의 성격과 움직임, 공간의 분위기, 이야기의 방향을 그림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영화의 서사가 완성되기 전부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구상하고, 등장인물들이 살아갈 세계의 크기와 질감을 정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옅은 녹색과 청색, 갈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에서는 동물의 몸과 인물의 움직임이 비교적 자유로운 선으로 표현된다. 완성된 애니메이션처럼 세부 형태를 정교하게 다듬기보다 인물의 자세와 공간의 관계에 집중한 구성이 눈에 띈다. 숲과 동물, 인간이 차지하는 면적과 위치에 따라 이야기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거대한 동물의 몸을 중심에 놓으면 인간은 상대적으로 작은 존재가 된다. 울창한 숲이 넓게 펼쳐질수록 인물의 움직임은 자연의 일부로 들어간다. 동물과 인간을 같은 크기와 질서로 다루지 않는 구도는 '원령공주'에서 반복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예고한다.
미야자키는 자연을 인간의 활동을 위한 배경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숲에는 인간의 생활과 무관하게 이어지는 생명의 질서가 있고, 동물과 나무, 물과 흙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해 살아가는 일과 자연 자체의 생명이 지속되는 일은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1997년 영화의 숲에는 거대한 나무와 이끼, 습기 어린 바위와 흐르는 물이 촘촘하게 놓여 있다. 나무 사이를 이동하는 코다마와 숲의 신들은 자연을 인간의 이해와 통제를 넘어선 세계로 확장한다. 녹색의 농도와 빛의 변화, 동물의 움직임은 숲이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감각을 형성한다.
반면 인간의 생활공간인 타타라장은 철과 불, 나무와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숯을 생산하기 위해 나무를 베고, 광석을 제련하기 위해 불을 지핀다. 철을 만드는 일은 사람들에게 생계와 생활의 기반을 제공하지만 숲을 훼손하는 행위와도 연결된다.
타타라장을 운영하는 에보시는 이러한 모순을 한 인물 안에 지닌다. 에보시는 숲을 개척하고 신들에게 총을 겨누는 동시에 사회에서 배제된 여성과 병든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생활공간을 제공한다. 에보시의 공동체에서는 기존 사회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던 사람들이 노동과 생산에 참여한다.
숲의 신들을 공격하는 에보시의 행동에는 인간의 욕망과 폭력이 드러나지만,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선택에는 사람들의 생존이 걸려 있다. 숲을 보존하려는 요구와 철 생산을 계속해야 하는 현실이 충돌하는 가운데 어느 한쪽의 입장만으로 갈등을 정리하기 어려워진다.
산은 인간의 세계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늑대 신 모로(Moro)에게 길러진 산은 숲을 가족과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모습을 지녔지만 인간 사회에 속하기를 거부하며, 숲을 훼손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맞선다.
붉은 가면과 짐승의 가죽, 무기를 든 산의 모습은 어린 소녀의 외형과 전투적인 태도를 결합한다. 산이 숲을 지키는 방식에는 자연에 대한 애착과 인간을 향한 분노가 함께 놓여 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해야 하는 갈등은 산의 행동을 더욱 격렬하게 만든다.
아시타카는 산과 에보시 사이에서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저주받은 멧돼지 신을 쓰러뜨린 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고향을 떠난 아시타카는 숲의 신들이 겪는 고통과 타타라장 사람들의 생활을 함께 목격한다.
아시타카가 마주한 두 세계에는 각자의 생존 조건이 있다. 숲의 신들은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을 잃고 있으며, 타타라장의 사람들은 철을 생산해야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어느 한쪽을 제거한다고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다.
미야자키는 아시타카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는 일과 상대의 행동을 모두 받아들이는 일을 구분한다. 아시타카는 산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인간을 향한 공격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에보시가 보호하는 사람들의 삶을 인정하면서도 숲을 파괴하는 행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입장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아시타카의 모습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윤리적 갈등이 담겨 있다. 어떤 선택도 다른 생명과 완전히 무관할 수 없으며, 한쪽의 생존이 다른 쪽의 희생을 요구하는 상황도 존재한다.
'원령공주'의 자연관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사고와 자연을 무조건 순수한 존재로 여기는 태도 모두에서 거리를 둔다.
영화 속 숲의 신들은 아름답고 신성하지만 언제나 온순하지는 않다. 숲을 지키는 존재들이 인간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인간의 행위로 상처받은 신은 분노와 원한에 사로잡힌다. 생명은 아름다움과 위험, 생성과 소멸을 함께 지닌다.
시시가미(シシ神)는 이러한 자연관을 응축한 존재다. 사슴을 닮은 몸과 인간의 얼굴을 가진 시시가미는 숲을 거닐며 생명을 주기도 하고 거두기도 한다. 밤에는 거대한 데이다라봇치로 변한다. 인간의 도덕적 판단과 관계없이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관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시시가미의 힘은 인간에게 축복만을 주지 않는다. 생명을 회복시키는 능력과 생명을 거두는 능력이 같은 존재 안에 놓여 있다. 생명의 순환은 인간의 필요와 소망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며, 죽음 또한 자연의 질서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미야자키가 그린 숲에는 생명의 풍요로움과 죽음의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자연은 인간이 돌아가야 할 이상적인 낙원이라기보다 인간을 포함한 여러 생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에 가깝다.
1984년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Nausicaä of the Valley of the Wind)'에서도 미야자키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뤘다. 오염된 세계와 독성의 숲, 거대한 곤충을 통해 인간 문명이 초래한 파괴와 생명의 회복 능력을 그렸다.
'원령공주'에서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갈등이 한층 복잡해졌다. 숲을 파괴하는 인간들의 공동체에도 보호받아야 할 삶이 존재하고, 자연을 지키는 신들의 분노 역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로 다른 존재의 생존을 한쪽의 도덕적 우위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세계가 형성됐다.
스즈키 토시오(Toshio Suzuki) 프로듀서는 이번 화집에 실린 인터뷰에서 미야자키가 '나우시카' 이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다루려 했다고 설명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인식이 '원령공주'의 제작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이다.
미야자키가 1980년 구상했던 초기 '원령공주'는 1997년 영화와 다른 이야기였다. 당시 제작한 90점의 이미지보드는 인간 소녀와 기이한 존재의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일본의 민간 설화와 서구의 '미녀와 야수'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로, 오늘날 알려진 산과 아시타카, 타타라장의 갈등은 등장하지 않았다.
1993년에는 초기 이미지보드에 미야자키가 직접 글을 붙인 그림책 '원령공주'가 도쿠마쇼텐에서 출간됐다. 인간 소녀와 이질적인 존재 사이에서 형성되는 감정을 다룬 작품으로, 초기 설정의 인물과 이야기 구조를 간직하고 있다.
미야자키는 한때 초기 구상을 영화로 제작할 계획이었지만 기존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On Your Mark'를 제작한 시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이야기와 표현 방식을 모색했고, 인간과 숲의 신들이 충돌하는 1997년의 '원령공주'가 완성됐다.
초기 구상에서 인간과 기이한 존재의 관계는 두 인물 사이의 감정에 집중돼 있었다. 완성된 영화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공동체의 노동과 생존, 숲의 파괴와 신들의 분노로 확장됐다. 개인의 사랑과 이해를 중심으로 했던 이야기가 인간 사회 전체의 선택을 다루는 서사로 바뀐 것이다.
'원령공주'의 변화는 미야자키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깊어졌음을 드러낸다. 인간과 다른 존재가 서로를 이해하는 일에서 나아가, 서로 다른 생존 조건을 지닌 세계가 함께 지속될 수 있는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변화는 인물 표현에도 나타났다. 완성된 영화에서 산은 날카로운 눈매와 굳은 표정, 빠르고 거친 움직임을 지닌 인물이다. 자연을 지키려는 의지는 인간을 향한 분노와 결합하며, 산의 얼굴에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 감정이 남아 있다.
이번 화집에 수록된 미사용 이미지 가운데에는 미소를 짓는 듯한 산의 모습도 포함돼 있다. 완성된 영화에서 강한 인상으로 남은 인물이 제작 과정에서는 다른 표정과 감정으로도 구상됐음을 알 수 있다.
미야자키의 이미지보드는 완성된 인물의 외형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표정과 몸짓, 주변 인물과의 거리, 자연과 맺는 관계를 달리하며 캐릭터의 성격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담겨 있다. 어떤 표정을 선택하고 어떤 행동을 남길지에 따라 인물의 정체성과 이야기의 방향도 달라진다.
산이 미소를 짓는 순간과 인간을 향해 무기를 겨누는 순간은 서로 다른 인물의 모습을 만든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산의 성격과 행동은 영화가 다루는 갈등의 강도와도 연결된다. 미야자키가 여러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남겼는지 살펴보는 일은 작품의 완성된 형태를 이해하는 또 다른 접근이다.
'원령공주'라는 제목에도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의 경계가 담겨 있다.
일본어 원제 'もののけ姫'의 '모노노케(もののけ·物の怪)'는 일본의 오래된 문학과 민간신앙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살아 있는 사람의 원념, 요괴 등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초자연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어 제목의 '원령(怨靈)'은 원한을 품은 영혼이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모노노케'는 원령을 포함해 더 넓은 범위의 영적 존재를 뜻한다.
산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늑대 신에게 길러졌으며 숲의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고, 인간 사회를 적대한다. '모노노케의 공주'라는 이름에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인간의 세계를 떠나 숲에 속하게 된 소녀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제목 속 '공주' 역시 왕실의 혈통보다 숲의 세계에 속한 소녀라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산은 인간과 자연의 경계에 놓인 존재이며, 자신의 출생과 성장 환경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단순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산은 인간을 증오하지만 아시타카와 관계를 맺는다. 아시타카 역시 인간 사회에 속하지만 숲의 신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한다. 두 인물의 만남은 인간과 자연이 분리된 두 세계로 존재하기보다 서로 깊이 연결돼 있음을 드러낸다.
미야자키는 자연과 인간의 갈등을 화해의 결말로 단순하게 정리하지 않았다. 시시가미의 죽음 이후 숲에는 다시 생명이 자라지만 이전의 세계가 그대로 복원되지는 않는다. 산은 숲에 남고, 아시타카는 타타라장에서 살아가기로 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같은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산은 숲을 떠나지 않고 아시타카는 인간 사회의 생활을 이어간다. 서로 다른 세계에 남은 채 관계를 지속하려는 선택이다.
'원령공주'에서 공존은 모든 갈등이 사라진 이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각자의 삶을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존재를 완전히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관계에 가깝다.
자연을 이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인간과 인간의 활동으로 변화하는 자연 사이에는 끊임없는 긴장이 존재한다. 미야자키는 한쪽의 희생으로 완성되는 평화보다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인간의 현실을 그렸다.
인간의 선의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자연을 지키려는 의지 역시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에보시의 공동체와 산의 숲은 서로 다른 생존의 조건을 지니고 있고, 아시타카는 양쪽의 삶을 이해하려 애쓴다. 인간의 윤리적 선택이 언제나 명확한 정답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작품의 서사를 지탱한다.
1997년 '원령공주'는 인물과 자연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이전의 미야자키 작품과 다른 방향을 택했다. 신들의 상처와 죽음, 철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노동, 무기를 사용한 폭력과 공동체의 갈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됐다. 생명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죽음과 파괴를 분리하지 않은 구성이다.
숲에는 짙은 녹색과 습기 어린 바위, 거대한 나무와 흐르는 물이 놓이고, 타타라장에는 붉은 불빛과 연기, 철과 나무로 만든 구조물이 자리한다. 자연과 인간의 생활공간은 서로 다른 색채와 질감으로 표현되지만 두 세계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스즈키 토시오는 이번 화집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영화의 표현 방향을 일본의 극화(劇画·gekiga)와 연결해 설명한다. 극화는 전후 일본 만화에서 발전한 표현 방식으로, 진지한 서사와 현실적인 갈등, 인물의 심리와 신체적 긴장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원령공주'에는 환상적인 신과 정령이 등장하지만 인간이 겪는 폭력과 노동, 공동체의 생존은 구체적인 현실감으로 표현됐다. 숲의 신들이 지닌 초월적인 힘과 인간이 사용하는 철과 무기는 서로 다른 세계의 질서를 드러내며, 두 세계의 충돌은 인물의 삶을 바꾸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1997년 영화는 133분에 걸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전개한다. 울창한 숲과 철 생산 공동체, 신들의 움직임과 전투를 정교하게 구성한 작품으로, 미야자키는 인물의 표정뿐 아니라 환경의 색채와 공간의 밀도를 통해 이야기의 갈등을 표현했다.
이러한 시각적 구성의 출발점에는 수많은 이미지보드가 놓여 있다. 미야자키가 손으로 그린 인물과 숲, 동물의 형태는 제작진의 작업을 거쳐 완성된 애니메이션으로 발전했다. 초기 그림에서 탐색한 색채와 공간의 성격은 최종 영화의 세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됐다.
이번에 정리되는 초기 설정판의 이미지보드와 1993년 그림책 본문은 1997년 영화가 완성되기 전의 다른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인간 소녀와 기이한 존재의 관계에서 출발했던 구상이 자연의 신들과 인간 공동체의 충돌로 확대되는 과정이 담겼다.
스즈키 토시오의 인터뷰에는 타타라장의 초기 구상과 에보시의 인물 설정, 작품의 표현 방향이 포함된다. 미야자키가 이전 작품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사를 구성하려 했던 제작 과정도 다뤘다.
1980년의 '원령공주'는 인간과 이질적인 존재가 맺는 관계에 집중했고, 1997년 영화는 인간의 생존과 자연의 질서가 충돌하는 세계를 그렸다. 이야기의 규모가 커진 만큼 인물들의 선택도 복잡해졌다. 산과 에보시, 아시타카는 저마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갖고 있으며, 어느 인물도 다른 존재의 삶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
미야자키가 오랫동안 탐구한 생명과 문명의 관계는 '원령공주'에서 보다 현실적인 갈등으로 구체화됐다. 숲을 지키는 신들과 철을 생산하는 인간들 사이에는 상처와 원한이 남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에도 갈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산은 숲에 남고 아시타카는 인간의 공동체로 돌아간다. 시시가미가 사라진 숲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지만 파괴 이전의 세계가 복원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한 인물들은 상처가 남은 세계에서 다시 살아간다.
'원령공주'가 그린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완전한 화해보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가깝다. 생명을 지키려는 의지와 인간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 충돌하는 가운데 각자의 삶을 지속하려는 인물들의 태도가 남는다.
1980년 처음 구상된 이야기는 1993년 그림책을 거쳐 1997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발전했다. 오는 12월 3일 출간되는 화집에는 미공개 90점을 포함한 이미지보드 258점이 수록된다. 인간과 기이한 존재의 관계에서 출발해 자연과 문명의 충돌로 확장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구상이 손으로 그린 그림과 초기 원고, 제작 당시의 기록으로 정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