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이중언어적인 세대, 새로운 주류 소비자로 떠오르다
‘보이지 않던 다수’에서 ‘새로운 주류’로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동희기자] 앞으로 미국의 미래는 히스패닉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미국 히스패닉 미디어 시장과 트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현재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는 약 6,520만 명으로 전체의 19.5%를 차지한다. 2060년에는 그 비중이 26.9%, 즉 네 명 중 한 명이 히스패닉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미국 사회에서 ‘소수 집단’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들의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건 젊음이다. 히스패닉 평균 연령은 30세로, 백인(41.1세), 흑인(34세)보다 훨씬 낮다. 인구 구조상 미래 세대의 핵심 축을 차지하고 있으며, 노동력과 소비, 문화 전 영역에서 주도권을 쥘 잠재력이 크다. 이 거대한 인구 집단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단순한 민족적 특수성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을 재편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젊은 축’

히스패닉 인구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성장 속도가 빠르다. 매년 수십만 명의 신규 이민과 높은 출산율이 맞물려 2060년까지 1억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세대 구성에서 청소년과 청년 비중이 높아 학교, 대학, 노동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단순히 숫자의 증가로 끝나지 않는다. 젊은 인구는 새로운 소비 패턴을 만들어낸다. 히스패닉 Z세대와 밀레니얼은 부모 세대보다 영어 사용 비중이 높지만, 동시에 스페인어와 영어를 혼합한 ‘스팽글리시(Spanglish)’를 즐긴다. 언어 선택은 정체성과 직결되며, 이는 광고와 미디어 산업 전반에 파급된다. 세대별 언어 혼용 현상은 향후 미국 문화 자체가 이중언어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구매력 3조 달러, 경제를 흔드는 집단

인구의 크기는 곧 시장의 크기다. 히스패닉의 총 구매력은 약 3.2~3.6조 달러로, 이는 캐나다나 브라질의 국내총생산을 넘어서는 규모다. 특히 식음료, 자동차, 가전, 패션, 디지털 서비스 등 생활 전반에서 소비 성향이 높은 집단으로 꼽힌다.

주목할 점은 브랜드 충성도와 신뢰의 차이다. 조사에 따르면 히스패닉 소비자는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는 브랜드에 대해 높은 호감을 보인다. 예를 들어 스팽글리시로 제작된 광고의 클릭률은 영어 광고보다 54% 높고, 브랜드 신뢰도는 16% 증가했다. 언어와 정체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곧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에게도 중요한 신호다. 미국 내 히스패닉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은 사실상 세계 3위 경제권을 새로 개척하는 일과 다름없다.

스트리밍과 스포츠의 힘

히스패닉의 영향력은 미디어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Univision과 Telemundo 같은 전통 방송사는 오랜 기간 스페인어 콘텐츠를 공급하며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스트리밍 플랫폼이 판을 흔들고 있다.

Televisa와 Univision이 합병해 출범시킨 ViX는 무료 이용자 5천만 명을 돌파하며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OTT 중 하나로 떠올랐다. 넷플릭스는 멕시코에만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NBC유니버설의 Peacock은 스페인어 전용 채널을 신설했다. 거대한 투자 경쟁은 모두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 ‘히스패닉을 잡는 자가 미래 미디어를 잡는다’는 것이다.

스포츠 역시 핵심 동력이다. 멕시코 리그(Liga MX), FIFA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 같은 이벤트는 미국 황금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언어 장벽을 넘어서는 힘을 보여줬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은 스페인어 중계에서만 수백만 명이 몰렸다. 스포츠는 히스패닉 공동체의 문화적 끈을 유지하는 동시에, 글로벌 브랜드에게는 최고의 광고 무대가 된다.

‘이중 문화’ 시대의 개막

히스패닉 인구의 증가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미국 사회 정체성의 다층화를 의미한다. 과거 영어 중심이었던 미국은 이제 스페인어와 스팽글리시를 포함한 이중언어 체제로 진입하고 있다. 히스패닉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미국 주류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진정성’이다. 단순히 스페인어로 번역한 광고나 콘텐츠는 더 이상 효과가 없다. 히스패닉 삶과 가치, 가족 중심 문화, 공동체 의식까지 반영해야 비로소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 대선에서 히스패닉 표심은 당락을 좌우하는 ‘스윙보터’로 부상했다.

미국의 미래, 히스패닉의 미래 그리고 한국 콘텐츠

히스패닉 인구는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6,500만 명이라는 압도적 규모, 3조 달러가 넘는 구매력, 평균 30세의 젊은 에너지.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해 미국의 사회, 경제, 문화 지형을 바꾸고 있다.

앞으로의 관건은 이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존중하고, 어떻게 함께 성장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글로벌 기업과 정치권, 미디어는 이 거대한 변화를 외면할 수 없다. 히스패닉을 이해하는 것은 곧 미국의 미래를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콘텐츠 산업에 주는 시사점도 크다. 드라마, 음악, 예능 등 한류 콘텐츠는 이미 미국 Z세대와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인지도가 높다. 그러나 히스패닉 시장을 겨냥한 전략은 아직 초기 단계다. 이중언어·다문화적 감수성을 반영한 현지화, 스페인어 자막과 더빙의 정교화, 히스패닉 배우와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특히 가족, 공동체, 정체성을 중시하는 가치관은 한국 콘텐츠의 서사적 강점과도 맞닿아 있어,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저작권자 © KtN (K trendy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