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단계로, 서해는 협의로, 한반도는 공동 인식으로 묶였다

이재명 대통령, 한중 관계의 재가동. 사진=KTV 이매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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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박준식기자]이재명 대통령은 1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공식환영식과 정상회담, 정부 간 양해각서 서명식, 국빈만찬으로 이어지는 국빈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일정은 한중 관계를 새로 규정하기보다, 그동안 멈춰 있던 의제들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정리하는 성격이 강했다.

정상회담은 오후 4시 47분에 시작해 90분간 진행됐다. 예정된 시간을 넘겼다는 사실보다 주목할 부분은 회담에서 다뤄진 의제의 구성이다. 회담은 단일 성과를 도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화·해양·안보 등 서로 성격이 다른 현안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각 사안은 결론보다 방향과 처리 방식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정리됐다.

회담 직후에는 정부부처·기관 간 양해각서 14건과 중국 청대 석사자상 한 쌍 기증 증서에 대한 서명이 이어졌다. 체결 분야는 상무 협력 채널, 산업단지 협력, 디지털 기술, 환경·기후, 아동 권리와 복지, 식품 안전, 자연산 수산물 위생·검역, 지식재산 보호 등으로 구성됐다. 범위는 넓었지만, 개별 사안의 이행 일정이나 구체적 목표는 이날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서명은 세부 실행보다는 협력의 틀을 다시 세우는 데 방점이 찍혔다.

 

문화·콘텐츠 교류는 이번 회담에서 비교적 신중하게 다뤄진 의제다. 양국은 수용 가능한 분야부터 점진적·단계적으로 교류를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즉각적인 전면 확대나 규제 완화는 언급되지 않았다. 문화 교류를 정치적 상징으로 끌어올리기보다, 향후 협의가 가능한 실무 영역으로 내려놓은 판단으로 읽힌다. 어떤 분야가 먼저 논의 대상이 되는지는 후속 협의에 맡겨졌다.

서해 문제는 관리와 협의라는 표현으로 정리됐다. 양국 정상은 서해를 ‘평화롭고 공영하는 바다’로 만들어 가는 것이 한중 관계의 안정적·장기적 발전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서해 구조물 문제에 대해서는 건설적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고, 불법조업과 관련해서는 어민 계도와 단속 강화를 요청했다. 현안의 해결 시점이나 합의 문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갈등을 일괄 타결하기보다 협의 채널을 유지하는 쪽으로 정리된 셈이다.

한반도 평화·안정 문제도 회담 의제에 포함됐다. 한반도의 안정이 한중 양국의 공동 이익이라는 점을 재확인했고, 이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언급됐다. 구체적인 역할 분담이나 후속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정상회담 공식 기록에 한반도 의제가 포함됐다는 점에서, 한중 관계의 논의 범위가 경제·문화에만 한정되지는 않았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이날 일정에서 함께 다뤄진 석사자상 기증은 문화외교 항목으로 별도로 정리됐다. 기증 대상은 1930년대 일본에서 구입된 중국 유물로, 오랜 기간 기증 논의가 이어져 온 사안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중국 국가문물국 간 기증 협약이 체결됐고, 전달 시점은 계절을 고려해 봄으로 예정됐다. 석사자상은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액운을 막고 재부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의 이동 경위와 상징성이 외교 일정 안에 포함됐다.

이번 정상회담을 종합하면, 한중 관계는 확대나 전환보다는 정리에 가까운 국면에 놓여 있다. 문화 교류는 단계로 묶였고, 서해 문제는 관리와 협의의 틀로 정리됐으며, 한반도 문제는 공동 인식 수준에서 유지됐다. 양해각서 14건은 협력 의지를 확인하는 장치로 기능했지만, 실질적 변화는 각 부처의 후속 조치와 이행 과정에서 판단될 사안으로 남았다.

이번 회담은 강한 표현이나 대규모 합의로 평가하기 어렵다. 대신 그동안 멈춰 있던 의제들을 다시 분류하고, 처리 방식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관계를 단숨에 끌어올리기보다, 다시 작동 가능한 상태로 되돌리는 선택에 가깝다. 한중 관계는 새 국면에 들어섰다기보다는, 관리 가능한 선 위로 다시 올라왔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