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 협력 대화 신설과 산업단지 MOU가 의미하는 것
[KtN 박준식기자]베이징 정상회담 직후 서명된 문서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오래 남을 가능성이 높은 조치는 상무 협력 대화 채널의 신설이다. 한중 양국은 장관급 정례 협의체를 다시 가동하기로 했다. 교역과 투자, 공급망을 다루는 상시 창구를 복구하는 결정이다. 단일 사업이나 개별 성과보다, 관계를 운용하는 장치를 먼저 세웠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정상외교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준다.
한중 간 장관급 정례 협의체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한중 투자협력위원회는 2002년 출범해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지만, 2011년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양국은 다자 회의나 특정 계기를 통해 수시로 장관급 접촉을 이어왔으나, 교역·투자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상설 구조는 유지되지 못했다. 협의는 있었지만, 누적되지 않았고, 결정은 있었지만 이어지지 않았다.
이번에 신설된 상무 협력 대화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장치다. 양국은 매년 최소 한 차례 상호 방문을 통해 회의를 열기로 했고, 기존의 투자협력위원회와 차관급 산업단지 협의회를 통합·고도화하는 구조를 선택했다. 흩어져 있던 채널을 하나로 묶고, 의제를 축적할 수 있는 틀을 만들겠다는 판단이다. 협의체의 존재 자체가 곧 신뢰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협의가 끊기지 않게 하는 최소 조건은 된다.
이 채널이 다루게 될 범위는 넓다. 교역과 투자, 산업 협력, 공급망 안정, 제3국 협력까지 포함된다. 이는 특정 분야의 진전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영역까지 공식 테이블에 올려두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관계가 순항할 때보다, 마찰이 생길 때 더 필요한 장치라는 점에서 이번 선택은 현실적이다.
상무 협력 대화와 함께 체결된 또 하나의 문서는 산업단지 협력 강화 양해각서다. 이 문서는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시 지정된 산업단지 협력 구상을 다시 꺼내 들었다. 한국은 새만금을, 중국은 장쑤성 옌청, 산둥성 옌타이, 광둥성 후이저우를 각각 협력 거점으로 지정했지만, 실제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특히 새만금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산업단지 협력 MOU가 다시 체결됐고, 중국 상무부가 투자조사단을 이끌고 새만금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 결정만으로 투자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협력 구상이 문서 속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 방문이라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점은 분명한 변화다. 산업단지를 단순한 부지 제공이 아니라, 부품·소재, 녹색 발전, 바이오·제약 등 구체 분야 중심의 협력 공간으로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가 읽힌다.
산업단지 협력의 또 다른 특징은 제3국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양국 기업이 각자의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 연구나 공동 진출을 통해 외부 시장을 겨냥하는 구조다. 이는 한중 협력이 양자 관계에만 묶이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특정 시장 변화나 정치적 변수에 협력이 좌우되지 않게 하는 방식이다.
이번 조치들을 종합하면, 산업·통상 분야에서 한중 관계는 확대보다 복구에 가까운 국면에 놓여 있다. 새로운 협력 모델을 대대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작동하지 않았던 장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데 집중했다. 상무 협력 대화는 의제를 쌓기 위한 통로이고, 산업단지 협력은 현장을 다시 연결하기 위한 시도다. 성과는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점은 이번 합의들이 과도한 기대를 전제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투자 규모나 고용 효과, 수출 증대 같은 숫자는 제시되지 않았다. 대신 회의를 열고, 방문을 하고, 협의를 지속하는 구조가 먼저 만들어졌다. 한중 산업 협력이 다시 움직이기 위한 최소 조건을 마련하는 단계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정상외교의 성과는 종종 한 줄 문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산업과 통상은 문장보다 구조에 좌우된다. 이번에 확인된 것은 구조의 복구다. 15년간 멈춰 있던 협의체가 다시 열렸고, 방치됐던 산업단지 구상이 다시 검토 테이블로 올라왔다. 빠른 성과를 약속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한중 산업 협력은 다시 출발선에 섰다. 출발선에 서는 데 필요한 조건은 이제 갖춰졌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관련기사
- [글로벌 리포트|한중 관계③] 벽란도는 비유였고, 메시지는 구조였다
- [글로벌 리포트|한중 관계②] 석사자상, 반환이 아니라 정리였다
- [글로벌 리포트|한중 관계①] 90분 정상회담, 한중 관계는 ‘확대’보다 ‘정리’를 택했다
- [글로벌 리포트|한중 관계⑤] 기술은 경쟁하지만, 규칙은 협의로 남겼다
- [글로벌 리포트|한중 관계⑥] 대기업 외교의 바깥에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놓였다
- [글로벌 리포트|한중 관계⑦] 냉장 병어의 길이 열렸다, 외교는 식탁에서 확인된다
- [글로벌 리포트|한중 관계⑧] 사인 9개, 선언보다 거래에 가까웠다
- [글로벌 리포트|한중 관계⑨] 복원은 끝났고, 관리는 시작됐다
- 이 대통령·시진핑 회담 이후 중국 서열 2·3위 잇따라 면담...한중 스타트업 협력 행보 본격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