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간 MOU가 드러낸 한중 협력의 실제 방향

이재명 대통령, 한중 관계의 재가동. 사진=KTV 이매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재명 대통령, 한중 관계의 재가동. 사진=KTV 이매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한중 비즈니스 포럼과 연계해 체결된 기업 간 양해각서 9건은 정상외교의 부속 성과로 처리되기 쉽다. 숫자만 놓고 보면 과장도 가능하고, 반대로 의미를 축소하기도 쉽다. 그러나 이번 MOU들은 외교 이벤트를 장식하기 위한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 내용과 방식 모두에서 ‘시장에 들어가는 협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에 체결된 MOU는 소비재, 콘텐츠, 공급망이라는 세 갈래로 나뉜다. 공통점은 단순 수출이나 일회성 거래를 전제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통, 생산, 개발, 서비스 운영까지 연결하는 구조가 다수 포함됐다. 협력의 출발점이 시장 진입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의 역할 분담이라는 점에서 이전 방식과 결이 다르다.

소비재 분야에서 체결된 협약들은 중국 내수 시장의 구조 변화를 정확히 겨냥한다. 한국 기업은 상품과 브랜드를 제공하고, 중국 기업은 플랫폼과 유통망을 맡는 방식이다. 대형 유통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수출 협력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다만 이번 협력은 ‘입점’이 아니라 ‘공동 기획’에 가깝다. 어떤 상품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시장에 배치할 것인지까지 논의 대상에 포함됐다. 한국 상품을 중국 플랫폼에 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중국의 유통 구조 안에 맞춰 조정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식품 분야 협력도 같은 맥락이다. 어묵, 딸기, 가공식품 등 품목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생산·유통·마케팅을 함께 설계하는 구조다. 중국 현지에서 매장 운영과 유통을 병행하거나, 스마트팜 방식으로 생산 단계부터 협력하는 모델이 포함됐다. 이는 단순한 수출 확대보다 리스크를 나누는 방식에 가깝다. 중국 시장의 규제와 소비 트렌드를 함께 감당하겠다는 선택이다.

뷰티 분야 협력 역시 선언적 표현을 피했다. 공동 생산과 OEM 방식이 언급됐고, 글로벌 공급을 염두에 둔 구조가 제시됐다. 중국 시장만을 겨냥하지 않고, 생산과 기술을 결합해 제3국 시장으로 확장하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는 중국을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중간 거점으로 설정하는 접근이다. 한중 협력이 양자 관계에만 묶이지 않도록 설계된 부분이다.

 

콘텐츠 분야에서 체결된 협약들은 한중 협력의 민감성을 잘 보여준다. 즉석 포토부스, 숏폼 콘텐츠, 예능과 드라마, 게임 서비스 협력까지 범위가 넓다. 여기서도 공통점은 단순 판권 거래를 넘어서 공동 제작과 공동 개발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중국 시장의 규제 환경을 고려할 때, 현지 파트너와의 협업 없이는 지속적인 사업이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 반영됐다.

콘텐츠 협력은 특히 조심스러운 영역이다. 정치·사회적 변수에 영향을 받기 쉽고, 규제의 변화도 잦다. 이번 협약들은 이런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구조를 택했다. 단독 진출이 아니라 파트너십을 통해 위험을 분산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한중 콘텐츠 협력이 과거의 대규모 개방 국면으로 되돌아간다는 신호라기보다, 제한된 조건 안에서 가능한 협력 방식을 찾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공급망 분야 협력은 상대적으로 기술적인 영역에 집중됐다. 자율주행을 위한 고성능 컴퓨팅 플랫폼 공동 개발, 친환경 소재 공장 구축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협약은 단기 수익보다 기술 축적과 장기 협력을 염두에 둔다. 특히 제3국 시장 진출을 함께 모색하는 구조는, 한중 협력이 특정 시장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이번 기업 MOU들을 종합하면, 한중 협력의 무게중심이 분명해진다. 과거처럼 대규모 투자나 상징적 프로젝트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비교적 작은 단위의 협력을 여러 갈래로 쌓는 방식이다. 위험을 분산시키고, 성과를 누적시키는 접근이다. 이는 정치 환경의 변동성을 고려한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물론 MOU는 계약이 아니다. 이행 여부와 성과는 시장 상황과 기업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번 협약들 역시 상당수가 실무 협의와 추가 계약을 전제로 한다. 숫자만 놓고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다만 협력의 방향과 방식은 분명히 드러난다. 선언보다 거래에 가깝고, 구호보다 구조에 가깝다.

이번 기업 협력은 정상외교의 연장선이면서도, 동시에 외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정부가 길을 열고, 기업이 그 안에서 계산을 시작하는 구조다. 외교가 모든 위험을 제거해주지는 않는다. 대신 협력이 가능한 범위를 설정하고, 시장에 판단을 넘긴다. 이번 9건의 MOU는 그 선을 넘지 않았다.

한중 관계의 재가동을 기업의 시선에서 보면, 이번 협약들은 조심스럽지만 명확하다. 큰 약속은 없고, 대신 작은 연결이 있다. 그 연결이 쌓일 수 있을지는 시간이 답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번 협력은 보여주기용이 아니다. 이미 거래를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