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기증을 외교 성과로 부풀리지 않은 이유
[KtN 박준식기자]1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한중 정상외교 일정 가운데, 석사자상 한 쌍의 기증은 가장 조용하게 처리된 사안이었다. 일정의 중심은 정상회담과 양해각서 서명이었고, 문화재 기증은 그 곁에 배치됐다. 그러나 이 사안은 단순한 부속 의제가 아니었다. 문화재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외교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번에 기증이 결정된 석사자상은 1930년대 일본에서 구입된 중국 유물이다.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시기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고, 이후 오랜 시간 국내에 보관돼 왔다. 수집의 주체는 간송 전형필이었다. 간송은 중국 유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고,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남겼다. 이 뜻에 따라 기증 논의는 2016년부터 공식적으로 추진됐지만, 외교·행정적 사정으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왔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립중앙박물관과 중국 국가문물국 간 기증 협약이 체결되면서 절차가 다시 이어졌다. 전달 시점은 겨울을 피해 4~5월로 조정됐다. 중국에서 석사자상은 전통적으로 액운을 막고 재부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알려져 있으며, 주택의 정문이나 분묘 앞에 배치돼 왔다. 상징성은 분명하지만, 이번 기증은 그 상징을 앞세워 성과로 포장하지 않았다.
정상외교의 장면에서 문화재가 등장할 때 흔히 기대되는 연출은 없다. 공동 성명에 강조 문구를 넣거나, 별도의 문화외교 이벤트로 키우는 방식도 선택되지 않았다. 석사자상은 양해각서 서명식의 말미에 조용히 포함됐고, 이후 별도의 브리핑으로 정리됐다. 문화재를 외교 성과의 상징으로 부풀리지 않겠다는 판단이 읽힌다.
이 사안의 성격은 ‘반환’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전쟁이나 약탈의 결과로 반출된 문화재를 돌려보내는 경우와는 맥락이 다르다.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경위는 분명하지만, 소유권 분쟁이나 강제 반환의 성격은 아니다. 이번 조치는 소유의 문제를 정리하는 과정에 가깝다. 한국이 보관해 온 중국 유물을 다시 중국으로 보내는 선택을, 외교적 거래나 상징 자산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문화재 기증은 외교에서 늘 양면성을 갖는다. 상대국의 호응을 기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정치적 계산으로 읽힐 위험도 따른다. 이번 경우에는 계산의 흔적을 최소화했다. 기증의 맥락은 간송의 뜻과 그간의 행정적 논의라는 내부의 시간표에 맞춰 설명됐고, 정상회담의 성과 목록으로 끌어올려지지 않았다. 중국 측 역시 석사자상이 일본에서 가져온 것임을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서 대화를 이어갔을 뿐, 과도한 의미 부여는 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석사자상 기증은 한중 관계의 성격을 드러내는 사례다. 관계를 상징으로 끌어올리기보다, 관리의 대상으로 다루는 접근이다. 문화재를 외교적 카드로 쓰지 않고, 오래된 문제를 정리하는 행정 절차로 처리했다. 문화외교의 언어를 최소화하고, 문화재의 이동 경로와 역사적 맥락을 그대로 두는 선택이다.
이번 기증이 한중 관계에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문화재 한 점이 교류 구조를 바꾸거나 갈등을 해소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다루려는지에 대한 태도는 분명히 드러난다. 상징을 앞세우지 않고, 문제를 과장하지 않으며, 오래된 사안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는 점이다.
한중 관계에서 문화재는 늘 민감한 의제가 될 수 있다. 역사와 기억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석사자상 기증은 그 민감함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을 택했다. 문화재를 외교 이벤트로 소비하지 않고, 문화 행정의 연속선에서 처리했다. 이는 문화외교의 성과라기보다, 문화외교를 성과로 만들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결국 이번 사안은 관계의 진전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기보다, 관계를 다루는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 한중 정상외교의 큰 흐름 속에서 석사자상은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과장도, 생략도 없이. 관계는 그렇게 관리된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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