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 협력 MOU가 가리키는 한중 협력의 하부 구조
[KtN 박준식기자]이번 국빈 방문에서 중소벤처 분야 협력은 가장 조용하게 처리됐지만, 한중 관계의 방향을 가늠하는 데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정상회담과 대기업 중심의 비즈니스 포럼이 주목을 받는 동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협력은 별도의 층위에서 정리됐다. 한중 협력이 대기업 간 거래에만 머물 수 없다는 인식이 공식 문서에 반영된 결과다.
중소벤처 분야 협력 양해각서는 중국 공업정보화부와의 장관급 합의로 체결됐다. 과거에도 양국 간 중소기업 정책 협력은 존재했지만, 일정 기간 교류가 중단되며 제도적 연속성이 약해졌다. 이번 합의는 그 공백을 메우는 성격이 강하다. 협력의 범위는 정책 정보와 경험 공유, 인적 교류에 더해 스타트업 육성과 신기술 활용 지원까지 확장됐다. 단순 교류를 넘어 생태계 단위의 협력을 염두에 둔 설계다.
이 협력의 배경에는 한중 경제 구조의 변화가 있다. 대기업 중심의 공급망 협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혁신과 성장의 상당 부분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서 나온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대기업 단독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 한중 협력 역시 이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다. 이번 합의는 그동안 외교 일정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던 중소벤처 영역을 공식 의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스타트업 육성 협력이 명시적으로 포함됐다는 점이다. 이는 중소기업 정책 협력이 단순 보호나 지원의 영역을 넘어, 혁신 경쟁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타트업은 국경을 넘나드는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이뤄지는 분야다. 이 영역에서 협력의 틀을 만들겠다는 것은, 갈등 가능성도 함께 관리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이번 합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추진 중인 스타트업 협력 구상과도 연결된다. 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협력 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양국이 참여하는 구조를 마련하려는 시도다. 이는 한중 협력을 양자 관계에만 묶지 않고, 다자 틀 속에 배치하려는 선택으로 읽힌다. 협력의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특정 관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효과도 있다.
중소벤처 협력의 또 다른 특징은 과도한 기대를 배제했다는 점이다. 대규모 투자 약속이나 공동 펀드 조성 같은 선언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정책 대화와 교류를 지속하는 틀을 먼저 마련했다. 이는 단기간 성과보다 안정적인 협력 기반을 중시한 결과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한 만큼, 제도적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중소벤처 협력은 구조상 성과가 눈에 띄게 드러나기 어렵다. 개별 기업의 성공 여부는 시장과 기술에 좌우된다. 정부 간 합의가 곧바로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번 양해각서 역시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문다. 실제 효과는 후속 프로그램과 예산, 현장의 참여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번 합의는 한중 협력의 지형을 넓힌다. 대기업과 국가 단위의 협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을 공식 외교의 범위 안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한중 관계가 단일 축이 아니라 여러 층위로 구성돼 있음을 인정하는 접근이다. 상층에서는 정상외교와 대기업 협력이, 하층에서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협력이 각각 작동하는 구조다.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확인되는 한 가지 흐름은 명확하다. 한중 협력은 더 이상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산업에만 기대지 않는다. 중소벤처 분야 협력은 그 변화의 징후다. 관계를 넓히되 과장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되 성급히 결론을 내리지 않는 방식이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외교의 중심에 서지는 않았지만, 한중 협력의 바닥을 이루는 요소로 조용히 자리 잡았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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