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서사와 안성기·이미숙·김수철의 결합…로드무비와 멜로드라마로 되살린 한국영화의 흥행력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1984년 ‘고래사냥’이 서울 개봉관에서 42만6000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전국 동시 개봉과 전산 집계가 정착하기 전이어서 당시 흥행 성적은 서울 개봉관 관객 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고래사냥’은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병태와 떠돌이 민우, 말을 잃은 춘자가 서울을 떠나 동해의 섬으로 향한다. 김수철이 병태, 안성기가 민우, 이미숙이 춘자를 맡았다. 세 사람은 돈도 교통수단도 없이 길을 나서고,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춘자의 고향에 닿는다.

도시에서 밀려난 세 사람을 앞세운 로드무비는 1980년대 청춘이 품었던 답답함과 해방감을 함께 담았다. 서울과 산맥, 시골 장터와 바닷길을 통과하는 동안 인물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보다 서로를 지키는 일을 선택한다. 가난과 폭력은 사라지지 않지만 유머와 음악이 인물들의 여정을 무겁게 가라앉지 않도록 받쳐준다.

1984년 ‘고래사냥’ 스틸. 왼쪽부터 안성기, 김수철, 이미숙. 사진=배창호 감독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84년 ‘고래사냥’ 스틸. 왼쪽부터 안성기, 김수철, 이미숙. 사진=배창호 감독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꼬방동네 사람들’ 이후에도 남았던 흥행의 벽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은 평단과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흥행 장르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도시 빈민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다룬 데뷔작이어서 제작사들은 배창호 감독의 상업적 가능성을 더 지켜보려 했다.

배 감독은 데뷔 직후 들어온 영화 제안 가운데 지나치게 흥행 공식에 치우친 작품 두 편을 거절했다고 회고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지만, 감독이 된 뒤에는 어떤 영화든 받아들이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두 번째 연출작으로 선택한 영화는 ‘철인들’이었다. 현대중공업이 제작한 대형 철구조물을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현장까지 운송하는 과정을 소재로 삼았다. 한진흥업이 제작하고 현대중공업이 지원했다.

‘철인들’은 당시 영화산업의 제도와도 맞물려 있었다. 대종상 작품상은 일반 작품을 대상으로 한 문예 부문을 비롯해 반공 부문과 계몽 부문으로 나뉘어 있었다. 배 감독은 인터뷰에서 계몽 부문 수상이 제작사의 외화 수입 쿼터와 연결되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배창호 감독은 산업 현장을 선전하는 데 머물지 않고 노동과 모험을 갖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배창호 감독은 산업 현장을 선전하는 데 머물지 않고 노동과 모험을 갖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제작사는 흥행 부담을 크게 두지 않았다. 배 감독은 산업 현장을 선전하는 데 머물지 않고 노동과 모험을 갖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계몽영화라고 해서 구호만 외치는 영화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의미를 담으면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봤습니다.”

‘철인들’은 제21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계몽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안성기는 남우주연상, 이억만은 조명상, 김희수는 편집상을 수상했다. 데뷔작의 현실주의에 이어 산업 현장을 다룬 두 번째 영화에서도 작품의 완성도를 인정받으면서 배창호라는 이름이 제작사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적도의 꽃’ 이후 여러 제작사가 작품을 제안하면서 배창호 감독은 데뷔 2년 만에 충무로의 주요 감독으로 자리를 넓혔다./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적도의 꽃’ 이후 여러 제작사가 작품을 제안하면서 배창호 감독은 데뷔 2년 만에 충무로의 주요 감독으로 자리를 넓혔다./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최인호와 만난 도시의 욕망

1983년 ‘적도의 꽃’은 배창호 감독의 영화가 본격적으로 대중과 만난 작품이었다. 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안성기와 장미희, 신일룡이 출연했다.

영화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남자가 한 여성을 관찰하고 뒤쫓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배 감독은 작품 속 남자의 행동을 “당시에는 없던 말이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스토커에 가까운 집착”이라고 설명했다.

‘꼬방동네 사람들’이 도시의 가난을 다뤘다면 ‘적도의 꽃’은 도시 중산층의 욕망과 관음성을 파고들었다. 급속한 산업화로 소비 공간이 늘고 도시인의 생활이 달라지던 시기, 배 감독의 카메라도 판자촌에서 아파트와 자동차, 유흥 공간으로 이동했다.

최인호의 대중적인 서사와 배창호의 속도감 있는 연출, 안성기와 장미희의 결합은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반응을 얻었다. ‘적도의 꽃’ 이후 여러 제작사가 작품을 제안하면서 배 감독은 데뷔 2년 만에 충무로의 주요 감독으로 자리를 넓혔다.

최인호와의 협업은 ‘고래사냥’으로 이어졌다. 배 감독은 최인호가 월간지에 연재하던 ‘고래사냥’을 읽으며 병태와 민우, 춘자에게서 영화적인 가능성을 발견했다. 억눌린 청춘의 감정을 길 위에서 풀어낼 수 있고, 무거운 현실을 유머와 음악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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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은 영화음악을 완성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김수철의 록과 ‘각설이타령’

‘고래사냥’의 흥행에서 음악은 배경에 머물지 않았다. 주연을 맡은 김수철이 영화음악도 담당했다. 1983년 솔로 음반을 내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김수철의 목소리와 기타는 병태의 젊음과 영화의 속도를 함께 만들었다.

배 감독은 영화음악을 완성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디지털 장비가 없던 시절에는 연주자들을 녹음실로 불러 한정된 시간 안에 음악을 완성해야 했다. 제작비 때문에 녹음 일정을 다시 잡기도 어려웠다.

“제 영화에는 음악이 많이 나오지 않더라도 당시 기준으로는 음악에 굉장히 신경을 썼습니다. 악사들을 직접 불러 녹음실을 한두 타임 잡고 서너 시간 안에 끝내야 했어요.”

배창호 감독은 당시 녹음 현장에서 악기 구성과 선율을 확인하며 수정 의견을 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배창호 감독은 당시 녹음 현장에서 악기 구성과 선율을 확인하며 수정 의견을 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감독은 녹음 현장에서 악기 구성과 선율을 확인하며 수정 의견을 냈다. 바이올린이나 드럼이 인물의 감정을 앞서간다고 판단하면 연주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음악가와 의견이 부딪히는 일도 적지 않았다.

김수철은 병태와 민우가 동대문 시장 일대를 배회하는 대목에 ‘각설이타령’을 록으로 편곡해 넣었다.

“김수철 씨가 ‘각설이타령’을 록으로 만들었어요. 정말 새로웠습니다. 나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전통적인 가락과 록 사운드의 결합은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영화의 성격과 맞아떨어졌다. 가수가 주연을 맡고 직접 음악까지 담당한 ‘고래사냥’은 배우의 인기나 주제가 한 곡에 의존하지 않았다. 인물과 음악, 이동하는 공간을 하나의 리듬으로 묶었다.

1980년대 한국영화에는 해외영화 수입권을 얻기 위해 짧은 기간에 제작된 작품도 적지 않았다. 배 감독은 “일주일 만에 찍은 영화도 있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제작 편수를 채우기 위한 영화가 이어지면서 한국영화는 관객의 신뢰를 얻기 어려웠다.

‘고래사냥’은 문학 원작과 스타 배우, 대중음악, 로드무비를 결합하면서도 도시 주변부 인물에 대한 관심을 유지했다. 흥행성과 작품성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보던 충무로의 관행을 관객 수로 넘어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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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은 1984년 ‘고래사냥’에 이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연출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같은 해 내놓은 두 개의 영화

배창호 감독은 1984년 ‘고래사냥’에 이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연출했다. 박완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유지인과 이미숙, 안성기가 출연했다.

한국전쟁 피난길에서 언니 수지에게 버림받은 동생 수인은 전쟁고아로 성장한다. 상류층에 진입한 수지는 죄책감을 안고 동생을 찾지만, 수인을 발견한 뒤에도 다시 외면한다. 전투를 재현하기보다 살아남은 자매의 질투와 죄의식, 이산의 상처에 집중한 가족 멜로드라마였다.

‘고래사냥’이 길 위의 웃음과 음악으로 청춘의 해방감을 전했다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한 가족 안에 남은 전쟁의 시간을 따라갔다. 이미숙은 수인 역으로 대종상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 해에 공개된 두 작품의 장르와 정서는 뚜렷하게 달랐다. 배 감독은 코미디와 음악을 활용한 로드무비뿐 아니라 문학 원작을 바탕으로 한 정통 멜로드라마에서도 관객을 끌어들였다.

1985년 3월 1일 ‘깊고 푸른 밤’이 명보극장에서 개봉했다. 최인호의 원작과 각본, 배창호의 연출, 안성기와 장미희의 출연으로 완성된 영화는 미국 현지 로케이션과 동시녹음을 내세웠다. /사진=알라딘,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미국 로케이션으로 옮겨간 ‘깊고 푸른 밤’

1985년 3월 1일 ‘깊고 푸른 밤’이 명보극장에서 개봉했다. 최인호의 원작과 각본, 배창호의 연출, 안성기와 장미희의 출연으로 완성된 영화는 미국 현지 로케이션과 동시녹음을 내세웠다.

미국에 불법체류 중인 백호빈은 영주권을 얻어 한국에 있는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미국 시민권자인 제인과 위장 결혼한다. 계약으로 시작한 관계는 제인이 호빈을 사랑하면서 무너진다. 성공을 좇는 호빈의 욕망과 미국 사회에서 밀려난 제인의 외로움이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정에서 충돌한다.

미국은 성공을 보장하는 풍요의 땅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 도심과 광대한 서부 사막은 아메리칸드림을 좇는 인물들의 고립과 불안을 담는 공간이 됐다. 배 감독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한국인이 품었던 미국에 대한 환상을 영화로 다루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1985년 ‘깊고 푸른 밤’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 촬영 현장. 사진=배창호 감독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85년 ‘깊고 푸른 밤’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 촬영 현장. 사진=배창호 감독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깊고 푸른 밤’은 서울 개봉관에서 49만5000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1985년 한국영화 흥행 1위이자 당시 ‘겨울여자’에 이은 한국영화 역대 두 번째 기록이었다. 후속 상영관까지 합친 60만명 기록도 알려졌지만, 당시 ‘한국영화연감’이 인정한 공식 집계는 서울 개봉관 49만5000여 명이다.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한 지 3년 만에 배창호 감독은 사회극과 산업영화, 도시 멜로드라마, 로드무비, 전쟁 이후의 가족사, 해외 로케이션 영화까지 연출 영역을 넓혔다. 최인호·박완서의 문학과 안성기·장미희·이미숙·김수철의 대중성을 각 작품의 성격에 맞게 결합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021년 ‘고래사냥’을 블루레이로 발간했고, 2025년에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4K로 복원했다. 단관 극장의 흥행작으로 출발한 배창호의 1980년대 영화들이 디지털 복원과 재상영을 거쳐 한국영화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