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정석헌기자]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며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헌법기관의 작동을 강제로 멈추려 시도했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리며 이 사태를 ‘헌정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한 내란’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시민이 경험한 이 헌법파괴의 국면에서 보다 중대한 문제는, 검찰이 권력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그 실행의 공범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2025년 7월 14일 공개한 「윤석열정부 3년 검찰⁺보고서 종합판」에서 12‧3 내란 사태를 중심 주제로 다루었다. 유승익 교수는 ‘내란 사태 종합평가’에서 윤석열정부의 행위가 단순한 권한 남용을 넘어, 헌법기관 전체의 존립 근거를 흔드는 체계적 폭거였다고 규정했다. 유승익 교수는 특히 이 내란 시도의 배경에 검찰정치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며, ‘검찰국가화의 정점이자 종말’로 12‧3 사태를 평가했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통해 국회를 무력화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통제하려 한 점을 명확히 지적했다. 이에 따라 헌정질서의 근간인 삼권분립은 사실상 붕괴 위기에 놓였으며, 시민사회의 권리 역시 일시적 정지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검찰은 이 모든 위헌적 시도에 대해 침묵하거나 무기력하게 대응했고, 심지어 수사를 방해하거나 가담하는 행위까지 보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윤석열정부 내란 사태 당시, 대통령경호처는 계엄령 선포 직전 대통령 체포 영장을 반려하며 공권력의 집행을 막았다. 경찰은 경호처 수뇌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자 했지만, 검찰은 영장 청구를 반복적으로 기각했다. 검찰이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의 신병 확보를 지연시켰고, 내란 사태의 물리적 진압을 방해한 셈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보고서에서 “검찰은 윤석열의 방패였을 뿐 아니라, 내란의 동조자였으며 헌법의 적이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12‧3 내란 이후 특별수사본부가 구성되었고, 수사팀은 대통령을 포함한 핵심 관련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나, 검찰은 기소 여부를 놓고 명백한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기각했으며, 이에 대한 즉시항고조차 검찰은 포기했다. 보고서는 이 대목에서 “내란 수괴에게 증거 인멸의 시간과 정치적 반격의 기회를 열어준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형식적 수사 개시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기소의지와 사법적 결단이 전무했다는 분석이다.
유승익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번 결정이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일탈로 모든 것을 축소시켰다고 비판한다. 내란 행위는 집단적 범죄였으며, 대통령실 비서실, 법무부, 검찰, 경호처 등 정권의 전반이 유기적으로 가담했다. 그러나 재판은 대통령 개인에게만 집중되었고, 권력기구 전반에 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단죄는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윤석열정부 시기 검찰은 내란 수사의 주체라기보다는 방관자, 혹은 책임 회피의 장본인이었다. 특히 검찰은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에 거리를 두고자 하였고, 그 결과는 수사의 지연과 왜곡으로 이어졌다. 수사 주체로 나서야 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윤석열정부의 조직적 방해로 장기간 수장 공백 상태에 놓여 있었고, 공수처 검사들의 임명도 지연되어 실질적 대응력을 상실했다.
참여연대는 내란 수사에서 검찰의 역할을 ‘피고발자 보호’로 규정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경호처, 비서실 구성원에 대한 수사 자료 대부분이 비공개 처리되었고, 공소장조차 형식적으로만 작성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중단시켰지만, 사법부와 수사기관은 이를 뒷받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보고서는 12‧3 사태의 진정한 종식은 단순한 파면 결정이 아니라, 헌정질서를 재건하고 권력기관의 구조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검찰이 가진 수사-기소권의 독점 구조는 내란에 대한 실효적 대응을 가로막는 주된 장벽이었다. 윤석열정부의 사례는 검찰권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헌법파괴에 동조할 수 있는 위험한 구조임을 입증한 사건이다.
유승익 교수는 보고서 말미에서 “12‧3 사태는 검찰정치가 군사정치로 위장해 재등장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군부 독재가 총칼로 헌법을 정지시켰다면, 윤석열정부는 검찰이라는 정제된 제도적 장치를 이용해 ‘법치의 외피를 쓴 내란’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내란 사태는 과거사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제도 개편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2025년 현재, 헌정은 복원되었지만 제도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검찰은 수사의 주체인가, 권력의 수족인가? 12‧3 내란 사태는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을 시민에게 넘겼다. 이제 시민은 헌법을 되찾기 위해, 검찰권을 다시 정의하고 제도화해야 할 책무를 떠안았다. 내란의 종식은 단죄와 동시에 제도 개혁으로 완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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