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이 시장의 엔진이 된 시대, 영화의 다양성은 데이터에 종속되고 있다

'어쩔수가없다' 시사회에는 박찬욱 감독과 주연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촬영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어쩔수가없다' 시사회에는 박찬욱 감독과 주연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촬영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지금 극장은 팬덤의 무대다. 개봉 전부터 형성된 팬층이 예매율을 결정하고, 예매율이 곧 상영 비중을 좌우한다. 영화의 품질보다 팬덤의 규모가 먼저 계산되고, 팬층의 반응이 전체 시장의 흐름을 만든다. 관객의 선택은 자발적인 감상이라기보다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유도되는 행동에 가깝다. 알고리즘은 관객의 취향을 분석해 비슷한 콘텐츠를 반복 추천하고, 반복된 선택은 새로운 흥행을 만든다. 영화는 관객의 취향에 맞춰지는 동시에, 관객의 취향을 길들이는 구조 속에 놓였다.

팬덤은 더 이상 주변 현상이 아니다. 팬층은 콘텐츠의 소비자이자 유통자이자 마케터다. 예고편이 공개되면 팬들은 즉시 장면을 분석하고 해석하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해석을 확장한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여론은 언론 보도보다 빠르고, 배급사 마케팅보다 강력하다. 흥행은 개봉 전에 이미 절반이 결정된다. 개봉 후 첫 주말에는 팬층이 좌석을 채우고, 두 번째 주차부터 일반 관객이 따라간다. 흥행 곡선은 팬덤의 활동량과 거의 비례한다.

이 구조의 핵심은 알고리즘이다. 관객이 클릭한 영상, 남긴 댓글, 검색한 키워드가 모두 추천 시스템에 반영되고, 그 데이터는 다음 콘텐츠의 노출을 결정한다. 영화는 더 이상 ‘보여지는 예술’이 아니라 ‘추천되는 상품’이 됐다. 관객은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이 정해준 선택지 안에서 움직인다. 그 결과, 취향의 다양성은 줄고, 반복되는 이미지와 감정이 시장을 점령한다.

OTT 플랫폼이 이런 현상을 가속시켰다. 이용자의 시청 패턴이 즉시 분석되고, 플랫폼은 가장 효율적인 노출 순서를 설계한다. 관객의 클릭률이 낮은 콘텐츠는 노출되지 않고, 노출되지 않은 콘텐츠는 흥행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알고리즘은 흥행의 심판이자 제작의 지침서가 됐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데이터 분석팀이 관객층을 세분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장르와 캐릭터가 결정된다. 감독의 의도보다 통계의 판단이 앞서며, 창작의 방향은 점점 데이터의 명령에 종속된다.

팬덤이 중심이 된 시장은 강력한 구매력과 동시에 폐쇄성을 지닌다. 팬층은 자신이 지지하는 작품에 집중하고, 경쟁작에 대한 비판을 조직적으로 퍼뜨리기도 한다. 리뷰 사이트와 커뮤니티는 감상의 장이라기보다 여론 전쟁터로 변했고, 평점 테러와 진영 갈등이 반복된다. 이런 현상은 관객층을 분열시키고, 영화의 공공성을 약화시킨다. 영화가 사회적 담론의 매개가 아니라, 집단 정체성의 도구로 사용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팬덤은 산업의 중요한 동력이다. 팬층이 형성된 영화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고, 2차·3차 소비로 이어진다. 굿즈, 이벤트, 콘서트형 상영회 등 부가 시장이 성장하며 영화의 수명은 늘어난다. 문제는 이 구조가 ‘팬덤 중심의 흥행 모델’로 고착된다는 점이다. 팬층이 없는 작품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고, 새로움을 시도하는 영화일수록 투자와 배급에서 배제된다. 다양성 영화가 설 자리는 점점 줄고, 시장은 안전한 선택만을 반복한다.

25년 만에 ‘어쩔수가없다’로 다시 뭉친 영화계 전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이 24일 방송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약칭 ‘유 퀴즈’) 312회에 출연 한다.  사진=2025 09.24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5년 만에 ‘어쩔수가없다’로 다시 뭉친 영화계 전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이 24일 방송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약칭 ‘유 퀴즈’) 312회에 출연 한다.  사진=2025 09.24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데이터가 주도하는 산업은 정확하지만 냉정하다. 숫자는 흥행의 원인을 설명하지만, 감정의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통계가 보여주는 건 소비의 흔적이지, 관객이 느낀 감동이 아니다. 그러나 산업은 그 감정의 여백을 무시한 채 효율을 좇는다. 결국 영화는 흥행의 도구로 환원되고, 창작은 전략의 하위 개념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감독은 예술가이자 마케터가 된다. 연출 의도보다 홍보 구조를 먼저 고려해야 하고, 작품의 메시지는 SNS 반응에 맞춰 조정된다. 개봉 시기와 플랫폼 공개 일정까지 알고리즘에 맞춰 설계된다. 영화는 점점 더 체계화된 산업의 한 부품이 되어가지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진폭은 줄어들고 있다.

팬덤과 알고리즘이 결합한 시장은 효율적이지만, 예측 가능하다. 흥행은 보장되지만, 감동은 일정하다. 다양성은 축소되고, 영화의 세계는 균질화된다. 관객은 풍부한 선택지를 갖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포장으로 반복 소비하고 있다. 흥행의 공식이 완벽해질수록 영화의 세계는 단조로워진다.

영화의 생명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관객이 예상하지 못한 장면, 해석이 열려 있는 결말, 익숙한 구조를 비틀어놓은 이야기에서 영화는 다시 살아난다. 팬덤이 만든 구조 안에서도 새로움은 여전히 가능하다. 산업이 알고리즘을 완전히 통제하려 할 때, 그 안에서 진짜 예술은 오히려 틈을 찾아 살아남는다.

KtN 리포트

팬덤과 알고리즘이 결합한 영화 산업은 효율을 얻었지만, 다양성을 잃었다. 관객의 취향이 데이터로 환원되고, 창작의 자유가 통계의 범위 안에 갇히고 있다. 그러나 예술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감정에서 시작된다. 산업이 완벽한 효율을 추구할수록, 영화는 인간적인 결함과 우연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팬덤의 열기와 알고리즘의 질서가 공존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지금 영화 산업이 마주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