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를 피하려는 자본이 과거의 성공을 복제하며, 영화는 스스로의 세계를 잃어가고 있다
[KtN 신미희기자]세계 영화 시장은 지금 IP가 지배한다. 이미 성공한 원작과 캐릭터, 확보된 팬층을 중심으로 자본이 모이고, 제작의 출발점은 상상력이 아니라 통계가 된다. 영화는 이야기보다 브랜드로 다뤄지고, 창작은 예술의 발명이라기보다 산업의 전략으로 분류된다. 관객은 새로운 서사를 만나기보다, 익숙한 세계로 돌아가 안정을 얻는다. 2025년 현재 개봉작의 절반 이상이 리메이크, 시리즈, 웹툰이나 게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시나리오에서 출발한 작품은 전체의 20퍼센트 남짓이다. 영화는 과거의 영광을 재생산하며, 자본은 그 반복을 안정이라 부른다.
제작비 상승과 불확실한 흥행 환경 속에서 투자자는 검증된 IP를 찾는다. 한 번의 실패가 회사를 흔드는 구조에서 모험은 금지어가 되고, 확실한 브랜드만이 선택된다. 오리지널은 ‘리스크’로 분류되고, 시리즈는 ‘보험’으로 간주된다. 흥행을 예측할 수 없는 작품보다 이미 숫자로 증명된 세계관이 더 안전해 보인다. 자본은 창작자의 직감을 신뢰하지 않고, 관객의 반응을 데이터로 예측하려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영화는 감정의 예술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상품으로 변하고, 감독은 서사를 발명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자본의 질서를 관리하는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된다.
IP 중심의 산업 구조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을 넘어 문화의 균질화를 초래한다. 새로운 서사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던 경험이 줄어들고, 익숙한 설정과 캐릭터 안에서 관객은 안도감을 찾는다. 영화가 현실을 해석하는 도구에서 과거 감정의 재현 수단으로 바뀌면서 창작의 방향은 현재를 향하지 못한다. 관객이 새로운 감정보다 ‘그때의 감정’을 확인하려는 욕망을 보일수록 산업은 점점 더 반복의 늪에 빠진다. 결국 IP는 영화의 가능성을 지탱하는 동시에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아이러니한 도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