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페어런트, 감각의 경계를 넘어 웰니스로 확장한 북유럽 디자인
[KtN 임민정기자]스웨덴 스톡홀름의 디자인 브랜드 트랜스페어런트(Transparent)가 아로마 디퓨저 시장에 진입했다.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미니멀한 스피커로 알려진 브랜드가 음향 산업에서 후각 제품군으로 이동한 사례는 드물다. 이번 제품은 브랜드 정체성과 기술을 유지하면서, 향기와 건강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결합한 시도로 평가된다.
트랜스페어런트의 아로마 디퓨저는 초음파 진동 기술을 적용한 전자식 향 분사기다. 물과 향 오일을 진동으로 분해해 미세 입자로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불꽃이나 연소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연기나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배출이 없어 공기 오염 우려가 적다. 화염형 디퓨저보다 안전성이 높고, 향의 확산이 일정하다.
소재는 유리와 알루미늄이다. 내구성이 높고 세균 번식이 어려운 비다공성 재질로 제작되어 위생적이다. 구성은 단순하다. 원통형 유리 용기와 알루미늄 베이스가 결합된 형태로, 실험실 기구를 연상시키는 외관이다. 투명한 구조는 내부 작동 과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브랜드가 강조해온 ‘보이는 기술’ 철학을 이어간다.
제품의 디자인 언어는 기존 스피커 시리즈와 동일한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장식 요소가 없고, 기능이 형태를 결정한다. 트랜스페어런트가 유지해온 디자인 기조를 감각 기기로 확장한 셈이다. 다만 시각적 완성도에 비해 기능적 혁신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초음파 방식은 이미 대중화된 기술이며, 기술적 독창성보다 미학적 일관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페르 브릭스타드(Per Brickstad)는 “음악이 감정을 자극한다면 향은 기억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브랜드는 청각 중심의 경험을 후각 중심의 감각으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감성적 접근이 실제 제품의 실용성과 소비자 만족으로 이어질지는 시장 반응에 달려 있다.
트랜스페어런트는 북유럽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세 가지 향 오일을 함께 공개했다. 파인(Pine), 레드 시더(Red Cedar), 스프루스(Spruce)로 구성된 기본 세트는 브랜드가 제시하는 정서적 방향성을 보여준다. 다만 전용 오일이 필수는 아니며, 사용자는 다른 브랜드의 오일을 사용할 수 있다. 개방형 구조를 통해 커스터마이즈 가능한 사용 방식을 택했다.
판매 가격은 300달러다. 초음파 디퓨저 평균 가격대(50~150달러)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브랜드는 기능적 가전이 아닌 ‘프리미엄 오브제’로 포지셔닝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성비 논란이 불가피하다. 디자인 가치에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층을 겨냥한 전략으로 보인다.
트랜스페어런트의 제품 전략은 감각 산업 전반의 변화와 연관된다. 팬데믹 이후 웰니스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리포트에 따르면, 2035년까지 향기 디퓨저 시장은 연평균 7% 성장할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기능보다 감정적 경험, 즉 공기 질과 심리적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제품을 선호한다. 트랜스페어런트는 이러한 흐름을 산업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출시에는 브랜드 확장의 목적이 분명하다. 트랜스페어런트는 기존 스피커 시장에서 확보한 디자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웰니스 산업으로 수직 확장을 시도했다. 기존 고객층을 그대로 향기 제품군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확장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대량 생산보다는 한정된 소비자층을 겨냥한 구조여서, 시장 점유율 확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품의 유지보수 측면에서는 모듈식 설계가 장점이다. 부품 교체와 세척이 용이하며, 장기 사용에 적합한 구조를 갖췄다. 지속 가능한 사용성을 강조한 부분은 브랜드 철학과 일치한다. 알루미늄 소재의 재활용성, 분리형 구조, 화학물질 배출 억제 등은 친환경 소비 경향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웰니스 제품 시장의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무인양품(MUJI), 비트루비(Vitruvi), 발라리(Balari) 등 글로벌 브랜드가 기술적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트랜스페어런트가 차별성을 유지하려면 향의 품질과 사용자 경험에서 명확한 강점을 입증해야 한다. 미니멀한 외관만으로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소비자 관점에서 트랜스페어런트의 디퓨저는 인테리어 오브제와 기능성 가전의 중간 지점에 놓인다. 디자인적 완성도는 높지만, 편의 기능이 부족하다. 스마트폰 연동, 자동 타이머, 조명 기능 등 최근 프리미엄 디퓨저들이 제공하는 스마트 기능은 포함되지 않았다. 감각적 감성보다는 실용적 접근을 중시하는 소비자에게는 다소 아쉬운 지점이다.
브랜드의 전략은 분명하다. 기술의 과시보다 조용한 감각 경험을 제안한다. 공기를 정화하거나 향을 분사하는 기계가 아니라, 감정을 환기시키는 오브제로 정의된다. 그러나 감성 중심의 접근이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요로 이어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제품의 실질적 성능과 소비자 유지 비용, 향 오일 라인업 다양성 등이 향후 시장 성패를 결정할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트랜스페어런트의 행보는 디자인 산업이 감각과 건강을 융합하는 흐름을 상징한다. 기능 중심의 가전 시장이 정체된 이후, 브랜드들은 감정과 웰빙을 결합한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아로마 디퓨저 출시는 그 흐름 속에서 진행된 실험으로 볼 수 있다.
트랜스페어런트가 제시한 투명한 구조와 절제된 미학은 디자인적 완성도를 높이지만, 향 산업의 기술 경쟁 속에서 독자적 혁신으로 자리하기에는 제한이 있다. 향의 확산력, 구동 시간, 유지 편의성 등 실질적 지표가 소비자 만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트랜스페어런트의 아로마 디퓨저는 브랜드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산업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험적 제품이다. 디자인 철학의 연속성과 기술적 신뢰성은 강점으로 작용하지만, 시장 내 실질 경쟁력은 가격, 기능, 향 품질의 균형에 달려 있다.
북유럽 디자인이 제시하는 절제된 감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감성만으로 시장을 설득하기 어려운 시대에, 트랜스페어런트가 어떤 실질적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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