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어둠을 드러내는 새로운 조형 언어 KLOINM
[KtN 임우경기자]서울 동시대 미술에서 검정이 가장 영향력 있는 시각 언어로 자리하고 있다. 최근 한국 미술의 주된 서사는 화려한 색채와 가벼운 희망의 정서에서 벗어나 한층 더 깊은 감정 구조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한국 사회는 지난 10년 동안 감정적 압축이 극적으로 진행되었고 사회적 고립과 심리적 절망을 경험하는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현실은 미술의 주제와 접근 방식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감정의 어두운 지층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는 조형 언어가 증가했고 회복의 개념도 외부적 위로 중심에서 감정의 원인을 분석하고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검정은 이 전환의 중심에 서 있다. 검정은 단순히 빛을 흡수하는 색이 아니라 감정의 밀도를 담는 핵심 매개로 기능한다. 한국 미술 현장에서 검정 기반의 작품이 늘어나고 있으며 관객은 검정을 통해 자기 감정을 설명할 언어를 얻는다. 성장 서사가 강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감정의 손실을 숨기거나 지우는 것이 당연시된 시기가 있었지만 팬데믹 이후 감정의 균열을 드러내는 태도가 중요한 미학으로 부상했다. 한동안 한국 미술은 생동감과 낙관의 이미지로 세계와 소통해 왔다. 그러나 개인의 불안과 상처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서 감정의 어둠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실체를 증명하는 표식으로 해석된다. 검정이 가진 구조적 힘은 바로 이러한 감정의 변화를 반영한다.
검정이 한국 미술에서 중요한 재료로 올라선 배경에는 물질성과 감정 표현 방식의 변화가 자리한다. 디지털 이미지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화면에서 사라진 물리적 감각이 다시 작품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표면에 파여 있는 굴곡과 반복되는 표피적 흔적은 감정을 손으로 만지는 경험을 제공한다. 예술가들은 검정을 여러 차례 덧칠하는 방식으로 감정의 시간을 기록하고, 굳어지는 과정의 흔적을 작품에 남긴다. 이러한 접근은 모두가 감정적 과부하를 겪는 시대의 기록 방식으로 기능한다. 관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행위만으로도 감정의 피로를 체감하고 치유의 가능성을 예술 안에서 모색한다. 감정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방식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KLOINM의 Black Edition 프로젝트는 검정의 이러한 확장 가능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KLOINM은 예술가 임하나와 콘이 결성한 팀으로서 두 작가가 다른 방향에서 탐구한 감정의 형식을 검정을 중심으로 결합한다. 임하나는 개인의 기억과 상처에서 출발해 심리적 지형을 시각화한다. 원형 조형물 하나에 수십 차례 검정 레이어가 쌓인다. 감정이 겹겹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표면 아래 숨겨진 균열은 특정 경험에서 생긴 흔적이며 금속성 입자는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잔류물로 남는다. 임하나는 상처를 지우는 대신 표면에 고정하며 감정을 보호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정서와 강하게 연결된다. 감정을 약점으로 간주하고 노출을 꺼리는 문화 속에서 임하나는 감정의 노출 자체를 힘의 구조로 전환한다. 한편 콘은 음악적 리듬과 우주의 질서를 회화적 구조로 변환한다. 반복 패턴과 프랙털 구성 방식은 감정이 개인 내부에만 머물지 않고 더 큰 세계와 연결된다는 사고를 제시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한국적 감정과 보편적 감각이 조응하는 교차점으로서 세계 미술 시장에서 해석 가능한 언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KLOINM의 작업은 물질적 실험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두 작가의 작품에는 시간이 개입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예술이 단순한 심리의 표상에서 벗어나 물리적 체험을 통해 감정을 각인시키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검정의 중첩은 감정의 깊이를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한다. 단단하게 굳은 층은 상처가 회복 과정을 거치며 형성한 단단한 껍질이다. 반복되는 패턴은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저장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감정을 설명하기 어렵던 시대에서 감정을 측정 가능한 조형 언어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다.
사회적 맥락 변화도 검정 미학의 확산에 기여했다. 한국 사회는 정신건강 의학과 심리 연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고 공공 기관이 감정 케어를 정책 단위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예술은 감정 케어의 정서 기반 인프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여러 도시에서 관련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LIMHANA작가와 협업한 배경은 이런 공공적 흐름과 맞물린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나누는 경험이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한국 예술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다.
K-컬처 산업 전반에서 감정 중심 콘텐츠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K-팝은 서사 기반 음악을 통해 세계 시장을 확장했고 드라마는 감정의 디테일에 대한 높은 표현력을 통해 국제적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이제 미술 분야도 동일한 구조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KLOINM 프로젝트는 한국적 감정 구조를 시각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국제적 이해 가능성을 높였다. 감정의 보편성과 한국적 맥락의 특수성이 공존하는 지점에서 K-아트의 새로운 경쟁력이 발생한다. 검정은 이 경쟁력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는 조형 언어다.
전시 구성 전체는 감정의 여정을 안내하는 동선 전략을 택했다. 입구부터 중심부까지 이어지는 이동 경로는 감정의 가장 깊은 층위로 내려가게 하고 작품을 통과한 뒤 바깥으로 복귀시키는 순환 구조를 갖는다. 심리적 하강과 회복의 과정이 시각과 신체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관객은 작품과 마주하는 동안 자신의 감정 기억을 호출하게 되고 전시장에서 떠난 이후에도 그 기억이 계속 작동한다. 감정의 지속성과 예술 경험의 확장성을 실증하는 방식이다.
KtN은 KLOINM의 시도를 단순한 작품 세계가 아니라 한국 동시대 미술 흐름의 전환점으로 해석한다. 감정의 결핍을 감추는 태도에서 감정을 구성 요소로 적극 활용하는 태도로 이동하는 과정은 한국 미술이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단계라고 평가된다. 검정은 사회적 상처를 드러내면서도 집단적 회복력을 담는 색채로 자리하고 있다. 감정의 어둠을 드러내는 행위가 부정의 표식이 아니라 생존의 기록이 되는 순간이다.
한국 미술 시장은 이미지 소비 중심의 단계에서 감정의 구조를 제시하는 단계로 이행하며 국제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 KLOINM의 작업은 이러한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감정의 과학적 분석과 예술적 구조화를 결합한 방식은 향후 심리 연구, 도시 문화 정책, 의료 예술 융합 영역까지 확장될 가능성을 갖는다. 한국 미술은 감정의 어둠을 가장 정밀하게 서술하는 예술로 발전하고 있으며 검정이 이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주재료로 자리 잡고 있다.
K-아트의 변화는 더 이상 가설이 아니라 실증적 현상이다. 성장 중심의 경제 담론에서 벗어나 감정 중심의 문화 담론이 정착되는 과정은 한국 사회의 성숙을 의미한다. 관객이 검정 앞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해석하고 인지하는 순간 K-아트의 힘이 발휘된다. 검정은 한국인이 감정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핵심 언어이며 한국 미술의 다음 장을 열어가는 기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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