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층을 조형 구조로 전환하는 한국적 감정 아카이브의 탄생

임하나, 너에게 감출 수 없는것은 72.2x72.2 cm, 30S
 Acrylic,Mixed Media on Wood 2022.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 너에게 감출 수 없는것은 72.2x72.2 cm, 30S
 Acrylic,Mixed Media on Wood 2022.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한국 사회에서 감정 표현의 방식은 오랫동안 억제와 절제가 중심이었다. 타인 시선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적 규범이 감정 노출의 허용 범위를 결정해 왔고 심리적 불안과 긴장이 잦은 현대 사회에서도 감정은 종종 숨겨야 할 영역으로 남아 있다. 임하나의 Mind Map 연작은 이와 같은 감정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탐구한다. 개인의 기억과 정서적 경험이 시각적 자료로 남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임하나는 감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표면의 물리적 변화로 제시한다.

작품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감정의 실존을 다루는 태도다. 임하나는 감정을 모호한 미학적 개념으로 처리하지 않고 특정한 형상을 갖는 구조적 요소로 정의한다. 원형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덧발린 검정 레이어는 감정이 축적되는 시간의 흔적이다. 표면 구조는 단단하게 뭉친 층, 미세하게 갈라진 틈, 매끄럽게 정리된 부분 등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며 감정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구별한다. 표면의 돌출이나 함몰이 임의적 결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압력, 반복, 마찰을 유추하게 만드는 조형적 자료가 된다.

마인드맵(Mind Map): 잃어버린 내면세계의 경로탐색Acrylic on Canvas 30cm, 90x65cm 2023.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마인드맵(Mind Map): 잃어버린 내면세계의 경로탐색Acrylic on Canvas 30cm, 90x65cm 2023.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국 사회에서 감정은 개별 심리 경험에 머물기보다 사회 구조와 밀접하게 연동된다. 경쟁 중심의 사회 환경, 빠른 변화 속도, 높은 기준이 형성한 긴장 상태는 감정의 균열을 증가시킨다. 임하나는 균열을 파손으로 보지 않는다. 균열은 감정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형이자 구조 형성의 시점이다. 파편처럼 흩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파편은 결국 개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조각으로 남는다. 이러한 관점은 감정의 부정적 요소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이 인간 존재의 조건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짚는다.

Mind Map 연작에는 지도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지도는 위치를 확인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기능을 갖는다. 임하나는 감정 경험을 지도화함으로써 감정을 특정한 좌표에 위치시키고 이해 가능한 체계 속에 배치하려 한다. 감정이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영역으로만 취급되는 상황에서 지도화는 감정을 파악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제공한다. 그러나 지도화가 감정을 과도하게 규정할 위험성 또한 존재한다. 감정은 언제나 유동적이며 경험마다 다른 결을 갖기 때문에 지나친 고정은 해석의 폭을 좁힐 수 있다. 임하나의 작업은 이 긴장을 전면에 드러낸다. 감정을 완전히 구조화하려는 시도와 구조화할 수 없는 감정의 속성 사이의 충돌이 표면에 흔적으로 남는다.

신 진경산수화 新 眞景山水畵대리석 알갱이, 크롬 도금 등 90.1X72.2cm 2023.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 진경산수화 新 眞景山水畵대리석 알갱이, 크롬 도금 등 90.1X72.2cm 2023.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정의 선택은 감정의 보호막으로 기능한다. 감정을 다루는 작업은 관람객에게 부담을 주거나 지나치게 사적인 영역을 강요할 가능성이 있다. 임하나는 검정을 통해 시각적 자극을 최소화하고 감정의 노출을 어느 정도 차단한다. 검정은 감정의 세부를 감추는 동시에 감정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검정이 지속적으로 사용될 경우 감정 표현 방식의 다양성이 제한될 우려도 있다. 색채는 정서적 반응을 유도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다양한 색의 도입은 감정 구조 연구를 확장시킬 수 있다. 향후 임하나가 색채와의 관계를 어떻게 확장할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임하나의 작업 과정에서는 물질성과 수공성이 중심에 놓인다. 디지털 이미지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물리적 감각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임하나는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과 재료의 저항을 작업의 본질로 삼는다. 감정의 기원과 이동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단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물질성은 감정이 단순한 심리 현상이 아니라 신체적 체험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치다. 그러나 이 역시 관객이 감정과 작품의 관계를 신체적으로 경험할 때 실효성이 더욱 높아진다. 감정의 물질성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한 전시 환경 설계가 작품의 의미 전달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열두 달D 27.5cm Acrylic on Octagonal Korean Tray 2024.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열두 달D 27.5cm Acrylic on Octagonal Korean Tray 2024.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국 사회에서 감정의 수용 과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피는 데에도 Mind Map 연작은 유용한 기준을 제공한다. 감정은 더 이상 삭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확인해야 할 데이터로 간주되고 있다.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감정 기록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임하나는 예술을 감정 기록 장치로 기능하게 만들고 있으며 감정 데이터의 시각화 가능성을 열어젖힌 상태다. 다만 이러한 접근이 상업적 관심과 결합되는 단계에서는 감정의 상품화 위험이 존재한다. 예술과 소비가 만나는 과정에서 감정의 질적 깊이가 유지될 수 있을지 지속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국제 미술 시장의 흐름과 비교했을 때 임하나 작업의 위치도 살펴볼 지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트라우마, 정체성, 기억을 다루는 작업이 증가하고 있다. 임하나의 작품은 이러한 동시대적 흐름과 교집합을 가진다. 그러나 감정 구조를 조형적 언어로 치환하는 방식에 있어 한국적 특수성이 분명하다. 정서적 노출의 제한, 사회적 기대, 공동체 중심 정서가 반영된 감정 구조가 표면에 흔적으로 남는다. 이러한 차별점은 해외 시장에서 작품이 해석될 때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임하나 작가의 작품은 대리석과 패브릭, 나무판넬을 사용하여 독특한 형태의 볼륨감과 텍스처를 만들어낸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 작가의 작품은 대리석과 패브릭, 나무판넬을 사용하여 독특한 형태의 볼륨감과 텍스처를 만들어낸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 작업은 감정 연구와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감정이 단순한 주제가 아니라 구조화 가능한 연구 대상이라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감정의 구조가 완전히 해석될 수 없다는 전제 역시 유지한다. 감정은 이해하려 할수록 불완전하게 잡히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임하나는 이러한 완전성과 불완전성 사이에서 시각적 형식을 구성한다. 작품을 통해 감정을 완전히 해소하거나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정의 의미를 지속해서 탐색하는 방향을 취한다.

Mind Map 연작은 감정의 과거 기록이자 향후 감정 연구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을 지닌다. 감정의 지형학이 미술계 안에서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임하나는 한국인의 감정 구조를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는 시도를 진행 중이며 그 과정과 결과 모두가 동시대 미술 담론에 참고 지점으로 남을 수 있다. 감정의 시각화는 단순한 치유 서사를 넘어서 사회적 심리 변화에 대한 관찰 도구이기도 하다.

마음의 결 D90cm, 50S Mixed Media on Wood 2023.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마음의 결 D90cm, 50S Mixed Media on Wood 2023.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Mind Map 연작은 감정의 존재를 서술하고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는 한국 미술의 정서 담론이 성숙 단계에 들어섰다는 하나의 지표로 해석할 수 있다. 임하나는 감정의 실체를 숨기지 않는 작업 방식을 통해 감정의 사회적 기록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감정 표현이 제한적이었던 기존 사회적 조건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감정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충분히 반영되는지, 감정 서사의 확장 가능성이 지속될 수 있는지는 앞으로의 작업에서 검증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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