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하 예술이 보여주는 로컬리티의 세계적 확장
[KtN 박준식기자]지역성은 이제 글로벌 미술무대에서 더 이상 주변 논제가 아니다. 최근 2025 The Contemporary Art Market Report(이하 ‘2025 리포트’)는 미술 시장이 지역적 뿌리를 가진 작가의 세계 진출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고유의 도시 경험이 세계인의 공감 언어로 변환되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작가의 출신지나 생활권이 갖는 정체성은 단지 배경이 아닌 예술적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지방이나 비도시권에서 활동을 시작해 글로벌 무대로 영역을 확장한 작가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된다.
이 관점에서 권대하의 예천‐서울‐뉴욕 여정은 중요한 분석 축이 된다. 예천 태생으로 시작해 서울에서 창작 기반을 다지고, 이후 뉴욕을 무대로 활동 범위를 넓혀온 과정은 단순한 이주 경로를 넘어 예술적 서사의 확장으로 읽힌다. 보고서는 ‘지역성(Locality)이 세계성(Globality)으로 변환되는 방식’이 도시 회화 트렌드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권대하 작업에서 이 전환은 ‘빛’이라는 매개를 통해 구조적으로 가시화된다.
작품 모여 사는 삶(162 × 130.3 cm, 1996)은 예천과 서울을 잇는 첫 번째 결합지점이다. 후암동과 남산 일대에서 관찰한 공동체적 주거 풍경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권대하는 도시 전경을 무대처럼 제시하기보다 도시를 삶의 공간으로 파악하고, 그 공간을 거주하는 마음의 흐름으로 환기한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다층적 건물 옥상과 서로 얽혀 있는 세대의 지붕은 단일 도시가 아닌, 도시적 경험의 축적체로 읽힌다. 이는 2025 리포트가 강조한 ‘도시 경험의 제반 조건이 예술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는 분석과 대응한다.
이어 중기작 미로(162.2 × 130.3 cm, 1997)는 좀 더 명시적으로 도시 감각의 복합성을 담는다. 건물과 골목이 뒤엉킨 풍경이 비구상적으로 제시되면서, 관람자는 어느 도시인지 딱히 특정할 수 없는 공간 안에 놓이게 된다. 이 혼종적 풍경은 지역성이 무대가 아니라 출발점임을 보여준다. 권대하는 지역에서 얻은 빛의 감각을 도시라는 범주 안에서 재구성하며, 그 결과 서사는 ‘지역→세계’로 흐르게 된다.
빛의 향연(250 × 100 cm, 1999)은 권대하 회화에서 색채가 본격적으로 기능을 발휘한 작업이다. 도시 야경과 네온사인의 조명이 생동감을 잃지 않고 반사되는 수로 위로 번지는 장면은 감각적 소비의 도시로서 한국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 흔적을 보편적 감정으로 바꾼다. 보고서는 미술시장에서 “지역적 정서가 보편적 감성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밝혔다. 권대하가 한국 도시 야경의 특수성을 감지하고 이를 다시 세계적 문맥으로 옮긴 흐름이 여기에 있다.
지역성이 국제 무대에서 작용하는 방식은 단선적이지 않다. 보고서는 지역 기반 작가가 세계적 서사를 도입할 때 흔히 경험하는 문제로 ‘정체성 상실’의 위기를 제시했다. 근래에는 지역이 단지 초석이 되지 않고 작품 자체의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권대하는 이를 회피하지 않고 작품 안에 녹여냈다. 예천이 가진 산지 지형과 도시적 변모 경험이 서울·뉴욕 도시 감각의 기반이 되었고, 이는 단지 장소론적 서사가 아니라 감각론적 서사로 바뀌었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도시 회화를 지속해온 권대하의 작업은 지역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성과 도시 감각을 동시에 지니는 이중 구조를 보여준다. 예천에서 받은 빛의 감각이 뉴욕 고층에서의 인공광과 충돌하는 방식이 그의 색채와 구도에 스며 있다. 이 충돌은 단지 미적 대비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 정서가 겹쳐진 경험의 층위다. 2025 리포트는 이러한 층위적 경험이 시장에서 고유한 경쟁력이 된다고 명시했다.
예천 출신 작가가 뉴욕을 그리는 일은 단순히 지리적 이동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적 회로가 바뀌는 과정이며, 다시 말해 ‘로컬이 세계로 향하는 감각의 이동’이다. 권대하가 선택한 도시와 빛을 매개로 한 회화는 이 이동의 궤적을 시각화한다. 작품이 지역 독자에게는 ‘우리 도시’의 감정을, 세계 관람자에게는 ‘도시 경험’의 보편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재 권대하가 예천에서 개최하는 초대전(2025.11.11~12.12, 신풍미술관) 역시 이러한 서사의 연장이다. 보고서가 예견한 글로벌-로컬 대화의 지형이 실제로 전시장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 지역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흐름이 역으로 지역을 다시 재해석하는 순환 구조로 나타나고 있다.
요컨대, 로컬리티는 결코 과거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도시 감각과 동등한 서사의 출발점이자 동반자다. 권대하 회화가 그 흐름을 정교하게 기록해 왔다는 점은 2025년 도시 회화가 요구하는 조건을 선제적으로 충족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역의 감각을 담은 도시 회화가 세계로 확장되는 방식, 그 방식이 이제 미술시장에서도 ‘정답형 경로’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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