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미학 선호 확대 속 접근성 축소에 대한 이중적 움직임 분석 필요
[KtN 임우경기자]조용한 럭셔리라는 개념이 전 세계 고가 소비 흐름 속에서 주요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과시적 로고를 배제하고 미니멀한 형태와 소재의 품질을 전면에 내세우는 접근은 특정 소비층의 취향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조용한 부가 상징처럼 등장하고, 고가 브랜드의 로고 회피 현상이 관찰되면서 조용한 럭셔리는 자연스러운 명품 소비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는 변화는 단순한 취향의 전환이라기보다 명품 브랜드들의 전략적 방향 측면에서 더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조용한 럭셔리는 동시에 고객 접근성을 축소하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생 로랑의 아베뉴 몽테뉴 플래그십 사례는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생 로랑은 조각적 명확함이라는 미학을 소개하며 금속과 돌, 유리 등 절제된 소재를 중심으로 한 공간을 구축했다. 이 방식은 브랜드가 진정성, 내재 가치, 고급스러운 절제라는 상징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접근성 측면에서는 제한된 운영 방식으로 소비자층 일부가 자연스럽게 제외된다. 이와 같은 전략은 단순한 취향 대응이 아니라 고객의 구성을 선별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조용한 럭셔리가 확산되는 시장의 환경을 분석하면 두 가지 흐름이 동시에 식별된다. 첫 번째 흐름은 상징 노출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의 확대다. 일부 고가 소비자는 경제적 격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환경에서 소비 흔적을 숨기거나 자연스럽게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명품 브랜드의 대표 상징을 드러내지 않고 소재와 완성도의 가치를 강조하는 방식은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응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두 번째 흐름은 명품 브랜드의 비즈니스 모델 재편이다. 명품 시장에서 브랜드 확대는 공급 증가를 의미하고, 공급 증가가 곧 희소성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명품 브랜드는 수십 년간 희소성 유지와 확장을 동시에 이뤄내기 위한 균형을 맞추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입해왔다. 조용한 럭셔리는 이러한 균형의 방향을 공급 축소와 접근성 축소 쪽으로 확실히 이동시키는 신호일 가능성이 있다. 즉 브랜드가 스스로 진입 장벽을 다시 세우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접근성 축소는 소비기반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대목에서 위험성을 내포한다. 명품 유통은 전통적으로 판매 규모보다 단가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지만, 신규 고객 유입의 흐름이 지속되지 않을 경우 장기 수익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이후 MZ 세대는 명품 시장의 새로운 성장세를 이끌어 온 핵심 고객군이었다. 브랜드는 한정판, 협업 제품, 소셜미디어 캠페인을 통해 이들의 관심을 유도했고 결과적으로 매출 상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조용한 럭셔리 전략이 확산되면서 이러한 젊은 고객군의 접근성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소셜미디어에서의 존재감 확보를 중시하는 고객층은 조용한 럭셔리 브랜드보다 시각적 상징성을 강조한 브랜드를 더 선호할 수 있다.
명품 브랜드는 주요 소비국 내 정책 변화가 소비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고가 제품에 대한 세금 정책이 변화하고, 소득 격차와 자산 집중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지는 상황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조용한 럭셔리는 긍정적 이미지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으나 단계적 접근성 축소는 시장의 폭을 줄일 수 있는 직접적 요인으로 작동한다. 명품 브랜드는 이미지 제고와 시장 확대 사이에서 조정이 필요하다.
조용한 럭셔리 확산을 촉발한 소비자 심리에는 또 다른 층위가 존재한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경제 환경에서 자산·소비의 노출을 줄이려는 심리가 관찰된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자산가들은 오히려 소비를 줄이기보다는 소비 양식을 변화시킨다. 과시적 패턴은 부담으로 인식되고, 소재와 품질 등 고유 가치만 남기게 된다. 그러나 이 변화가 전 고객군으로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가격 장벽은 유지되고 있고, 브랜드는 오히려 장벽 강화를 통해 희소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조용한 럭셔리 전략이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심리와 시장 구조 변화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실증 데이터가 필요하다. 방문 고객 감소를 매출 단가 상승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기대가 현실화되는지, 고객 기반 선별이 브랜드 가치 고도화로 이어지는지, 혹은 장기적 소비 기반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지 향후 실적 지표가 판단 기준이 된다.
명품 브랜드는 단기적 이미지 관리보다 장기적 수익 구조 확립을 목표로 한다. 생 로랑은 조용한 럭셔리 전략을 앞세워 VIP 중심 모델을 강화하고 있고, 샤넬, 에르메스 등 주요 경쟁 브랜드도 프라이빗 운영을 강화하는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고가 소비의 지표가 단순히 이미지 선호로 결정되는 구조는 아니며, 구매 가능 고객의 수량과 구매력이라는 실질적 변수가 존재한다. 조용한 럭셔리가 확산되는 동시에 소비자 문턱이 높아지는 현상이 동시에 관찰된다면 명품 시장은 구조적 분화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조용한 럭셔리의 확산은 명품 시장을 단순히 미학적으로 변화시키는 현상을 넘어 구조적 재편을 의미한다. 브랜드의 문턱이 높아질수록 고객층은 상층으로만 수렴하고, 신흥 소비층의 성장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다. 지금의 흐름은 브랜드의 선택이 단일 소비 계층에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조용한 럭셔리 전략은 지속 가능한가. 계속해서 확장되는 매출 기반을 필요로 하는 명품 산업에서 가능한가. 조용한 럭셔리 확대가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를 강화하는 요소일 수 있지만 접근성 조정 결과가 어떻게 시장에 반영될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속적 데이터 분석과 기간적 관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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