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온 페이퍼’와 연필, 색연필 스케치까지… 종이 위에 먼저 남은 피카소 작업의 속도
완성된 명작의 위엄보다 가까운 호흡… 스크랩북이 보여준 재료와 판단의 시간

David Picasso Truong & SCRAP BOOK.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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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박준식기자]피카소를 떠올릴 때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먼저 캔버스가 선다. 벽면을 가득 채운 유화, 두껍게 올라간 물감층, 압도적인 화면의 존재감이 뒤따른다. 미술관 안에서 마주하는 피카소는 대개 그렇게 기억된다. 그런데 스크랩북을 펼치면 시선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캔버스보다 종이가 먼저 나온다. 큰 화면보다 작은 종이 한 장이 먼저 눈을 붙든다. 완성된 명작이 아니라 아직 손의 온기가 남은 듯한 기록이 먼저 말을 건다. 피카소를 거대한 결과물의 화가로만 읽어 온 감상 습관은 바로 거기서 한 번 꺾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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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기타리스트 The Old Guitarist 1903 - 1904 pencil on paper 54 x 64 cm/ David Picasso Truong & SCRAP BOOK.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스크랩북 작품 목록은 종이가 얼마나 깊숙이 피카소 작업 속으로 들어가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1903~1904년 ‘늙은 기타 리스트’는 종이 위 연필이다. 1904년 ‘과부 여성’은 종이 위 유화, 1940년 ‘세 여자와 황소’는 종이 위 색연필 스케치, 1946년 ‘앉아서 성경 읽기’와 ‘평화의 비둘기’는 종이 위 유화, 1953년 ‘팔로마의 초상’과 1956년 ‘기타’ 역시 종이 위 유화다. 반면 같은 흐름 안에 ‘거리의 노인’,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 ‘꽃병을 든 정물화’ 같은 캔버스 위 유화도 놓여 있다. 종이와 캔버스가 따로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 안에서 번갈아 등장한다. 피카소에게 종이는 습작을 위한 임시 재료가 아니었다. 캔버스와 나란히 놓인, 오래 지속된 작업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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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는 캔버스와 성질부터 다르다. 캔버스는 화면을 버티는 힘이 크고 물감층을 받아내는 무게가 있다. 작가는 그 위에서 화면 전체를 설계하고 밀어붙인다. 종이는 훨씬 가깝고 빠르다. 손이 닿는 즉시 반응하고, 붓질의 속도와 압력이 표면에 곧장 남는다. 여백도 더 민감하게 살아난다. 그래서 종이 앞에서는 화가의 판단이 더 노출된다.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어디에서 멈췄는지,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버렸는지가 비교적 숨김없이 드러난다. 캔버스가 완성의 무게를 품는 자리라면 종이는 형성이 진행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피카소 스크랩북이 흥미로운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과보다 형성, 위엄보다 속도, 정리된 설명보다 손의 움직임이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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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여성 Widowed Woman 1904 oil on paper 44 x 50 cm/ David Picasso Truong & SCRAP BOOK.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04년 ‘과부 여성’은 종이 위 유화가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 가장 먼저 보여 주는 작품이다. 같은 해의 ‘거리의 노인’이 캔버스 위 유화라면, ‘과부 여성’은 종이 위에 남았다. 두 작품은 같은 시기의 공기를 품고 있지만 화면의 결은 다르다. ‘거리의 노인’이 캔버스의 버팀 위에서 인물의 무게를 눌러 앉힌다면, ‘과부 여성’은 종이 위에서 훨씬 더 예민하게 떨린다. 종이는 물감의 번짐과 표면의 숨결을 더 가까이 드러낸다. 슬픔을 장엄하게 세우기보다 눌린 표정과 가라앉은 기운을 곧장 전달하는 데 더 알맞다. 가난한 청년 피카소에게 종이는 경제적 사정의 결과였을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종이는 더 적나라한 화면을 만들어 냈다. 형편이 강요한 재료가 오히려 감정의 맨얼굴을 더 가까이 드러낸 셈이다.

종이 위 작업에서는 연출보다 반응이 먼저 보인다. 준비된 무대에 올라선 이미지가 아니라 손과 눈이 순간적으로 맞물리는 장면에 가깝다. 피카소가 종이를 붙든 시간이 길었다는 사실은 곧 작업실의 리듬이 종이와 함께 움직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은 종이 한 장은 작가에게 더 빠른 시작을 허락한다. 크게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속 구상이 완벽히 정리되지 않아도 손이 먼저 갈 수 있다. 피카소처럼 수많은 시도와 변형을 밀어붙인 작가에게 종이는 단순히 저렴한 대용품이 아니라 생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표면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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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세 여자와 황소’는 종이의 의미를 또 다른 방향으로 넓힌다. 색연필 스케치라는 표기부터 유화와 다른 긴장을 품고 있다. 스케치를 미완성의 예비 단계로만 보는 시선은 피카소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세 여자와 황소’에서는 오히려 선이 먼저 구조를 만든다. 세 여인과 황소가 서로 긴장하며 화면 안에서 버티는 방식, 형상이 어디에서 끊기고 어디에서 이어지는지, 화면 전체가 어떤 리듬으로 묶이는지가 선에서 곧장 드러난다. 유화의 밀도와 색채를 빌리지 않아도 화면의 골격이 이미 서 있다. 종이는 그런 장면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덧칠이나 후반의 보완보다 처음 세운 구조가 더 크게 읽히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조형 감각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묻는다면, 답은 종종 이런 스케치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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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성경읽기 Sitting and Reading the Bible 1946 oil on paper 44 x 50 cm/David Picasso Truong & SCRAP BOOK.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46년 ‘앉아서 성경 읽기’와 ‘평화의 비둘기’는 종이 위 유화가 얼마나 다른 분위기를 수용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앉아서 성경 읽기’는 제목부터 고요하다. 전후의 무거운 시기를 지나 인물 하나가 책 앞에 앉아 있는 장면은 정적 속의 집중을 떠올리게 한다. 같은 해의 ‘평화의 비둘기’는 훨씬 상징적이다. 개인의 독서와 시대의 소망이 같은 재료 위에 나란히 놓인 셈이다. 종이 위 유화가 단순한 편의의 재료였다면 이런 폭은 나오기 어렵다. 피카소는 종이를 통해 인물의 침묵도, 시대의 표지도 붙들었다. 종이는 작아 보여도 좁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표면 위에서 더 집중된 의미가 만들어졌다.

1953년 ‘팔로마의 초상’에 이르면 종이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딸의 이름이 제목에 직접 들어 있는 작업이다. 가족을 향한 시선, 가까운 존재를 바라보는 눈길, 사적인 시간이 화면으로 스며드는 자리다. 캔버스의 장대한 화면이 역사와 신화를 붙드는 데 유리하다면, 종이는 가까운 사람의 얼굴을 붙드는 데 더 친밀하다. ‘팔로마의 초상’이 종이 위 유화라는 사실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피카소의 작업에서 종이는 종종 가장 가까운 관계가 머무는 표면이 된다. 손의 거리도 짧고, 정서의 거리도 가깝다. 스크랩북 안에서 가족의 시간이 종이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피카소를 거대한 제도 속 이름이 아니라 생활과 감정 속 인간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1956년 ‘기타’는 종이 위 작업이 말년에 어떻게 깊어졌는지 보여 준다. 젊은 시절의 종이 위 작업에 가난과 절박함이 깔려 있었다면, 후기의 종이 위 작업에는 숙련의 경제성이 더 짙다. 화면은 더 간결해지고 선은 더 짧아진다. 불필요한 설명은 줄어들고 필요한 구조만 남는다. 오래 그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략이다. 캔버스에서는 화면 전체를 채우는 무게가 먼저 작동할 수 있지만, 종이 앞에서는 오히려 덜어 내는 감각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타’는 바로 그런 감각을 보여 준다. 악기라는 대상은 복잡한 설명 없이도 리듬과 구조만으로 살아난다. 늙은 화가의 손이 더 가벼워졌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정확히는 오래 축적된 판단이 더 빠르게 응축된다고 해야 맞다. 종이는 그런 응축을 가장 잘 보여 주는 표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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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색연필, 유화가 한 스크랩북 안에서 겹쳐지는 광경은 피카소를 결과보다 과정의 작가로 되돌려 놓는다. 미술사는 종종 청색 시대, 입체주의, 후기 양식처럼 이름 붙이기 쉬운 큰 줄기로 작가를 정리한다. 스크랩북은 그 도표 바깥에 남은 시간을 들춰낸다. 어떤 날에는 연필이 먼저 갔고, 어떤 날에는 종이 위에 유화가 올라갔고, 어떤 날에는 캔버스가 선택됐다. 한 사람의 작업은 늘 그렇게 구체적인 재료의 차이 속에서 진행된다. 손은 언제나 표면을 만나야 하고, 표면은 작업의 성격을 바꾼다. 피카소의 혁신도 결국은 그런 작고 반복적인 선택이 쌓여 만들어졌다. 큰 양식의 변화는 작은 재료의 경험을 떠나 생겨나지 않는다.

데이비드 피카소 쯔엉이 스크랩북을 곁에 두고 오래 바라본 이유도 그 지점과 닿아 있다. 명성 높은 완성작 한 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 종이 위에는 남아 있다. 화가의 손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망설임은 어떤 자리에 남는지, 사유가 언제 이미지가 되는지가 종이 위에서는 더 가깝게 읽힌다. 화가의 눈으로 보면 종이 위 작업은 정직하다. 권위의 후광보다 판단의 흔적이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피카소를 숭배의 대상으로만 세우지 않고 작업의 기준으로 다시 읽으려면 결국 종이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데이비드 피카소 쯔엉이 스크랩북을 단순한 수집품으로 다루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낡은 종이 속에는 이미 완성된 피카소보다 아직 계속 움직이는 피카소가 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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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습작이나 예비 단계로만 낮춰 부르는 습관은 피카소 앞에서 힘을 잃는다. 스크랩북 안의 종이는 연습장의 자리가 아니다. 화면이 시작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어떤 경우에는 화면이 끝내 머무는 자리다. 인물의 고독이 가장 가깝게 남고, 상징의 골격이 가장 분명하게 서고, 가족을 향한 시선과 말년의 간결함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자리가 모두 종이에 있다. 캔버스만으로는 피카소를 다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피카소를 만든 긴 시간의 상당 부분은 종이 위에서 자랐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큰 캔버스 앞에서는 관객이 화면에 압도된다. 작은 종이 앞에서는 관객이 화가의 손을 따라가게 된다. 감상의 방식도 달라진다. 멀리 서서 장관을 보는 대신 가까이 다가가 선의 방향과 물감의 밀도, 여백의 쓰임을 더듬게 된다. 스크랩북이 주는 감동도 거기서 나온다. 피카소는 더 이상 멀리 있지 않다. 종이 위에 남은 얇은 물감층과 짧은 선, 작은 화면의 호흡을 통해 생각하고 고심하는 인간으로 돌아온다. 미술관의 위대한 이름이 아니라 작업실의 고독한 손이 눈앞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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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평생 종이를 놓지 않은 이유를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형편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속도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캔버스가 주지 못하는 자유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스크랩북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남긴다. 피카소의 작업은 언제나 완성된 걸작의 자리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이 위에서 먼저 시작됐고, 종이 위에서 더 빠르게 흔들렸고, 종이 위에서 더 가까운 얼굴을 드러냈다. 캔버스의 권위가 오래 미술사의 중심을 차지해 왔더라도, 피카소를 움직인 손의 진실까지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손의 속도와 생각의 첫 형태는 더 자주 종이에 남았다.

스크랩북은 바로 그 장면을 오래 품고 있다. 종이 위 연필의 시작, 종이 위 유화의 번짐, 색연필 스케치의 구조, 캔버스 위 유화와 나란히 놓인 재료의 차이가 한 권 안에서 이어진다. 피카소의 예술을 결과물의 박물관이 아니라 작업의 시간으로 읽으려면 결국 다시 종이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대한 화면 앞에서 보는 피카소와 종이 한 장 앞에서 만나는 피카소는 다르다. 뒤쪽의 피카소가 더 가깝고, 때로는 더 본질적이다. 피카소의 손은 캔버스에만 머물지 않았다. 먼저 닿은 곳은 종이였고, 오래 남은 흔적도 종이 위에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