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는 줄고, 고가 전략만 남았다
호황은 꺾였고, 신작은 더 비싸졌다

Here Are IWC Schaffhausen's Releases for Watches & Wonders 2026. 사진=IWC,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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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임우경기자]제네바 전시장은 확장됐으나, 시장 거래 규모는 위축됐다. 올해 열린 ‘워치스 앤드 원더스 2026’에는 65개 브랜드가 모였다. 행사 규모만 보면 시계 산업이 다시 팽창하는 듯했다. 같은 시기 스위스 시계 수출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2025년 수출액은 전년보다 줄었고, 물량도 함께 감소했다. 박람회장의 조명과 시장의 체온이 다른 장면이었다. IWC가 올해 한꺼번에 내놓은 신작도 이 온도차 안에서 읽어야 한다. 새 모델이 많다는 사실보다, 왜 그런 구성을 택했는지가 먼저 보인다.

손목시계 시장에서 먼저 무너지는 것은 분위기가 아니라 개수다. 값은 늦게 움직이고, 물량은 먼저 꺾인다. 최근 스위스 시계 산업 흐름이 딱 그렇다. 수출액 감소폭보다 수출 물량 감소폭이 더 컸다. 많이 팔아 버티는 시장이 아니라 적게 팔아도 비싼 제품으로 견디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팬데믹 시기에는 ‘없어서 못 파는’ 브랜드와 모델이 시장 전체를 끌고 갔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대기 수요가 줄고, 재고 부담이 커지고, 가격을 견딜 수 있는 고객층은 얇아졌다. 과열이 걷힌 자리에 남은 것은 넓은 호황이 아니라 높은 가격표다.

가격대별 흐름도 같은 쪽을 가리킨다. 중저가와 중간 가격대가 먼저 약해졌고, 고가 구간도 예전처럼 안전지대는 아니다. 다만 낙폭의 순서가 다를 뿐이다. 대중적으로 팔리던 가격대가 먼저 흔들리고, 초고가 쪽은 비교적 늦게 반응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럭셔리 시장은 아직 버틴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안쪽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다르다. 전체 파이는 넓어지지 않는데 브랜드 수는 많고, 신제품은 계속 나와야 한다. 남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더 비싼 제품으로 객단가를 높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더 잘게 나뉜 취향으로 고객을 붙드는 길이다. 올해 IWC의 라인업은 이 두 갈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Here Are IWC Schaffhausen's Releases for Watches & Wonders 2026. 사진=IWC,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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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홍콩의 부진은 그 배경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몇 년 전까지 중국권 수요는 스위스 시계 시장을 떠받치는 축이었다. 지금은 경기 둔화와 소비 위축, 자산시장 불안이 겹치며 예전 같은 탄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미국이 최대 시장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시장 전체를 끌고 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에 금값 상승과 스위스프랑 강세가 겹치면 가격 부담은 더 커진다. 수요가 약한 국면에서 원가와 환율 부담까지 높아지는 구조다. 시계는 취향재이면서 동시에 경기와 자산 효과에 민감한 사치재다. 손목 위에 올리는 물건이지만, 실제로는 환율과 금리, 자산시장 분위기를 그대로 타고 움직인다.

이런 시장에서 IWC가 내놓은 해법은 대중화가 아니었다. 올해 IWC는 퍼페추얼 캘린더, 발광 세라믹을 적용한 빅 파일럿, 우주비행 운용을 겨냥한 파일럿 워치, 골드 케이스 인제니어 투르비용, 티타늄 인제니어 퍼페추얼 캘린더, 컬러 세라믹 인제니어, ‘어린 왕자’ 기념 모델군, 34·35·36mm급 소형 모델을 한꺼번에 꺼냈다. 늘어난 것은 종류였고, 낮아진 것은 문턱이 아니었다. 싼 시계로 외연을 넓히기보다 비싼 시계와 세분된 취향 모델로 판을 짠 셈이다. 시장이 팽창할 때는 대표 모델 몇 개만으로도 충분하다. 시장이 꺾일 때는 브랜드 안에서부터 고객을 더 촘촘히 갈라야 한다. IWC가 올해 보여준 것은 바로 그 방식이다.

퍼페추얼 캘린더와 투르비용은 누구나 접근하는 상품이 아니다. 제조 기술과 상징 자본을 함께 겨냥한 제품이다. 발광 세라믹이나 우주비행 운용을 내세운 파일럿 워치도 마찬가지다. 기능과 소재, 제작 난도를 앞세워 가격을 정당화하는 전략이다. 이런 제품은 대량 판매를 노리는 물건이 아니다. 적은 수량으로 높은 마진을 확보하려는 전형적인 상단 전략에 가깝다. 시장이 흔들릴수록 브랜드는 더 위쪽으로 올라간다. 넓은 소비층을 향해 문턱을 낮추기보다, 돈을 쓸 수 있는 수집가와 충성 고객에게 더 강한 이유를 제시하는 쪽을 택한다.

Here Are IWC Schaffhausen's Releases for Watches & Wonders 2026. 사진=IWC,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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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 진열대에 놓인 소형 모델들은 또 다른 신호다. 포르토피노 34, 인제니어 35, 파일럿 워치 36 같은 구성은 단순한 사이즈 추가가 아니다. 남성 스포츠 워치 중심으로 커져온 시장이 같은 방식으로만은 더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손목이 가는 소비자, 드레스워치 수요, 여성 고객, 첫 구매층, 취향형 소비자를 함께 겨냥하는 배치다. 시계 시장은 오랫동안 “어떤 브랜드냐”가 먼저였지만, 최근에는 “어떤 장면에서 차느냐”와 “어떤 손목에 맞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크기와 두께, 색감, 착용감이 구매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것이다. 사이즈 다양화는 유행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구조 변화의 결과에 가깝다.

‘어린 왕자’ 시리즈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예전의 럭셔리 시계는 희소성 자체가 서사였다. 기다리기 어렵고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곧 가치로 통했다. 지금은 그 힘이 예전만 못하다. 대기 수요가 줄고 투기적 매수세가 식으면서 브랜드는 다시 이야기와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문학적 이미지든, 항공이든, 우주비행이든, 제품 바깥의 맥락이 붙어야 고객이 움직인다. 그렇다고 이런 서사가 시장 침체를 덮어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서사가 더 강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제품만으로는 예전 같은 열기를 만들기 어려워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중고 시장 흐름도 새 시계 시장을 압박한다. 팬데믹 과열기에는 프리미엄이 붙는 모델을 사서 되파는 움직임이 넓게 퍼졌다. 지금은 그 열기가 크게 식었다. 중고 시세가 안정되거나 내려가면 새 시계의 가격 인상 논리도 약해진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굳이 정가를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가 생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더 복잡해진다. 새 시계만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브랜드의 중고 시세와도 싸워야 한다. 그래서 더 비싼 한정판, 더 복잡한 기능, 더 특별한 소재가 잦아진다. 중고로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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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모든 브랜드가 같은 방식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격을 올려도 사주는 충성 고객이 있는 브랜드와 그렇지 못한 브랜드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인지도와 역사, 상징성을 이미 확보한 곳은 고가 전략으로 버틸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곳은 물량이 줄 때 타격이 더 크다. IWC는 전통과 인지도를 갖춘 축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자유로운 위치는 아니다. 올해 라인업이 오히려 그 점을 말해준다. 브랜드가 자신감에 기대어 한두 개의 상징 모델만 밀어붙인 것이 아니라, 소재와 기능, 크기와 서사를 전방위로 늘어놓은 것은 그만큼 시장이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다.

2월 수출이 잠시 반등했다고 해서 안심하기도 이르다. 월별 수치는 기저효과와 특정 시장 움직임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더구나 중국권 회복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몇몇 시장의 반등만으로 전체 추세를 바꿨다고 보기 어렵다. 시계 산업은 회복 국면에서도 예전처럼 한꺼번에 올라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상위 브랜드, 일부 가격대, 일부 지역만 먼저 살아나는 식의 비대칭 회복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브랜드의 생존 방식도 더 분명해진다. 넓게 팔기보다 깊게 팔고, 많이 팔기보다 비싸게 팔며, 하나의 대표 모델보다 여러 취향 군을 잘게 쪼개 대응하는 방식이다.

IWC의 올해 신작은 낙관의 표정이라기보다 방어의 문법에 가깝다. 제네바 전시장의 화려한 조명 아래 놓여 있었지만, 제품 구성이 가리키는 방향은 축제가 아니라 생존이다. 더 비싼 소재, 더 복잡한 기능, 더 작은 케이스, 더 선명한 이야기. 시장이 좋을 때 신작은 자신감의 표지다. 시장이 흔들릴 때 신작은 버티기 위한 장치가 된다. 올해 IWC가 보여준 것은 후자 쪽에 가깝다. 럭셔리 시계 시장의 몰락은 매장이 비는 장면으로 오지 않는다. 먼저 오는 것은 물량 감소이고, 다음은 가격대 양극화이며, 그다음은 브랜드마다 살아남을 고객을 따로 찾는 풍경이다. IWC의 2026년 신작은 그 풍경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