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집세·일자리 앞에서 흔들린 낡은 좌우 공식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도널드 트럼프는 2024년 미국 대선에서 선거인단 312명과 대중득표 7730만2580표를 얻어 백악관에 복귀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는 선거인단 226명, 대중득표 7501만7613표에 머물렀다. 득표율은 트럼프 49.80%, 해리스 48.32%였다. 공화당 후보가 선거인단과 대중투표에서 모두 민주당을 앞선 것은 2004년 조지 W. 부시 이후 처음이었다.

트럼프의 승리는 공화당 고정 지지층의 결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민주당의 전통적 기반으로 여겨졌던 노동자, 중산층, 비백인 남성 유권자 일부가 움직였다. 미국 민주당은 낙태권과 민주주의 수호를 전면에 세웠지만, 많은 유권자는 장바구니 가격, 집세, 국경, 범죄, 학교 문제를 먼저 봤다. 선거판에서 민주당은 ‘나를 지켜주는 정당’보다 ‘나를 가르치는 정당’에 가깝게 읽혔고, 트럼프는 거칠지만 변화를 밀어붙일 정치인으로 받아들여졌다.

민주연구원 연구보고서 '트럼프 미스터리와 미국 민주당의 성찰'은 2024년 트럼프 승리의 바탕을 ‘다인종 노동자 계층 연합’으로 짚었다.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만의 반란이 아니라 흑인·히스패닉 노동자층 일부까지 트럼프 쪽으로 이동한 선거였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민주당의 위기를 국정 실패, 정체성 상실, 브랜드 파산으로 나눴고, 민주당이 ‘보통 사람의 정당’이라는 오래된 이미지를 잃었다고 봤다.

미국 민주당이 잃은 것은 몇 개 주의 선거인단만이 아니었다. 노동자 정당이라는 이름,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평판,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약속이 함께 흔들렸다. 대도시 고학력층과 전문직, 문화적 진보 의제에 가까운 유권자는 민주당 안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반대로 공장, 물류창고, 농촌, 중소도시의 유권자 일부는 자기들의 월급과 집세, 학교와 병원, 동네 치안이 정치의 앞줄에서 밀렸다고 받아들였다.

63년 만에 돌아온 '노동절', 이재명 대통령 이분법적 갈등 끝내자   사진=2026. 05.01 ktv 갈무리 / 편집  이재명 대통령은 1일 서울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식에 참석해 63년 동안 '근로자의 날'로 불리던 명칭의 공식 환원을 선포하고, 올해부터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날 기념식에는 양대 노총 위원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등 노사정 핵심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해 노동 환경 변화와 상생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63년 만에 돌아온 '노동절', 이재명 대통령 이분법적 갈등 끝내자   사진=2026. 05.01 ktv 갈무리 / 편집  이재명 대통령은 1일 서울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식에 참석해 63년 동안 '근로자의 날'로 불리던 명칭의 공식 환원을 선포하고, 올해부터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날 기념식에는 양대 노총 위원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등 노사정 핵심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해 노동 환경 변화와 상생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노동자와 중산층은 복지를 싫어해서 우파로 움직인 것이 아니다. 국가가 병원과 학교, 일자리와 노후를 책임지길 바라면서도 이민 확대에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임금 인상과 산업보호를 원하면서도 관료와 언론, 법원과 대학을 한 묶음의 기득권으로 볼 수 있다. 노동조합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젠더와 학교 교육 문제에서는 보수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과거의 좌우 공식은 이런 유권자를 한쪽에 안정적으로 묶어두지 못한다.

독일 2025년 연방하원 선거도 같은 균열을 드러냈다. 독일대안당 AfD는 152석을 얻어 2021년보다 69석 늘었다. 사회민주당은 120석으로 86석을 잃었고, 녹색당은 85석으로 33석 줄었다. 독일 기성정당은 극우 성향 정당과의 연정 차단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표는 이미 크게 움직였다. 조기 총선의 배경에는 2024년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정 붕괴와 예산 갈등이 있었고, 선거 결과는 집권 세력의 약화를 분명히 남겼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고민도 미국 민주당과 닮았다. 제조업 일자리 감소, 에너지 비용, 농업 규제, 난민 수용, 지방 의료와 교통망 축소가 쌓인 지역에서 기성 좌파의 말은 멀게 들린다. 도시의 환경정책은 농촌의 규제 부담으로, 다양성의 언어는 일부 노동자에게 문화적 거리감으로, 국제주의는 국경 관리의 느슨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파 정당은 이런 틈에서 복잡한 제도 설명을 걷어내고 “국경”, “치안”, “세금”, “연료비”, “일자리”를 앞세웠다.

뇌물수수, 사기, 배임 혐의의 피고인 신분으로 전쟁을 지휘하는 네타냐후. 사진=whitehouse.gallery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뇌물수수, 사기, 배임 혐의의 피고인 신분으로 전쟁을 지휘하는 네타냐후. 사진=whitehouse.gallery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중산층의 이동은 더 조용하지만 넓다. 집을 가진 중산층은 금리와 세금, 집값을 본다. 세입자는 월세와 전세, 주거 이동 비용을 본다. 아이를 둔 부모는 학교와 입시, 교실에서 다뤄지는 가치관을 본다. 자영업자는 인건비와 임대료, 전기요금과 카드 수수료를 본다. 기성정당이 민주주의와 제도의 언어만 반복하면, 유권자는 자기 삶과 정치 사이의 거리를 먼저 느낀다.

문화 갈등은 경제 불만을 더 빨리 달구는 불쏘시개가 됐다. 물가와 임금, 세금과 복지는 원인과 해법을 따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학교에서 아이가 무엇을 배우는지, 공공기관이 어떤 말을 쓰는지, 스포츠와 화장실에서 성별을 어떻게 나눌지는 훨씬 빨리 논쟁이 된다. 우파 정당은 가계부를 어렵게 만든 정부와 보통 사람의 말을 틀렸다고 꾸짖는 엘리트를 한 편으로 묶었다. 선거판에서 정책 불만은 감정의 문제로 바뀌었다.

한국의 2025년 대선은 같은 시기 세계 정치 속에서 다른 경로를 만들었다. 비상계엄과 탄핵,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뒤 치러진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728만7513표, 득표율 49.42%로 당선됐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41.15%,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8.34%를 기록했다. 투표율은 79.4%였다.

한국 유권자는 헌정 위기 뒤 선거로 권력 공백을 정리했다. 여러 나라에서 반제도 구호와 강경 우파의 언어가 커지는 동안, 한국에서는 헌법 절차와 투표 참여가 정치의 중심을 다시 세웠다. 이재명 정부의 출범은 한 정당의 집권을 넘어 계엄 이후 국가 운영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는 과정과 맞물렸다. 세계 정치의 우향 흐름 속에서 한국의 정치 위상은 헌정 회복과 선거 참여, 새 정부의 국정 정상화라는 세 축 위에 놓였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123대 국정과제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국가비전으로 삼고, 국민이 하나되는 정치, 세계를 이끄는 혁신경제, 모두가 잘사는 균형성장, 기본이 튼튼한 사회, 국익 중심의 외교안보를 5대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대통령실 국정과제 페이지에도 같은 5대 목표가 공개돼 있다.

이재명·시진핑 정상회담…한중 관계 전면 복원 선언  사진=2026. 01.05  ktv 이매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재명·시진핑 정상회담…한중 관계 전면 복원 선언  사진=2026. 01.05  ktv 이매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와 문화, 외교를 함께 놓은 점도 눈에 띈다. 혁신경제는 AI와 첨단산업 경쟁, 민생경제는 물가와 일자리, 균형성장은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 문화국가는 K컬처의 국제적 확장, 실용외교는 한미동맹과 주변국 외교, G7+ 외교 강국 구상과 맞물린다. 외교부 주관 국정과제에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 주변 4국 관계 증진, G7+ 외교 강국, 공공외교 확대와 K-이니셔티브 해외 진출 지원 등이 포함됐다.

한국 정치가 세계 정치의 비교축이 되는 대목은 여기서 생긴다. 강경 우파가 커지는 나라에서는 국경과 치안, 반엘리트 정서가 유권자를 끌어당겼다. 한국에서는 계엄 이후 헌정 절차와 선거가 먼저 작동했고, 새 정부는 국민주권, 민생경제, 혁신산업, 문화국가, 실용외교를 국정의 앞줄에 세웠다. 제도 회복과 먹고사는 문제, 문화와 외교를 따로 떼지 않고 같은 국정 과제로 묶어야 하는 자리다.

정당의 위기는 결국 유권자가 “내 삶을 누가 먼저 보느냐”고 묻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노동자와 중산층은 선거 때마다 이념표를 들고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장바구니 가격, 집세, 월급, 전기요금, 아이 학교, 동네 병원, 출퇴근길, 거리 치안이 먼저 손에 잡힌다. 기성정당이 이 문제를 놓치면 우파 정당은 빈틈을 파고든다. 민주주의와 제도를 지키겠다는 세력도 가계부와 동네 문제에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설득력을 잃는다.

미국 민주당의 패배, 독일 사회민주당의 후퇴, 유럽 우파 정당의 약진, 한국의 헌정 회복과 새 정부 출범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노동자와 중산층은 어느 정당을 자기 삶에 가까운 정당으로 볼 것인가. 2026년 이후 정치 경쟁은 낡은 좌우 이름표보다 장바구니와 집세, 일자리와 학교, 지역과 외교안보를 누가 더 믿을 만하게 다루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